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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현상읽기_문학
2003년 신춘문예 경향(시)
사물의 구체성과 새로운 시적 발견
글_유성호문학평론가. 한국교원대교수
2003년 새해가 밝자 각 신문사에서 주관한 신춘문예 당선작들이 지면 위로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냈다. 비록 그것이 해마다 치러지는 관성적 행사일지라도, 그때마다 심한 열병과 가슴앓이를 치르는 이른바 신춘문예주의자' 들의 가슴은 지난 연말에도 뜨겁게 설레었을 것이다. 이
처럼 잠재적 문인들에게 언제나 매혹과 의욕을 동시에 주는 신춘문예는 그래서 연초 문단의 화제로서 단연 압도적인 힘을 갖고 있다.
물론 신춘문예의 다양한 문제점을 들어 폐지론을 제기
하는 이들도 적지 않지만, 아직도 신인 등용문으로서의 상징적 의미를 가장 강렬하게 띠고 있는 신춘문예의 순기능 역시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만약 신춘문예가 언론사의 도움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중도에 폐지된다면, 단언하건대 우리 사회의 문학 지망생 숫자는 현저히 격감할 것이다.
당선 시기를 연중으로 바꾼 [중앙일보를 제외하고 거의 전 신문사에서 올해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각 부문의
당선작을 냈다(r동아일보는 시 당선작을 내지 않았다)
시ㆍ소설은 여전히 폭발적인 양의 투고가 이루어졌고, 희곡이나 평론 부문은 폐지를 택하고 있는 쪽이 점증하고 있다. 이번 신춘문예 역시 예년과 똑같이 몇몇 당선작들은 표절 시비를 혹심하게 겪었고, 더러는 비문이 많다는 이유로 당선작으로서의 자격에 일정한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다수의 작품이 만만찮은 문학적 역량을 드러내 아직도 문학을 향한 젊은
이들의 식지 않은 열정을 보여주었다고 할수 있다.
그런데 올해 신춘문예 당선작들의 특성이, 신인들의
등용문이라는 성격이 애초부터 가질 수 있는 '도전' 과
모험' 정신보다는, 매우 고전적인 주제와 방법을 줄곧
보이고 있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이는 물론 신춘문예
가 톡톡 튀는 실험 의지의 작품보다는 모양새를 두루 안
정되게 취하고 있는 이른바 '모범적' 작품을 줄곧 뽑고
있다는 관행을 응모자들이 의식한 결과일 것이다. 그러
나 그러한 이유 외에도 우리 시대가 그 동안의 정치성 및
실험성의 과잉을 반성하고 문학 본유의 고전적 통찰력과
서정성으로 회귀하고 있는 보편적 현상을 신춘문예 역시
부분적으로 반영한 측면 또한 수긍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번 당선작들(시 장르에 한정해서) 가
운데 이러한 미학적 징후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가작들 대상으로, 우리 시대의 젊은 시적 주체들이 삶에 대한 고전적 성찰과 신선한 감수성을 정통 서정시의
작법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을 관찰하려고 한다. 물론 이 같은 것들은 적지 않은 시간의 적공이 아니고는 이를 수 없는 시적 미덕들일 것이다. 이와 같은 리뷰를 통해 우리는 앞으로 우리 시가 인문주의 정신을 지켜가면서도 활력 있게 대중들과 소통할 수 있는 미학적 보루로 남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글에서 특정 작품이 논의되는 것이, 그 작품
들이 특별히 다른 당선작들에 비해서 우월하다는 최종적 가치 판단 때문은 아니다. 다만 최근 신춘문예의 주제적 경향을 효율적으로 조감하기 위한 방법적 선택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이제 열정을 가슴에 품은 잠재적
시인에서 신춘문예라는 험난한 선택적 과정을 거쳐 문단의 주목을 받는 현재적 시인으로 이름을 바꾼 이들의
세계를 조감해 보자
구체성과 근원 지향성의 통합
최근 우리 시는 시적 주체의 내면' 혹은 '주관' 으로의 급격한 경사로 인하여 생활적 구체성과 리얼리티의
현저한 감쇄를 보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유년에 대한
'기억' 으로의 퇴행이나 '죽음' 의식의 일정한 과잉이 시의 문면을 장식하고 있는 것 또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서정' 의 원리를 '주관적 체험의 원리에 가두거나 혹은 '관념'의 대상을 물질화하여
표현하는 편향을 초래하기도 하였다
이때 우리가 강조할 수 있는 것은, 사물(상황)의 구체성과 해석이다. 다시 말하면, 삶의 보편성을 환기할 수 있는 구체적 사물(상황)을 발견하고, 거기에 참신하면서도
역동적인 해석 과정을 덧붙인 시편들이 강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구체성이 물질성 혹은 쇄말적
상세함과 등가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우리 시대의 뛰어난 시인들은 구체적 사물이나 상황을 시적 질료로 삼으면서도 그 물질성 안에 같히는 게 아니라 '근원 지향 의 정신을 통해 일종의 형이상학적 충동을 충족시키려 하
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시에는 사물의 구체성과 근원 지향성이 잘 통합되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다음의 두 작품은 고전적 투명성과 사물의 구체성 그리고 일정한 형이상학적 차원에 대한 그리움까지를 아우르고 있는 가편들이다.
