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트>
낡은 무쇠솥뚜껑이 말한다
외진 곳 고물상 야적장에
녹슬고 낡은 무쇠솥뚜껑
팔려 왔다
부엌에만 있던 무쇠 밥솥 뚜껑은
기억과 추억의 일상들을 생각하는 것이다
밥 끓으면
솥뚜껑은 풀칠한 버불(Bubble) 입으로
눈물 흘리며 말한다
솥뚜껑 운전수 아줌마
재빠르게 상투 꼭지 잡고 밥솥 열면
압력에 눌려있던 김이 쏟아지며
깊은 한숨을 쉬고 있다
숨 돌릴 뜸도 없이 솥뚜껑은 다시 닫히고
밥 찜 드린다며 빨갛게 이글거리는 숯불을
솥뚜껑 등에 언저놓으니
뜨거운 무쇠솥뚜껑 열불 날 수밖에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솥뚜껑은 상투 달린 부엌의 양반인데
아녀자의 손에 의해 매대기치다
속살 후벼낸 훌쭉한 배
등 굽은 뚜껑은 일상의 고단한 삶이다
벅떼기 아줌마와 일생을 같이하다가
낡은 솥은 고물상으로 직행하고
무쇠솥뚜껑만은
후반기의 곡진한 삶이 다시 시작된다
오월 단오 나들이 나온 무쇠솥뚜껑
무쇠솥뚜껑 구이 맛이 좋다며
감자전 부치고 생삼겹살 굽는
불판 신세를 못 면한다
솥뚜껑은 뒤집힌 채 감자전 부침에
속앓이하고 있다
여름철 가족 모임 나들이에 따라나서면
뒤집어 놓은 채
생삼겹살 굽는 일만 한다
흘쭉한 배에는 또 감자적에 메밀전이다
굽은 등에는 삼겹살 익히니
속 덮고 겉 달아올라
안팍으로 죽살이친다
늘그막의 솥뚜껑
숙성된 주방기구라며
꽃단장 인테리어 코팅기름칠까지 하니
기름 잘 빠지고 맛좋다고 솥뚜껑 끌고 다닌다
화력 쎈 내걸이 위에
자빠지고 업퍼져 달궈지고 있다
이일 어찌할꼬
이제 세월이 흘러
낡고 녹슬어 고물상으로 팔려 왔으니
녹슨 마지막 생은 또 어디로 갈 것인가
절친한 벅떼기 아줌마가 생각난다
그립다
솥뚜껑 운전하던 그이 지금 어디 계신지
그이도 나와 같은 모습으로 살아계시는지
한 줌 흙으로 영면하셨는지
아줌마도 앞뒤 몸 사리지 않고
일만 하다가 헤어졌는데
부엌의 양반이라며 늘 칭찬하시던 그이
나의 상투 손잡이 움켜잡고
행주로 닦으시던 친근한 아줌마 생각난다
그땐 참으로
참하고 예쁘셨는데
지금 나- 무쇠솥뚜껑
두나의 외짝 신발 신세로
후미진 야적장에 버려진 채
황혼 별리가 되어 있으니
이걸로
이승의 일생
종 치는 것인가
시인 수필가 소설가 / 현법 Y. J. H.
카페 게시글
우리들의 이야기
낡은 무쇠솥뚜껑이 말한다<꽁트>
현법
추천 0
조회 310
24.03.20 06:40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