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 포켓
원제 : Pickup on South Street
1953년 미국영화
감독, 각본 : 사무엘 풀러
출연: 리처드 위드마크, 진 피터스, 델마 리터
리처드 킬리
1947년 '죽음의 키스'로 33살의 나이에 뒤늦게 영화데뷔를 한 리처드 위드마크의 초기
경력은 주로 필름 느와르 영화였습니다. 워낙 데뷔작에서 사악한 범죄자 역할을 잘했고,
뒷골목 악당 같은 분위기의 이미지도 그렇고, 그 시대가 필름 느와르 영화 전성시대였던
이유도 있었고, '노웨이 아웃' '밤 그리고 도시' '거리의 공항' 같은 영화들을 통해서
필름 느와르 영화에서 활약하던 그의 그러한 이력은 사실상 1953년 출연한 사무엘 풀러
감독의 '픽 포켓'까지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후에는 '서부극' '전쟁물' '모험물' 등을
통해서 지적인 하층민 이미지로 폭을 많이 넓였습니다. 우리나라에 개봉러시를 이룬 그의
작품들도 50년대 중반 이후부터였고, 1958년 '고스트타운의 결투'부터 1964년 '샤이안'
까지 그가 출연한 12편중 10편이 우리나라에 개봉할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렸습니다.
양복에 중절모를 쓰고 밤의 도시를 누비는 그의 모습을 보여준 '리처드 위드마크 1기'
영화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픽 포켓'은 독립영화의 아버지 라고 불리우는
사무엘 풀러 감독의 초기 작품입니다. 80분 정도 시간의 짧은 영화인데 영화가 끝나는
시점에서 '아니 벌써 끝나나'하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한참 재미있는 상황에서
아쉽게 끝나버리니까요.
영화는 뉴욕의 지하철안에서 시작됩니다. 한 젊은 여자가 있고, 그녀를 지켜보는
중년 남자들이 있습니다. 아마 경찰인것 같지요. 그리고 중절모를 쓴 한 남자가
슬슬 다가옵니다. 다가온 남자는 여자 옆에 서서 신문을 펴더니 여자의 핸드백속에
손을 넣어서 지갑을 꺼냅니다. 그리고 유유히 사라집니다. 소매치기를 한 것이죠.
제목에서 보면 소매치기 범죄자의 이야기 같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그게 아니지요.
공산주의자들을 소탕하려는 경찰들의 이야기인데 그 이야기의 중심에 소매치기
주인공과 얼떨결에 전달책이 된 여자가 있습니다.
스킵 맥코이(리처드 위드마크)는 소매치기를 하다 붙잡혀 3번이나 유치장 신세를 진
전과 3범입니다. 출소 후 다시 뉴욕 지하철에서 어느 여자의 핸드백속 지갑을 훔치는데
그 안에는 중요한 필름이 들어 있었습니다. 맥코이에게 소매치기를 당한 여자는
캔디(진 피터스)라는 여인, 헤어진 남자친구 조이의 부탁으로 필름을 연락책에게 전달해
주기 위해서 지하철로 이동하다가 소매치기를 당한 것입니다 이미 경찰들은 캔디가
공산주의자들의 필름을 운반할거라는 첩보를 입수하고 미행을 하고 있던 상황에서
예기치 못하게 나타난 맥코이에 의해서 계획이 틀어진 것입니다. 경찰들은 맥코이를
잡기 위해서 소매치기들의 정보에 밝은 모(델마 리터)라는 중년여인을 불러 지하철
소매치기 전문가들의 정보를 받고 맥코이를 찾아갑니다. 경찰은 맥코이에게 필름만
돌려주면 전과사실을 없애주겠다는 제안까지 하지만 맥코이는 거절합니다. 한 편
캔디는 조이의 부탁으로 역시 맥코이를 찾아 나서고 모에게 정보를 얻어서 맥코이를
찾아 가서 필름을 돌려달라고 하지만 거절당합니다. 오히려 맥코이에 의해서
조이가 공산주의자 일당들과 내통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때부터 캔디는
오히려 맥코이가 공산주의자들에게 당할까봐 걱정합니다. 맥코이, 캔디, 조이,
그리고 경찰들이 필름의 행방을 놓고 벌이는 숨바꼭질 같은 전개가 흥미롭게
펼쳐집니다.