꽃 피는 공중전화 / 김경주
퇴근한 여공들 다닥다닥 세워 둔
차디찬 자전거 열쇠 풀고 있다
창 밖으로 흰쌀 같은 함박눈이 내리면
야근 중인 가발 공장 여공들은
틈만 나면 담을 뛰어넘어 공중전화로 달려간다
수첩 속 눈송이 하나씩 꾹꾹 누른다
치열齒列이 고르지 못한 이빨일수록 환하게 출렁이고
조립식 벽 틈으로 스며 들어온 바람
흐린 백열등 속에도 눈은 수북이 쌓인다
오래 된 번호의 순들을 툭툭 털어
수화기에 언 귀를 바짝 갖다 대면
손톱처럼 앗! 하고 잘려 나갔던 첫사랑이며
서랍 속 손수건에 싸둔 어머니의 보청기까지
수화기를 타고 전해 오는 또박또박한 신호음
가슴에 고스란히 박혀 들어온다
작업반장 장씨가 챙챙 골목마다 체인 소리를
피워 놓고 사라지면 여공들은 흰 면 장갑 벗는다
시린 손끝에 보푸라기 일어나 있다
상처가 지나간 자리마다 뿌리내린 실밥들 삐뚤삐뚤하다
졸린 눈빛이 심다만 수북한 머리칼 위로 뿌옇다
밤새도록 미싱 아래서 가위, 바위, 보
순서를 정한 통화 한 송이씩 피었다 진다
라디오의 잡음이 싱싱하다
-2003년 <대한매일> 신춘문예 당선작
이 작품에는 눈 오는 밤 야근 중인 가발공장 여공들이 틈만 나면 담을 뛰어넘어 공중전화로 달려' 가 '수첩
속 눈송이 하나씩 꾹국 누' 르는 구체적이고 아름다운 장면이 담겨 있다. 물론 이 아름다움이 낭만적이고 심미적인 풍경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거기에는 조립식 벽 틈으로 스며 들어온 바람 ' 때문에 '흐린 백열등 속에' 눈이 쌓이는 고단한 노동의 시간이 출렁이고 있다. 순간의 일탈을 함의하는 '공중전화' 에서 그녀들은 오래 된 번호의 순들을 툭툭 털어 / 수화기에 언 키를 바짝 갖다 대' 고 '손톱처럼 앗! 하고 잘려 나갔던 첫사랑' 을 회상하기도 하고 '서랍 속 손수건에 싸둔 어머니의 보청기까지 / 수화기를 타고 전해 오는 또박또박한 신호음' 을 듣기도 한다. 이러한 표현의 연쇄는 사물 혹은 상황의 구체성과 시적 주체의 역동적 상상력을 뛰어나게 결합시키고 있다
이어서 노동의 시간이 끝나고 그녀들은 면장갑을 벗은 채, '시린 손끝에 보푸라기 일어나 있' 는 것과 '상처가 지나간 자리마다 뿌리내린 실밥들 삐뚤삐뚤' 한 것을 내려다본다. 그 보푸라기' 와 뿌리내린 실밥들' 이야말로 그녀들의 상처이자 삶이자 꽃이다. '졸린 눈빛' 으로 밤새도록 미싱 아래서' 노동을 하면서 '가위, 바위, 보/순서를 정한 통화 한 송이' 를 피웠다 지웠다 한 그녀들의 젊음은 라디오의' 싱싱한 잡음' 을 배경으로 한송이씩 피었다 진다' . 이 같은 생동과 소멸 그리고 피고 지는 형상의 상상적 대비는 짙은 페이소스로 공장 안을 채우고 있다. 더불어 이 작품 곳곳에 숨어 있는 '소리' 와 그 소리를 감각화하는 '첩어' 들은 매우 중요한 시적 장치들이다. 이를테면 공중전화의 또박또박' 한 신호음이나 작업반장 장씨가 남기고 간 `챙챙' 거리는 체인 소리 그리고 라디오의 싱싱' 한 잡음, 나아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자전거들, 삐뚝삐뚤 한 실밥들도 작품 전체의 감각적 일렁임을 돕는 중요한 운율적 장치들이다.
