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영화 '묵공'이나 모리 히데키씨의 묵공등 원작만화를 구해 보면서
(...물론 어둠의 경로입니다만;; 개인적인 변명을 하자면 하나는 아직 미개봉이오 하나는 절판입네다;;)
개인적으로 묵가사상에 관심이 참 많아졌습니다. 겸애,비공,비악,절장등 참 흥미로운 사상이 많더군요.
하지만 얼마전 술라 펠릭스님과 리플교환을 나누며 묵가의 최후에 대하여 의문이 생겼습니다.
물론 지금 제가 대형서점이나 도서관에 갈만한 형편이 아니기 때문에
(회사기숙사가 삼수갑산 입네다. 밤중에 나오면 보이는것은 산그림자뿐 ㅇㅈㄴ)
굉장히 한정된 자료들(인터넷과 브리테니커 사전, 그리고 몇권의 책 뿐입네다 ㅠㅠ)의 한계가 있습니다만 이제껏 수집한 정보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묵가는 유가와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2.일반적으로 유,묵이라고 묶어서 통칭할 정도로 당시로서는 손꼽히는 사상이었다.
3.거자의 인솔아래 일종의 종교집단적 색채까지 띄었으며 주된 추종자는 하급무사나 기술자와 같은 중,하층민들이었다.
4.묵가의 사상은 실용성을 강조한다.(이론을 검증하는 3가지 단계와 4가지 기준, 호화-환락성 음주가무를 폐하자는 비악, 장례를 간소히 하자는 절장등)
5.침략전쟁을 반대했다.(비공사상)
6.[다른사람 다른나라]를 [내몸 내나라]같이 평등하게 사랑하자는 겸애사상을 주장했다.(아울러 이 겸애사상은 유가의 맹자와 같은이에게는 위아래도 모르는 불개똥쌍놈..이라는 평을 들었습네다.)
7.초나라 양성군영지 방어전 당시 180여명의 묵가인들이 모두 전사하거나 자결한후 일대 타격을 입는다.(당시 묵가인들 사이에서도 이대로가면 여기서 전멸하고 묵가의 맥이 끊기니 성을 버리자는 의견이 나올 정도로 타격이 컸습니다.)
8.이후 조교화와 본질을 벗어난 강대국 편들기등으로 치닫고 이에 반대하는 묵협집단들이 갈라져나가는등 사분오열 하다가 진나라의 전국 7웅 통일과 진한교체기를 전후로하여 소리없이 사라져 버린다.
도대체 묵가 집단이 자취를 감춰버린 이유는 뭘까요?
술라 펠릭스님께서는 '당시 중국인들에게는 너무 이질적 사상이었기 때문에'라면서 [자연소멸론]을 얘기하셨습니다만. 제가 열심히 찾아본 바로는(물론 제 능력이 일천하고 인터넷의 한계일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런 주장은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오히려 모리 히데키씨의 만화 묵공에서나 조금 찾아볼수 있는 주장이더군요. 그것도 [아닐까?]하는 식의 추측 정도의 수준으로요.
물론 술라 펠릭스님의 [법가계열이 주도한 분서갱유는 전국적이지도 장기적이지도 않았다]나 [사상이나 학문은 탄압한다고 없어지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라는 의견에는 저도 동감합니다. 사상이나 학문은 탄압한다고 쉬이 없어지는것도 아니거니와 겨우 2대까지만 해먹고 와장창 자빠진 통일 진나라에게는 애시당초 조직적인 학술-언론 탄압을 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이나 자연소멸론에도 헛점은 있는것 같습니다. 학문이라는게 탄압한다고 없애기 쉽지 않은만큼 스리슬쩍 영거영거 사라지는것도 쉽지 않습니다. 묵가는 단순히 괴짜주장을 하는 괴짜집단이 아니었습니다. 전국시대 당시만해도 유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사상집단으로 묵가 사상은 당시 중국의 약소국과 하층민들 사이에서 충분히 공감을 얻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몇몇 광신자로 그런 세력을 구축하고 농성전이라면 천리길을 마다하고 아무런 이득도 약속받지 않은채-승패조차 상관없이- 참전하는 사람들을 모을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모리 히데키씨가 지적한대로 이질적인 문화라도 얼마든지 소화해내는 중국인들이었습니다.(여담이지만 사실 이게 중국인들의 무서운 점이긴하죠;;)
제 의문을 한마디로 줄이자면 [그정도 사상집단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자연소멸?]인거죠;;
글쎄요 이런 비유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한 2천년쯤 후 후세의 사가들이 20세기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을 [이질적인 사상으로 인한 공산주의의 자연소멸]이라고 평한다면 어떨까요? 그런 느낌입니다.(물론 상당한 분량의 비약이 첨가되었습니다만. 20세기의 100년이라는 시간은 2천년이라는 시간에 비하면 터무니 없이 짧죠. 어쩌면 후세의 사가들은 수많은 사상가와 운동가들이 목숨걸고 벌이던 일을 연못가에 생긴 작은 파문정도로 치부해 버릴지도 모릅니다. 우리도 실제 과거의 역사에 관하여 종종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개인적으로 타당하다고 생각되는 묵가의 소멸원인은 이렇습니다.