흥미로운 범죄물이이고 꽤 극찬을 받은 영화인데 냉정히 보면 군데군데 헛점도
있습니다. 캔디가 자기 물건을 소매치기한 맥코이에게 찾아갔다가 너무 쉽게
사랑에 빠지는 설정도 설득력이 약하고(특히 맥코이는 캔디에게 꽤 쌀쌀맞게
대하는데), 공산주의자 필름 운반이라는 설정 자체도 좀 만화 같습니다. 불과
4-5장에 불과한 그깟 필름에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정보가 있길래 그 여러
사람들이 생사를 걸고 움직이는지. 그리고 맥코이가 필름을 숨겨놓은 곳도
너무 허술하고, 필름 때문에 여러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맥코이가 너무
느긋하게 '와서 나를 괴롭혀라'라는 식으로 자기의 알려진 거처에 느긋하게
눌러앉아있는 것도 그렇고.....
이런식으로 극찬받은 고전이지만 냉정히 분석해보면 허점이 많은 영화들은 제법
있습니다. '카사블랑카' '황야의 결투' '007 위기일발' 같은 영화들이 그런 식으로
과대평가 받은 영화인데, 누구나 온갖 영화를 쉽게 구해서 볼 수 있는 시대가 된
지금 그렇게 과거 영화를 많이 보기 어렵던 시대에 소수의 유명한 평론가나
인물들의 교과서처럼 정한 '설득력 없는 리스트'는 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무엘 풀러는 독립영화의 아버지로 '존 포드' '윌리암 와일러' '알프레드 히치콕'
처럼 메이저의 위치에서 추앙받아온 영어권 대표 감독과는 다르게, 작은 영화를
만드는 저예산영화 감독이었지만 은근 많은 영화인들이 존경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픽 포켓'도 그의 초기작품인데, 제법 호평받고 흥미로운 필름 느와르로
리처드 위드마크나 진 피터스 같은 유명한 배우들이 등장하는 것도 특징입니다.
훗날 '충격의 복도' 같은 걸작을 만들기도 했던 사무엘 풀러의 초기 작품이면서
이 당시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저예산 작가 감독의 영화 '픽 포켓'은 우리나라
극장에서 개봉된 영화인데, 사무엘 풀러 초기작들 중 '한국 동란의 고아'
'지옥과 노도' '차이나 게이트' 같은 작품들도 국내에 개봉되었습니다. 50년대에
워낙 많은 미국영화들이 개봉되면서 그런 저예산 영화 감독의 작품들도 개봉
목록에 포함된 것입니다.
허점이 좀 있지만 '픽 포켓'은 흥미로운 영화입니다. 특히 캔디가 조이로부터
마음이 돌아서면서 그에게 거짓 정보를 흘리고, 모, 맥코이, 경찰 등에 편에 서는
중후반부 부터 이야기의 재미가 꽤 높아집니다. 그래서 끝날때 너무 빨리
끝나는 느낌이 아쉽기도 합니다. 후반부에 맥코이와 조이가 격투를 벌이는
장면은 50년대 초반 영화치고는 꽤 격렬한 액션입니다.
소매치기가 범죄자이지만 그런 좀도둑 범죄와 공산주의자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는 영화입니다. 뒷골목 좀도둑들도 공산주의자와는 거래하지
않는다는 일종의 애국심. 이해할만 합니다. 이 영화가 등장한 시점이 미국에서
매카시즘이 한창이던 1953년이었으니까요. 서로 원수같이 으르렁대는 전과
3범 범죄자와 경찰이 공산주의자 소탕을 위해서 협력관계가 되기도 하니.
