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과 지혜를 따르는 자의 결말
(잠언 1장 16-33절)
16-20.대저 그 발은 악으로 달려가며 피를 흘리는 데 빠름이니라 새가 보는 데서 그물을 치면 헛일이겠거늘 그들이 가만히 엎드림은 자기의 피를 흘릴 뿐이요 숨어 기다림은 자기의 생명을 해할 뿐이니 이익을 탐하는 모든 자의 길은 다 이러하여 자기의 생명을 잃게 하느니라
“대저 그 발은 악으로 달려가며 피를 흘리는 데 빠름이니라”
악을 도모하는 자는 결국 피를 흘리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한다. 악을 도모하는 자가 하나님을 대적하고 불의를 일삼는 자들이다. 악인들의 궤계가 궁극적으로 실패하게 될 것임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물이 쳐진 것을 보고도 그 미끼에 유혹되어 함정에 걸려드는 어리석은 새처럼 악한 자들 역시 과다한 탐욕에 눈이 멀어 그들이 놓아둔 덫에 그들 스스로가 걸려든다는 것을 비유함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졌던 보응의 원리를 잘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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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멸을 가져올 뿐인 죄의 유혹을 경고한 데 이어, 지혜를 의인화시킴으로써 지혜에의 권고와 초대에 대한 순종의 유익함, 그리고 이를 거절한 자에게 있는 징책과 심판을 선고하고 있다.
21-23.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며 시끄러운 길목에서 소리를 지르며 성문 어귀와 성중에서 그 소리를 발하여 이르되 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내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지혜가 그리스도와 동일시된다. 마치 예수 그리스도께서 광장에서, 성문 어귀에서 유대지도자들에게 큰 소리로 외치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어리섞은 자(레침)는 조롱하는 자란 의미로 경건한 생활을 조롱하며 하나님의 말씀과 경고를 가벼이 여기고 멸시하는 자를 가리킨다.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영(루아흐)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내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나의 영은 성령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 회개하는 자에게 성령을 부어서 거듭나게 하신다. 이사야 11장 2절에서, 성령은 지혜와 총명의 신, 지략과 재능의 신, 그리고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라 하고 있다.
내 말(데바라)은 지혜에 내재되어 있는 포괄적인 사상이나 교훈들을 의미하며, 보이리라는 체험적으로 깨달아 알게되는 것으로, 말씀에 생명과 능력을 부여한다.
24-26.내가 불렀으나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폈으나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여호와 신앙을 잊어버리고 삶의 지향점을 상실함으로써 방황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주목하며 그들로 하여금 가까이 오도록 하는 표현이다.
책망은 악을 행하지 말라는 강한 의미를 가지는 데 반해, 교훈은 적극적인 선의 실천에 대한 권고적 의미를 함축한다. 지혜의 권고를 거절한 악인들이 당하게 될 결과적 심판의 엄중성을 점층법과 열거법을 사용하여 강조하고 있다.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조롱과 멸시의 의미를 점층적으로 강조하는 표현으로 방관자적 조소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27-30.너희의 두려움이 광풍 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 같이 이르겠고 너희에게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니 그 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그래도 내가 대답하지 아니하겠고 부지런히 나를 찾으리라 그래도 나를 만나지 못하리니 대저 너희가 지식을 미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며 나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나의 모든 책망을 업신여겼음이니라
열성적인 부르짖음과 기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로부터 아무런 응답도 받지 못할 것임을 나타낸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부르짖음에 대해 무관심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던 은혜의 시기, 곧 회개와 용서의 때에 돌이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악인들이 당할 심판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있다. 곧 악인들은 계속되는 지혜의 초정과 권고를 무시하고 스스로를 파멸로 이끄는 어리석음을 선택했으며, 종교적, 윤리적 삶의 원리를 제시하는 지식을 경멸하였기에 마땅히 엄중한 심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31-33.그러므로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으며 자기 꾀에 배부르리라 어리석은 자의 퇴보는 자기를 죽이며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키려니와 오직 내 말을 듣는 자는 평안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안전하리라
“그러므로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으며 자기 꾀에 배부르리라”
자기 행위의 열매는 자신이 행한 행동의 결과를 비유한 것으로 모든 심판과 형벌의 원인이 바로 악인들 스스로에게 있음을 보여 준다.
