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29:27 불의한 자는 의인에게 미움을 받고 바르게 행하는 자는 악인에게 미움을 받느니라 (개역개정판)
2025년 개봉했던 애니메이션 킹 오브 킹즈는 북미권에서 크게 흥행했고
국내에서도 130만 관객을 모으는 등 매우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었다.
대구에서 개척교회를 섬기시는 이모부와 이모는
주일학교 아이들을 데리고 더빙판과 자막판 각각 2,3번씩만 보실 정도였는데
영화의 스토리나 다른 문제점을 이야기하기에는
우리 자신의 문제점들이 더 크고 많지 않을까?
애니메이션에 철저한 신학적 입장을 반영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하는 이들은
우리의 삶이 신학적이고 성경적인지부터 비판을 하는게 우선이 아니었을까
이 만화영화를 보고 누가 예수를 믿겠느냐고 빈정대는 이들은
본인의 삶을 통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예수께로 돌아왔는지부터 돌아봐야하지 않을까?
몰몬교 논란도 있었지만
이 영화를 보고 몰몬교도가 된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지는 의문이다.
좌우지간 영적인 킹오브킹즈가 개봉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살벌하게 영적인 케이판 데몬 헌터스가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미국인들은
찰스 디킨스의 예수 이야기를 전하는 한국 애니메이션과
한국 귀신들의 K POP 이야기를 담은 미국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두 작품 모두에 출연한 불교 신자 이병헌 배우의 생각도 궁금하다.)
그리고 혜성같이 등장한 영화 신의 악단
평론가들에게 좋은 평가를 듣는 영화가 좋은 영화라기보다는
나의 삶을 변화시키는 영화가 좋은 영화라는 내 무식한 지론이 맞다면
이 영화는 좋은 영화이다.
손익분기점으로 추정되는 75만명 관객수는 넘어섰고
100만명이 넘어가는지가 제작사 입장에서는 관심일테고
15세 이상 관람가라 겨울방학 특수라는 것이 큰 메리트가 아닌 상황에서
같이 개봉한 중국 영화 리메이크 작인 만약에 우리라는 한국 영화도 흥행하는 가운데
설 연휴까지만 버텨준다면 킹오브킹스의 130만명을 넘어서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텐데
130만명이든, 1,300만명이든
내 삶과 생각을 변화시켰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오랫동안 인생 영화로 남을 듯 하다.
스토리나 구성, 연기력, 내러티브 등의 이야기는 남들이 할 것이다.
(어차피 이 영화는 올해말이든, 내년말이든 KBS 같은 곳에서 성탄특집 등으로 방영할 듯 하다. 영화 무명(2025)이 그러했듯이...)
특별히
84세의 연세에도 영하30도의 몽골 현지에서 함께 촬영했던 최선자 권사님의 열연은
많은 이들을 숙연하게 만든다.
어렸을 때는 무서운 안방마님 역할로 자주 TV에서 봤었는데,
그리고 무속 논란이 심했던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에 자주 나오셔서 좀 그랬긴 했지만...
사실 이 영화에서 가장 눈길이 가는 분이기도 했다.
MBC 성우극회 1기(1961년)...
연기력이나 내공이나 비교 자체가 될만한 사람이 그 영화 안에서는 아무도 없다.
젊은 배우들과 함께 무대인사에서도 젊은 감각과 영적 내공이 가득한 모습을 보여주셨는데
이후의 간증이나 TV인터뷰 등에서
내 건강이 허락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복음을 위해 달려가겠다는 말씀에 울컥했다.
우리 주변의 어르신들도, 그리고 우리도 85세까지 정정했던 갈렙처럼
건강하고 강건하게 지내게 되길 소망할 따름이다.
특별히 영화 끝부분에서
결국 순교의 길을 택하게 되는 박교순을 경멸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공산당 간부의 눈빛이 매서웠는데,
(그분의 연기력도 대단했다.)
그 옛날 반공드라마에서부터
가끔씩 보게되는(이제는 아주 자유롭게 보게될) 북한 매체에서 간혹 나오는
공산당원들 특유의 매서운 눈빛은 증오가 가득 차 있다.
