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동행
아래 글은 한전전우회에서 격월로 펴내고 있는 <電友會報>가 '편지 주고받기' 코너를 새로 만들면서 원고를 청탁해와서 쓴 편지입니다. 문장력이 짧아서 읽는이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대목이 나오더라도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30년도 더 지난 아득한 날에 사장님 손 맞잡고 악수하는 사진이 있습니다. 그때 이미 회사생활 20년이 지난 터라 최고경영자와 같은 눈높이로 마주섰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크게 고무되어 상기된 표정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그러고 날짜를 달리한 같은 장소에서의 또 다른 사진에선 중앙에 선 사장님을 에워싼 참석자들이 활짝 웃는 얼굴로 일제히 파이팅을 외치고 있습니다. 무대는 당시 판매수익으로 따져 전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사업장이지만 강당이 없어서 조회 때마다 서무과 사무실 책걸상을 한쪽으로 밀쳐야만 했던 부산진지점입니다.
그렇게 열악한 근무환경 속에서도 우린 그때 막 활기 있게 걷기 시작했으며 각자가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았고 서로를 칭찬하는 일에도 인색하지 않았습니다. 새로 부임한 사장님이 신바람 경영으로 내건 행동지침 때문이었습니다. 그러한 활력경영에 힘입어 우린 ‘신나는 직장 살맛나는 한전’을 구현하는 대열에 동참하였던 것입니다. 그때까진 고객인 국민들로부터 무사안일에 빠진 거대공룡이란 질타를 받아오던 기업이었으므로 어떤 식으로든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함에 직면해 있었던 것입니다.
그 무렵 전국 방방곡곡에 신사옥 건설 붐이 일었고 저는 먼저 준공된 전북지사와 경북지사 그러고 포항지점 사옥을 차례로 둘러본 후 울산지점 신축사옥 전기공사를 끝낼 수 있었습니다. 시쳇말로 여인숙에서 호텔로 바뀐 근무환경이 낯설어 직장생활을 해오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이렇게 행복해져도 괜찮은지를 스스로에게 물어야했습니다. 당시 사장님은 전국을 돌면서 조직원들을 격려하며 다독였고 ‘하늘의 뜻을 아는 사람에게선 향기가 날 수 있다’는 말까지 들려주었습니다.
아마도 그 절정은 85년 봄 지리산 노고단에서 펼친 ‘남부지역 전진대회’가 아니었을까 짐작됩니다. 영호남에서 각각 5백 명씩 무려 1000명이 한자리에 모여 최고경영자가 제시한 행동지침과 경영철학을 실천키로 다짐하는 함성이 산자락을 쩌렁쩌렁 울렸던 것입니다. 그때 사장님이 사업장을 직접 찾아 격려해준 감동은 지금도 많은 이들의 가슴에 남아있을 것입니다. 나라 잃은 암울한 시대에 태어나 숙명처럼 가난을 떠안고 살아왔던 저까지도 노년에 든 지금까지 그때 일을 잊지 못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리워할 어른이 있다는 것 자체가 삶에 얼마나 큰 위안을 주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사장님의 동정이 신문에 뜰 때마다 스크랩하면서 조용히 박수를 보내곤 했습니다. 그 덕분에 국제육상경기연맹 집행위원에 피선되고 대구세계육상 선수권대회를 유치한 낭보와 업적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도 합니다. 고백컨대 저는 요즘 인구에 회자되는 말로 하자면 사장님의 ‘광팬’이었던 게 분명합니다. 그랬던 제가 실로 꿈만 같은 일을 만나게 됩니다. 한전 4년 반의 경영업적이 망라된 책 <에너토피아>를 통해 영원히 묻힐 뻔했던 의인을 세상에 알리는 바람에 사장님을 직접 만나 뵐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만남으로 인하여 우리 부산지회는 사장님으로부터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고 다 함께 <에너토피아>를 공유하며 힘찬 박수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그만큼 행복감에 젖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필이면 그 무렵에 한전과 한수원에 불미스러운 일이 꼬리를 물었고 많은 국민들의 실망은 질타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장님은 전력산업의 선진화 방안으로 한전재통합을 주장하기에 이르렀고 그 당위성을 편지글로 보내주셔서 7백 부산 회원들과 공유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사장님 근황을 접하다보니 자연스레 35년 동안 이끌어온 국가안보의 한 축인 한미친선군민협의회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미8군에서 복무했던 군대생활로 인해 더욱 친숙하게 느낄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자유란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란 말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새기며 한국과 미국 간 동맹유대를 강화하고 주한미군과 한국인 사이의 상호친선과 이해를 증진시키는 일을 펼쳐나가는 회장님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북한의 불법남침으로 어린 날에 아버지를 잃었던 저는 국가안보에 대해선 남다른 관심을 가진 편입니다. 그러한 연유로 직접 회장님이 펴내고 있는 정기간행물 <브리지>의 권두언에서 밝힌 대로 북핵을 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미국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서 한반도에 전술핵을 배치해야 한다는 칼럼에 크게 공감하면서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게 됩니다. <에너토피아>가 한전 인재개발원 교재로 채택되어 후배들에게 전력사업의 살아있는 역사를 심어줄 수 있어서 퍽 다행스럽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고 연수원 안에 사장님의 업적을 기릴 수 있는 기념비를 세울 수 있길 바라는 이들도 적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아울러 월성원자력 안에도 자신의 귀중한 목숨을 걸었던 의인과 의인을 발굴하여 세상에 알린 인물의 미담을 담은 조형물이 가까운 시일 안에 설치될 수 있길 소망하게 됩니다. 제한된 지면관계로 줄이면서 한전 떠나며 사장님이 남긴 작별인사말을 다시 한 번 음미해 봅니다. ‘자연은 우리 인간에게 좋은 이치를 가르쳐 줍니다. 개울물은 소리 내어 흘러도 깊은 강물은 말없이 흐릅니다. 갈잎 사이로 부는 바람소리는 있어도 산등성이를 넘는 바람은 소리가 없습니다.’ 역동적인 삶 이어가면서 내내 건안하시길 빕니다.
강 문 석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