1.종종 강대국의 침략정책(진나라의 통일정책 포함)에 적극적으로 반대항에 서곤했던 묵협들은 끊임없이 피해를 입었으며.
2.후일 묵가사상의 조교화와 타락이 수많은 추종자들에게 실망을 안겨주며 이반을 불러왔다.
3.사분오열된 상태에서 맞은 통일 진나라라는 체제는 묵가의 사상을 탄압했고
4.진한교체기라는 대규모 혼란기를 거쳐 들어선 통일 한나라는 통치의 용이성을 위해 유가를 장려했다.
물론 많은 추측과 비약이 첨가되었습니다만-_-;; 최소한 3,4항만큼은 개인적인 의견이 아닌것 같습니다.수집한 자료들중에 [진나라의 탄압]과 [한나라의 숭유정책(심한경우엔 유가일존(一尊)정책이라고 지적하기 까지 하더군요)]를 원인으로 지적하는 경우는 많이 봤습니다.(후대의 중국역사는 거의 모두 유학자들의 손으로 집필 되었으며 유학자들은 전통적으로 묵가사상에 부정적이었다는 점도 한몫을 하는 듯 합니다.실제로 묵가 사상이 다시 빛을 보게되는것도 청나라 후기에 들어와서입니다.)
과연 묵가사상은 자연소멸일까요 고사일까요?
개인적으로는 고사쪽에 한 표 던지고 싶습니다.
여러 고수님들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꼼므린코미사르 크베사공~ 나와주세요 -ㅂ- 케케)
첫댓글 다른건 모르겠구요 만화책 묵가는 중국인들 뺨치는 일본작가의 구라입니다
만화적 상상력이 많이 첨가되었다는건 인정합니다만(묵협집단을 닌자처럼 그리거나-_-;; 주인공 혁리가 마지막에 일본으로 건너간 도래인이 된다거나 하는) 게다가 그런 종류의 책들이 한가지 집단이나 인물을 먼치킨으로 끌어올리는게 보기 힘든일도 아니고요. 모리 히데키씨의 묵공은 묵가 사상자체는 비교적 객관적으로 그렸고 무엇보다도 만화로 재조명 했다는데 의의를 두고있습니다. 제가 원하는 대답은 만화책이 짱개 뺨치는 구라냐 아니냐가 아닙네다. [딴건 모르겠는데 왜 쪽발이 구라를 들고와요]하는식의 댓글은 좀 실망스럽군요-_-;;;
한중일 불문하고 대다수 사람들에게 완전히 묻혀있는 묵가라는 소재를 발굴해서 만화화시켰다는 것만 해도 대단해 보입니다만...그리고 진의 중국 통일과 묵가의 소멸이라는 기본적인 역사 흐름은 결코 왜곡하지 않았습니다. 조연 및 엑스트라들의 의상 무구 고증에도 충실한 듯 하고요..
