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의 눈으로 세상 보기
이현복
뱀 한마리가 산길을 가로지른다
나는 발등으로 이슬을 털며
더덕 뿌리 속으로 손을 넣는다
구멍의 형가 향기 속에서 날름거린다
손끝에 감기는 뱀의 생각을 뽑아버린다
돌 틈에 끼여 있는 더덕 뿌리가 뚝 끊어진다
끊어진 자리에 맺힌 하얀 진을 흙이 덮는다
독사가 꼬리를 흔들며 쳐다본다
구불구불한 나무뿌리가 뱀처럼 우글거린다
연두와 초록 사이가 골짜기를 덮는다
컹컹 노루 짖는 소리에 하얀 노루삼꽃이 핀다
부도가 난 친구를 위해
월급을 떼어 주고 카드까지 빌려 준 적 있다
처음엔 마다하던 이자도 넣어주며
약속을 지키던 친구가
어느 날부터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녀 웃음이 어둠 속에 감겨 있다
어린 독사가 나를 쳐다보며 꼬리를 흔든다
나 여기 있다고
뻐꾸기가 우는 풍경
돌배나무에 앉은 뻐꾹새가
제 울음을 가슴으로 뽑아낸다
마늘종 뽑는 손끝에서 뻐꾸기 울음이 감긴다
뽑혀 나온 구멍마다 뻐꾸기 울음이 고인다
숙인 등에 뻐꾸기 울음이 쌓인다
마늘 뿌리에 잠자던 매미 굼벵이가
눈 감은 채 뽑혀 나온다
돌배나무와 잎갈나무 사이에서 뻐꾹
마늘 대궁에 구멍은 하나눌 늘어가고 뻐꾹
마늘종 뽑아줘야 알이 굵어진다 뻐꾹
오목눈이 둥지에 알을 낳아놓고 뻐꾹
해질녘 어둠이 질 때까지
끼니를 거르고 뻐꾹 뻐꾹 뻐꾹
오목눈이 먹이를 받아먹으며 뻐꾹
봄 산에 뻐꾸기 울음이 고봉이다
― 이현복 시집, 『꽃과 밥 사이』 (문학의전당/2021)
이현복
충북 제천 출생. 충북대학교 대학원 산림치유학과 수료. 2019년 시집 『누군가의 웃음이 나를 살린다』를 출간하며 작품활동 시작. 제1회 윤동주신인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