이처럼 눈 내리는 공장에 꽃을 피우는 '공중전화' 는
현실적 고통 속에서도 그들끼리 은밀한 소통을 하게 하는 상상적 표상으로 기능하고 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는 어머니와 통화하고 지나간 시간들을 환기하는 장치이지만 궁극적으로는 현실의 문맥을 넘어서는 그들내부의 대안적 상징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작품은 삶을 객관적으로 투시하는 시선을 절제된 언어로
표현하는 동시에 사물의 핵심을 놓치지 않는 시적 역량
(심사평)을 보여준 것이다.
귀로 듣는 눈 / 문성해
눈이 온다
시장 좌판 위 오래된 천막처럼 축 내려 앉은 하늘
허드레 눈이 시장 사람들처럼 왁자하게 온다
쳐내도 쳐내도 달려드는 무리들에 섞여
질긴 몸뚱이 하나 혀처럼 옷에 달라붙는다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실밥을 따라 떨어진다
그것은 눈송이 하나가 내게 하고 싶은 말
길바닥에 하고 싶은 말들이 흥건하다
행인 하나 쿵, 하고 미끄러진다
일어선 그가 다시 귀 기울이는 자세로 걸어간다
소나무 위에 얹혀 있던 커다란 말씀 하나가
철퍼덕, 길바닥에 떨어진다
뒤돌아보는 개의 눈빛이
무언가 읽었다는 듯 한참 깊어 있다
개털 위에도 나무에도 지붕에도 하얀 이야기들이 쌓여있다
까만 머리통의 사람들만 그것을 털어내느라 분주하다
길바닥에 흥건하게 버려진 말들이
시커멓게 뭉개져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다
그것이 다시 오기까지 우리는 얼마를 더 그리워해야 하나
200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
이 시의 배경은 눈 오는 날의 거리이다. 거기에는 시장 좌판 위 오래 된 천막처럼 축 내려앉은 하늘' 이 있고
시장 사람들처럼 왁자하게 내리는 허드레 눈'이 있다. 기층 언어의 카니발을 한몸에 안고 있는 시장과 그곳 사람들의 언어로 유추된눈'은 '말 한 마디 건네지 못하고 실밥을 따라 떨어' 지는 존재로 화한다. 말 한 마디 못하고 떨어진눈'의 흔적은 눈송이 하나가 내게 하고 싶은 말' 이 실현되지 못한 부재의 풍경이기도 하다. 그래서 시인의 시선은 길바닥에 하고 싶은 말들' 이 여기저기 흡어진 채로 가득한 것을 보게 되고, 미끄러워 넘어진 행인'도 다시 일어나 '귀 기울이는 자세로 걸어' 가고 있는 것을 보게 되고, '소나무 위에 얹혀 있던 커다란 말씀 이 '철퍼덕, 길바닥에 떨어' 져 '뒤돌아보는 개의 눈빛' 조차 '무언가 읽었다는 듯 한참 깊어 있'는 풍경을 보게 되는 것이다.