일단 묵가사상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유가 사상은 중앙 집권이고 묵가 사상은 소규모 소시민의 지방 자치 입니다. 당연히 전국시대 제후들은 유가 사상과 법가 사상과 같은 등의 중앙 집권 지향 이념을 선호했습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묵가 사상은 뒷전에 밀려나 서서히 사라지게 된것입니다. // 그리고 묵가 사상은 중국의 협객과도 상당한 연관이 있습니다만 이유는 묵가 사상은 소규모의 존립을 존중하기에 스스로를 지킬 방도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므로 자가 방어 체제를 구축하였고 묵공의 내용은 과장 되었지만 여하튼 대단할 정도로 소규모 전투 체제에 능했습니다.
이런 사상은 자객, 협객 등 소규모 단체의 사상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수백 수천의 중소제후가 있던 춘추전국시대에는 그들의 생존을 뒷받침해주는 사상인 반면 단일제국에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이네요...로마가 제국의 안정을 위해 결국 기독교로 갔듯이 중국도 결국 체제강화를 위해 단일 이념-법가 내지는 유가로 갔다는 말씀입니까?
예 그렇게 보는것이 통사입니다^^
제 생각도 비슷합니다. 대규모 제국이라는 단일 체제를 유지하는데는 유가나 법가가 더 유리하다는점(특히나 지배층의 입장으로). 동감합니다(영화 묵공 논쟁 당시부터 저도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 본문에 정작 제일 중요한 소멸원인을 빼고 적었군요 헐;;). 하지만 제 말은 이런 결과를 위해 지배층들이 음으로 양으로 법가나 유가사상을 지원해주고 분위기를 조장했는데 그것을 과연 [이질적 주장으로 인한 자연소멸..]이라고 볼수있겠냐는 말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려울것 같습니다.
방향을 잘못 잡아서 고사한거라고 봅니다. 청단님 말씀대로 국가는 유법가를 선호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국가이념으로 잡은것은 성공할 수가 없었죠. 아예 종교집단으로 나갔으면 어땠을까라고 생각해보지만... 묘하게 중국이란 장소는 '국교'라고 할 만한 정도로 자리잡은 종교가 없기에 이것도 그리 가능성이 높다고는 못하겠네요.
하지만 도교처럼 민간신앙에 녹아들어 그 명맥을 유지할 수는 있지 않았을까 라는게 세 생각입니다.
애시당초 중국의 사상이나 종교라는게 독자적으로 구별되기 보다는 후대로 갈수록 법가, 유가, 도가, 묵가, 음양가, 심지어 나중에는 불교까지 상호융합되어서 완전히 비빔밥처럼 되어버렸기 때문에....그중에서 유가와 도가가 강한 맛을 내며 지금까지 우리의 뇌리에 강하게 남은 반면에 묵가는 별 맛을 내지 못하고 흔적만 남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만...;;
초기 기독교와 비슷한 맥락이죠. 지배층에는 지지를 얻지 못했지만 "이방인" 계층에서 많은 호응을 얻었고, 특히 로마의 안정된 치세와 그리스인에게의 포교 (초기 신약 성서는 거의가 그리스어입니다), 초기 사도중 하나였던 바울이 시민권자였던 점, 그리고 주적이던 유대인 지배계층이 반란으로 인해 싹 쓸린 것 등. 비슷한 사상을 가지고도 한쪽은 몇천년을 군림하고, 다른 쪽은 거의 사라져 버렸죠.
묵가의 약점이라는게 사상을 집대성하고 전파할 스테디셀러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기독교하면 성경, 유학하면 논어, 법가 하면 한비자, 도교하면 도덕경같은 획을 긋는 서적이 있어서 그걸 다시 주석하고, 반박하고, 새롭게 재해석하는 가운데 진보하는데.. 묵가는...잘 모르겠군요..
유교도 진시황때 분서갱유로 많은 서적이 불탔습니다. 그래서 한나라 시대는 옛것을 복구하는 것이 그당시 유학의 주된 경향이었죠. 그러나 묵가에는 그런 움직임이 없었다는 것.