하물며 경찰이든 범죄자든 기생하면서 살아가던 산전수전 다 겪은 뒷골목
대모같은 존재인 모 조차도 공산주의자와는 목숨까지 걸고 협조하지 않고,
공산주의자 소탕을 위해서 전과 3범 소매치기의 기록도 삭제해주고.
대부분의 필름 느와르 영화가 비극이지만 이 영화는 그래도 해피엔딩같은
결말을 내는 것이 특징입니다. 필름 느와르 영화에 매카시즘을 소재로 붙인
독특한 작품입니다. 당시 뉴욕 지하철의 모습을 구경할 수 있는 영화이며,
리처드 위드마크의 비교적 젊은 모습도 볼 수 있고, '아피치'에서 버트 랭커스터의
아내인 인디언 여인으로 우리나라 고전영화팬들에게 낯익은 진 피터스가 필름
운반책을 하다가 사건에 휘말리는 캔디를 연기합니다. 진 피터스는 '여해적 앤'
'애천' 등의 대표작을 가진 여배우인데 무슨 이유인지 1955년까지만 활동하고
중단한 경력을 갖고 있습니다.
간첩 조직을 쫓는 반공영화들은 우리나라 영화에서는 꽤 많았지만 이렇게 50년대
헐리웃 필름 느와르 영화에서도 이런 소재가 있었다는 자체가 독특합니다.
우리나라에는 6.25 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5년 1월에 개봉되었으니 공산당
조직을 소탕하는 영화로 꽤 공감을 받았을 것 같습니다.(흥행은 크게 잘 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평점 : ★★★ (4개 만점)
ps1 : 리처드 위드마크는 사실상 악역입니다. 여자에게도 너무 거칠고, 반공사상
때문에 필름을 감춘게 아니라 얼떨결에 소매치기 한 것이 그 필름이었고,
그게 공산주의자들과 관련되었다는 것을 알자 애국심이 아닌 크 돈을
만질 수 있는 기회라고 여긴 것이지요. 이런 야비한 인물이 해피엔딩을
차지하며 예쁜 여자까지 얻는 것은 좀 개운치 않은 결말 같습니다.
ps2 : 공산주의자 애인 대신 소매치기 연인이라.......멀쩡한 여인 캔디는 너무
나쁜 남자들에게 관대한 듯 합니다.
ps3 : 이 영화에 나오는 경찰들은 한국 영화속 경찰들 묘사처럼 참 무능합니다.
뭐 하나 제대로 하는게 없고, 오히려 공산주의자들을 때려잡아 주는 것은
맥코이의 역할이었지요.
ps4 : 늘 우리나라 법이 범죄자에게 너무 관대하다고 느껴지는데, 미국에서는
전과 4범째면 중벌이 처해지나 봅니다. 극중에서 '이번에 잡히면 종신형이야'
라는 대사가 있는 것을 보니.
ps5 : 우리나라에서 출시된 DVD, 아무리 비 라이센스 저가 DVD지만 뒷면의 영화설명에
생뚱맞게 존 포드 감독의 '밀고자'의 내용이 써 있습니다. 이건 좀 너무한듯.
ps6 : 진 피터스는 리처드 위드마크에게 얻어맞고, 남자 친구에게는 훨씬 심하게
폭행당하고..... 고생했겠습니다. 조이에게 맞는 장면은 한 테이크로 찍었던데
참 리얼합니다.
ps7 : 소매치기 장면이 너무 엉성합니다. 백을 활짝 열어제치고 느릿느릿..... 이런
식으로 소매치기 하다간 백번 잡히겠네요.
ps8 : "나는 공산당의 싫어요" 라는 대사를 모 역의 델마 리터가 합니다. 거의
미국판 이승복.
[출처] 픽 포켓(Pickup on South Street 53년) 공산당 조직 잡기 |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