원인이야 무엇이든
그들이 증오하는 바는 명확하다.
북한 당국의 사랑과 기대를 받아, 지하교회 성도들의 두려움과 경멸의 대상이었던 박교순(과 김태성)은
결국엔 그들의 사랑을 받고, 자신들과 동고동락했던 당의 미움을 받게 된다.
세상이 우리와 적절히 잘 지내고 있으면
영적으로 위험한 상황일 수도 있다.
거의 그럴 것이다.
요 15: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개역개정판)
서울 용산의 야경과 석경을 아름답게 비추었던
우리 교단 소속 한광교회가 재개발 구역에 포함되자
(이슬람 사원은 보존되는 가운데)
서울시는 존치를 요청하면서
교회 건물을 문화공간으로 바꾸기를 요청했다.
예배당 건물을 다른 공간으로 쓰는 것을
교회 입장으로서는 반대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서울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고
일반인들 입장에서야 야경거리(또는 촬영거리)에 불과한 예배당 건물을 철거해달라는 교회의 입장이
또 다른 증오와 환멸거리를 주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용산 찾을 일이 별로 없는 사람들 입장에서야 남일이겠지만...
교계에서 나서줘서
예배당 건물을 문화유적으로 등록한다든지
다른 방법을 썼더라면 좋았을텐데
우리 교계 어르신들은
많이 바쁘신 모양이다.
하긴, 해당 노회에서 함께 철거해 달라고 이야기했다니
내가 모르는 많은 사연이 있겠지...
어찌되었거나
저들이 갖는 미움이
정당한 것인지, 부당한 것인지를 따질 필요는 없다.
다만
창세기 20장에서 나이가 더 먹었을 아내 사래를 누이라고 또 속여서
그랄 아비멜렉 왕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을 뻔 하였고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네가 합당하지 아니한 일을 내게 행하였도다
네가 무슨 뜻으로 이렇게 하였느냐
질문 공세를 했을 때
아브라함의 대답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창 20:11)
너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방 민족이다...
어쩌면 이것은 믿음이라기 보다는
믿음의 조상이면서도 연약한 인간이기도 한
아브라함의 선민 의식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정말로 나의 이복 누이로서 내 아내가 되었음이라 (창20:12)
거짓말은 한 글자도 없었지만
그러면서도 속일 수가 있다는 것이 대단하다.
내가 그래왔다.
진실을 말함으로 속여왔고
상황을 포장하여 자신을 변호해왔다.
연약한 인간의 모습이 어쩔 수 없음을 웅변함으로써
결국 세상 사람들에게 너희도 우리와 다르지 않고, 오히려 더 못하다는 평가를 받게 했다.
그래서
더 많은 것을 가질 수 있었지만 포기하고 순교의 길을 선택한
북한 장교 교순의 믿음과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있지만 포기하지 못하고
아비멜렉처럼 교회를 향해 근본적 질문을 던지게 하는 나의 연약한 믿음이
더욱 더 서글프게 대비된다.
그래도 믿음은 가져야 한다.
어차피 받아야할 미움을 두려워하지 말고
어파기 가져야할 믿음을 더욱 견고히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영적 원리에 대해서 무지할 수 밖에 없는
그래서
“돈 내고 포교 당한 것 같아 기분 더럽다”는 반응을 할 수 밖에 없는
어느 악플러의 대응에 덩달아 분노하지 말고
오늘 나의 믿음을 돌아봐야겠다.
하정우 배우의 나레이션이 인상적이었던
영화 무명의 일본인 선교사들처럼
노리마츠 마사야스 선교사님처럼
'조선 국모가 일본인에게 시해당했다'는 소식에 가슴 아파하며
조선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고, 침을 맞으면서도
묵묵히 끝까지 그 길을 걸어가되
오다 나라지 선교사님처럼
신사참배는 잘못되었다고
담대하게
일본과 조선 모두의 미움을 받아도
끝까지 그 믿음을 지켜내셨던
그 분들의 믿음과
오늘을 겨우 살아내고 있는
나의 믿음을
다시금 돌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