묵자 이야기가 나와서 답변같은건 아니고 겸애에 대해서 잠깐 적겠습니다. 묵자의 겸애는 무엇을 말할까요? 뭐 겸애 하면 나를 낮추고 상대방을 사랑하고 이런 식의 생각이 떠오르지만 그런 말은 아닙니다. 저도 잘은 모르지만 묵자의 겸애는 종교적인 사랑이아니라 비차등적인 사랑을 말합니다. 사랑에 등급을 두지 않는거죠. 예를 들어 말하면 내 어버이가 죽은 것이나 이웃집의 어버이가 죽은 것이나 똑 같이 슬퍼하라는 말이죠. 사람에 대한 평등한 사랑..요런말입죠. 그래서 맹자가 묵가를 비판하죠. 어찌 내 어버이의 죽음과 남의 어버이의 죽음이 같을쏘냐!
님 말씀에 덧붙히자면 어떤 문제든지 실현 순서에 따른 차등을 두는 것은 맹자를 위시한 정통유학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정통유가의 입장에서 修身齊家治國平天下 는 '자기 자신을 다스리기 전까지는 제가도 치국도 평천하도 이루어 낼 수 없다'는 말이지만 묵자의 방법론을 여기에 대입하면 '수신과 평천하는 동등한 성격이며 그것의 실현 역시 동시에 가능하다'는 비약이 가능해 진다는 거죠.. 결국 순서 따지기 좋아하는 전통유가입장에서 봤을 때 묵가의 '겸애사상'은 구체적 방법론이 결여된 이상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수 밖에 없는 거죠.
제 생각에는 현대에서는 묵가소멸의 명확한 증거사료가 나오지 않는한 어디까지나 추측에 머물것 같습니다. 자연소멸론 이외는 딱히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한가지 다른 설로서, 물론 이것도 자연소멸론 범주에 들어가지만- 묵가 자체가 유대교의 신비주의처럼 사막등에서의 폐쇄적인 구도자 집단으로 전환했다는 이론입니다. 대중과 거리를 두는 생활이 오랜세월 지속되는 동안 고대 그리스나 중동의 비밀교 집단처럼 서서히 사라졌다는 추측입니다.
고사론이 사실에 가깝지 않을까요.(물론 고사론은 제가 임의로 붙인 이름입니다만) 제창자의 원래 본질과 의도와는 다르게 변해가는 사상. 그로 인한 추종자들의 이반과 사분오열. 직간접적으로 가해지던 지배층의 탄압(대표적인 예가 분서갱유지요). 춘추전국시대와 진한교체기로 이어지는 길고 긴 전쟁(실제로 기록으로 남아있는 묵가의 경전중 18권 가량은 전해지지 않습니다) 통일된 세력의 등장으로 인해 통치이론의 전면으로 나선 유,법가. 정부적인 지원을 업은 유가(특히나 묵가사상에 부정적이던)의 학술적 공세 등등등. 이유야 많겠지요. 흔히 역사적 사건의 원인들이 그렇듯이요. 뭐 많은 토론들이 그렇듯이 이또한 결론이 나기 힘들
어 보입니다. 서로의 의견차이를 확인한 정도로 해두고 넘어가는게 좋겠군요. ps)그나저나 크베사공은 어딜 간건지-ㅅ- 좀 속시원하게 글이나 탁 써보지;; 쩝쩝;;
서양사전공이신걸로 압니다.동양사.그것도 동양사전공이라 해도 묵가는 동양철학 전공하신 분이 더 잘 아실 듯..
묵가의 사상은 정념보다도 이성에 바탕을 둔 사상같아요.
묵가 사상이 없어진건 진시황의 분서갱유가 원인일 지도 모릅니다. 진시황은 기본적으로 필요한 농서와 역법,천문 등 실용적인 책을 제외하고 사상이 담긴 책을 없애버릴라고 했죠. 나중에 유가나 도가 사상은 후학들이 발전 시킨거 겠죠. 그래서 고등학교때 배운 것처럼 한나라의 학문은 글자를 보고 뜻을 찾아가는 훈고학이고요 그리고 우리들이 익히아는 도교나 유교는 나중에 당, 송시대에 만들어 집니다. 묵가의 사상이 후예가 없어서 끊어진건 아닐런지요.
그리고 묵가는 후에 유학의 성인으로 추대되는 맹자가 가장 강력하게 비판한 학파 입니다. 그렇다면 후대에는 거의 이단처럼 취급되었을 지도 모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