꾀(모에쨔)는 악한 궤계나 악의적인 모략을 의미한다. 배부르리라(사바)는 과식하여 물리게 하다 라는 뜻을 가진다. 근원적인 만족을 얻지 못한 자가 과한 욕망을 품고 그것을 만족시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 을 가리지 않는다면, 그는 스스로에 대해서도 좌절과 환멸을 느낄 수밖에 없게 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어리석은 자의 퇴보(메슈바)는 자기를 죽이며 미련한 자의 안일(샬와)은 자기를 멸망시키려니와”
메슈바는 돌아서다란 의미의 슈브에서 파생된 말로 하나님께로부터 떠나 등을 돌린다는 뜻의 배교, 반역을 가리킨다.
샬와는 나태, 부주의함, 세속적 성공을 나타내는데, 이러한 거짓 평안은 영적 부패와 인간을 쾌락과 물질의 노예로 전락시킨다.
“오직 내 말을 듣는 자는 평안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안전하리라”
내 말을 듣는 자는 지혜의 모든 권고와 초청을 듣고 따름으로써 전인격적으로 순종하는 자를 지칭한다. 현세적인 안전함을 넘어서 지혜의 충고와 권고에 순종하는 의인이 누리게 될 궁극적이며 영원한 영적 평안을 가리킨다. 이 평안은 미래적인 비전일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현재적 의미의 평안이기도 하다.
(요약 정리)
잠언 1장 16-33절은 악의 유혹을 경계하고, 지혜의 권고를 따르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실천적 지혜와 도덕적 선택의 결과를 명확히 보여준다
솔로몬은 젊은이들에게 악한 자들이 부정한 이익을 위해 사람을 꾀고, 폭력과 탐욕으로 죄를 행하려 한다는 사실을 경고한다. 그들은 함께 제비를 뽑고, 다른 사람을 해치며 재물을 얻으려 하지만, 그 길에 발을 들이지 말라고 권고한다. 그리고 지혜를 따르라고 권한다.
지혜는 거리와 광장에서 모든 사람에게 부르짖으며, 경고를 무시하는 자에게 재앙이 임할 것을 알린다. 지혜를 무시하고 악을 따르는 자는 자신의 선택으로 멸망에 이르게 되지만, 지혜를 듣고 순종하는 자는 안전과 평안을 누리게 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악인의 꾀를 따르지 말라는 것이다.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서 비롯되며, 이를 따르면 삶의 안전과 평안을 얻는다. 지혜를 따르는 자는 보호받고, 무시하는 자는 재앙과 멸망을 경험한다.
오늘날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만 지혜를 따른 자가 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3장 19-20절『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이니 기록된 바 하나님은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
이 세상 지혜는 인본주의 사상을 의미한다. 인본주의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합리적이고, 지혜롭게 보이지만, 하나님께는 어리섞은 것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생각과 인간의 생각은 다르기 때문이다.
인본주의는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인간 중심의 기독교 사상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러가지 주제로서 인본주의가 있으나, 구원관에 대한 인본주의에 대해서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구원관은 죄의 문제와 부활이 핵심 주제이다.
첫째, 죄에 대해서 인본주의 사상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것이 죄의 근원으로 여기므로, 계명을 지키면 죄가 아니라는 것으로 받아드린다. 그러나 아무리 계명을 철저히 지키려고 해도 마음의 탐욕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죄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이 죄의 근본이다. 그 탐욕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으라는 것인데, 계명을 지키면 죄가 없는 것으로 그들은 생각하는 것이다. 이게 바리새인들이 생각하는 바와 같은 것이다.
두번째, 부활에 대해서도 인본주의 사상을 가진 신도들은 육체가 죽은 후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생각한다. 현재적 부활을 말한다면, 그들의 육의 눈으로 나타나는 육체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부활을 육체가 죽어서 신령한 육체로 부활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부활은 영적인 부활을 의미하며, 부활은 이전으로 돌아감을 의미한다. 인간이 되기 전에 하나님 나라에서 천사의 영으로 있었으나, 하나님께 범죄하므로 인간이 되었다. 그래서 인간 속에 있는 영이 다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는 것이 바로 부활이라는 것이다. 부활은 영이 육의 몸이 아니라 영의 몸을 입는 것이 부활이다. 신도들의 생각으로는 받아드릴 수 없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