생명들끼리의 이 같은 골똘한 소통은 개털 위에도 나무에도 지붕에도 하얀 이야기들이 쌓여 있다는 진술로
인해 그리고 길바닥에 흥건하게 버려진 말들이 / 시커멍게 뭉개져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다' 는 진술로 인해 그 몸을 비극적으로 바꾼다. 까만 머리통의 사람들' 은 결국 그것을 듣지도 보지도 못하고 털어내느라 분주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다시 오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를.더 그리워해야 하나 하는 탄성은 그래서 인간이 결국 궁극의 언어에 다가갈 수 없는 모순적 존재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매우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소재들 예컨대
시장/실밥/길바닥/행인/소나무/개/지붕' 에 촘촘히 박
혀 있고 흡어져 있는 '눈' 의 흔적을, 그리고 그것의 점진
적 소멸(해빙) 과정을 결국 궁극적인 말씀에 대한 그리
움으로 환치하는 표상을 보여줌으로써, 구체적인 사물을 통해 우리가 잃어버린 궁극적 근원에 대한 강렬한 지향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경쾌한 전도( )를 통한 시적 발견의힘
그런가 하면, 이번 당선작들 가운데는 우리의 지리멸
덜한 일상의 한 풍경을 새로운 시적 발견을 통해 제시하
고 치유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시편들이 다수 있다. 그
시적 발견' 이란, 일상적으로 친숙하여 이제는 고형화되
어 버린 사물이나 상황에 대하여 역설적이고 비의적으
로 접근하는 상상력과 형상을 함의한다. 이러한 전도와
역설의 방식은 우리의 삶을 새롭게 충격하고 새로운 질
서로 나아가게 하는 고전적 힘이 되기도 한다
다음 작품은 주체(시선)와 대상(사물)을 경쾌하게 뒤
집어보는 상상력을 통해 새로운 시적 발견에 이르는 도
정을 보여주고 있다.
신발론 / 마경덕
2002년 8월 10일
묵은 신발을 한 무더기 내다 버렸다
일기를 쓰다 문득, 내가 신발을 버린 것이 아니라 신발이 나를 버렸다는 생각을 한다 학교와 병원으로 은행과 시장으로, 화장실로, 신발은 맘먹은 대로 나를 끌고 다녔다 어디 한 번이라도 막막한 세상을 맨발로 건넌 적이 있었던가 어쩌면 나를 싣고 파도를 넘어 온 한 척의 배 과적過積으로 선체가 기울어버린. 선주船主인 나는 짐이었으므로,
일기장에 다시 쓴다
짐을 부려놓고 먼 바다로 배들이 떠나갔다
2002년 8월 10일 / 묵은 신발을 한 보따리 내다 버렸다는 일상의 고백으로 시작되는 이 시편은 그후 '일기를 쓰다 문득' 발견한 내가 신발을 버린 것이 아니라 신발이 나를 버렸다는 생각' 이 시의 궁극적인 전언(름)
이다. 시인에게 '신발' 이란 (물론 시인이 신고 분주하게
오간 것이지만) 학교와 병원으로 은행과 시장으로 화장
실로' 맘먹은 대로 나를 끌고 다녔던 존재였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정작 나'는 어디 한번이라도 막막한 세상을 맨발로 건넌 적이 있는가' . 그러한 생각이 미치는 순간 신발은 시인의 상상력 안에서 배'로 화한다.
물론 외양의 유사성이 신발'과 배'를 결속하고 있지만, 그보다는 누군가를 싣고 어느 곳에서 다른 곳으로
움직이는 공간이동의 형식이 양자의 공통점이다. 시인이 어쩌면 나를 실고 파도를 넘어온 한 척의 배'가 신발' 이 아닐까 생각하는 까닭도 그것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자기 자신은 과적으로 선체가 기울어버린 선주'가 되고 곧바로 '짐' 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 같은 반성적 시선을 시인은 일기장에 다시 쓴다
짐을 부려놓고 먼 바다로 배들이 떠나갔다' 고 말이다
과잉된 흔적이 전혀 없는 깔끔한 소품으로서, 시적 발견의 힘이 당당하게 느껴지는 시편이 아닐 수 없다.
다음 작품은 고전적인 길'의 상상력을, '길 스스로
주어가 되게 하는 어법을 통해 제시함으로써 시적 발견
에 이르고 있는 시편이다
돌 속의 길이 환하다 / 신정민
밤새 내린 눈을 모포처럼 둘러 쓴 길이
꽁꽁 얼어붙은 강을 건너고 있다
눈길 위로 걸어간 발자국
먼저 간 발자국 위를 다시 걸어
뒤엉킨 길이 또 하나 걸어가고 있다
강둑에서 멈춘 발걸음들
문득 발자국의 임자가 궁금하다
강 건너에 도착한 풍경들
마주보고 서 있다가
발이 시릴 때쯤 안다
멀리 있는 하늘이 제일 먼저
이 길을 건넜으리라
그 아래 몰골 드러낸 산이 건넜을 테고
그 다음엔 산등성이의 그림자가
이 길을 건넜을 것이다
털갈이하는 짐승처럼 서있는 나무들도
눈길 위에 발자국을 남겼으리라
건너온 길을 바라보며
제 발자국 헤아리지 않으며
얼어있는 강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
묵묵히 듣고 있는 것이다
건너지 않고 서있는 나를
아무 말 없이 기다리는 풍경
강 건너 저쪽으로 걸어 들어간다
누군가의 발자국을 지우며 간다
* 2003부산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시인은 자신이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길' 스스로
걸어가고 있다는 발상을 통해 서서히 주체를 지우면서 풍경 자체를 전경화하고 있다. 밤새 내린 눈을 모포처럼 둘러 쓴 길이 / 꽁꽁 얼어붙은 강을 건너고 있다'
"눈길 위로 걸어간 발자국 / 먼저 간 발자국 위를 다시 걸어 / 뒤엉킨 길이 또 하나 걸어가고 있다" 하는 풍경
묘사는 그 자체로 상상적이고 탈주체화된 모습인 것이다
여기서 여러 형상으로 제시된 길'은 강둑에서 멈춘 발걸음들 / 문득 발자국의 임자 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면서 그것이 강 건너에 도착한 풍경들 / 마주보고 서 있다가 / 발이 시릴 때쯤 멀리 있는 하늘이 제일 먼저 / 이 길을 건녔으리라' 는 사실을 알게 함으로써, 모든 우주적 질서가 어울려 만들어낸 풍경임을 암시한다.
이어서 시인의 상상은 '산' 과 '산등성이의 그림자가 /
이 길을 건넸을 것이라는 것, 그리고 털갈이하는 짐승
처럼 사 있는 나무들도 / 눈길 위에 발자국을 남겼으리
라' 는 것을 거듭 연상하는데, 이는 건너온 길을 바라보며 / 제 발자국 헤아리지 않으며 / 얼어 있는 강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 / 묵묵히 듣고 있는 주체가 자신을 아무 말 없이 기다리는 풍경' 과 말없이 하나가 되게 하는
과정인 것이다. 이처럼 새로운 시적 발견과 표현을 통해
우리는 우주에 편만한 생의 비의를 여러 풍경으로 접하
게 되는 것이다
자기 은폐와 자기 현시의 사이에서
앞서 말했듯이, 신춘문예가 지향하는 일종의 '모범답안 증후군' 은 올해도 변함없이 지속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알맞은 길이(촌철살인의 단형이나 장광설에 가까운
장형은 반드시 기피된다)와 단아하게 짜여진 시상(지나
친 난해 시편이나 문맥의 소통이 불편한 해체 시편들 역
시 기피된다), 그리고 소통이 편안한 보편적 상징에 얽매이는 것이 그 공통의 경향일 것이다. 그래서 시인들은
보편적으로 공유 가능한 주제와 그것을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은유나 상징에 기대고 있다.
생각해 보면, 신춘문예' 라는 연례적 관행이 한해 한 해의 문학적 흐름과 방향을 적시하는 역할을 하는 데는
여전히 미흡한 제도적 한계를 안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지원자들은 자신의 독자적인 미학을 소신껏 펼치기보다는 일종의 '모범답안 을 만들어 심사위원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기획을 하게 되고, 당선하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새로운 좌표를 세워갈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모범생들을 통해 학교 현실을 진단할 수
없듯이, 신춘문예 당선작들을 통해 한 시대의 저류를 모두 다 들여다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만큼 신춘 문예' 는 기성 문단으로 나오기 직전, 일종의 자기 은폐와 자기 현시의 양가를 다 보여주는 성격을 갖고 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그런 한계를 감안해 보더라도, 우리가 살핀 올해의 신춘문예 당선작들은 예년에 비해 완결성과 참신성에서
취약성을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거기다가 점점 더 매너리즘에 빠지고 있는 단정한 시편들, 특정 언론사에서
특정 심사위원을 몇 년째 고집하는 현상(그러므로 심사위원들을 미리 예상할 수 있게 되고, 자연스럽게 응모작들이 심사위원들의 취향을 의식하게 된다) 등이 겹쳐 신춘문예의 참신한 역동성은 확연히 감소되었다.
그러나 이 같은 지적은 다만 신춘문예의 부정적 징후에 대한 한시적 우려일 뿐이고 여전히 신춘문예의 순기능은 장려되고 확대되어야 한다
말할 것도 없이 이제 현재적 시인이 된 이들에 대한
최종적인 가치 평가는 앞으로 펼쳐질 가혹한 자기 쇄신과 확장의 너비와 깊이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다. 당선작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확대 재생산하는 원환에 걷히지 않고, 다양한 상상력과 사물의 비의를 투시하는 구체적인 형상화 능력을 갖출 것이 요구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