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니(Fanny)
1961년 미국영화
감독 : 조슈아 로건
촬영 : 잭 카디프
원작 : 마르셀 파뇰
출연: 레슬리 캐론, 홀스트 부크홀츠, 샤를르 보와이에
모리스 슈발리에, 조르지테 아니스, 살바토레 바칼로니
원래 '화니'는 1932년 마르셀 파뇰 원작 희곡을 영화화 한 프랑스 작품이었습니다.
볼 수 없는 희귀작이지만 1932년 '화니'는 꽤 호평을 받은 영화입니다. 그 작품을
거의 30여년만에 헐리웃에서 리메이크한 영화가 고전영화팬들이 익히 잘 알고
있는 홀스트 부크홀츠와 레슬리 캐론 주연의 '화니'입니다.
1963년 국내 개봉, 1981년 TV 방영후 '화니'는 완전히 실종되었습니다. 많은
사랑을 받은 고전영화이지만 초희귀작이 된 영화 중 하나였지요. 그러다가
결국 미국에서 블루레이가 출시되었고, 그 덕분에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프랑스의 유명한 항구도시 '마르세이유'가 배경입니다. 프랑스 해안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헐리웃에서 과감히 리메이크하면서 실감을 내기 위해서
현지로케를 감행한 영화입니다. '남태평양' '피크닉' '사요나라' 등 수작들을
50년대에 많이 발표한 조슈아 로건이 감독했고, 배우들은 미국 태생이 아닌
인물들로 채워졌습니다. '파리의 아메리카인'으로 헐리웃에서 데뷔했지만
태생은 프랑스 볼로뉴 출신인 레슬리 캐론, 그리고 독일의 젊은 인기배우
홀스트 부크홀츠, 30-40년대 프랑스의 전설급 배우인 샤를르 보와이에,
그리고 '지지'에서도 레슬리 캐론과 공연했던 넉살좋은 노인연기의 달인
'모리스 슈발리에' 등 유럽권 출신 배우들이 주연급 배역을 연기하고 있습니다.
마르세이유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세자르(샤를르 보와이에), 그에게는 20살난
아들 마리우스(홀스트 부크홀츠)가 있는데 이곳의 삶에 머무르고 있는 아버지
세자르와는 달리 마리우스는 답답한 카페를 떠나 바다로 나가고 싶어합니다.
다만 어릴때부터 친했던 이웃 생선가게 과부의 딸 화니(레슬리 캐론)을 사랑하기
때문에 선뜻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자르의 친구인 돈 많은 노인 파니스
(모리스 슈발리에)는 얼마전 상처를 하였고, 그 후 화니에게 은근 눈독을 들이고
있는 밝히는 노인이고 마리우스는 그런 상황을 질투합니다. 그런 삶을 이어가던
마리우스는 결국 떠나기고 결심했고, 떠나기 전 화니와 하룻밤을 보냅니다.
화니와의 사랑과 바다에 대한 동경으로 떠나기 직전까지 갈등하던 마리우스,
화니는 그런 마리우스의 야망을 알고 일부러 파니스와 결혼하겠다고 하고
마리우스를 떠나 보냅니다.
마리우스가 떠나기 전까지 벌어지는 이야기가 절반, 그리고 떠난 후에 벌어지는
여러가지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절반입니다. 원래 마리우스가 떠나기까지의
과정을 짧게 처리하고 그 후의 여러가지 이야기가 집중되어야 영화의 묘미가
더 살아날 수 있는데 홀스트 부크홀츠라는 주연급 젊은 배우를 캐스팅해서인지
전반부의 이야기기 지나치게 길고 크게 의미없는 장면들을 많이 활용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본격적인 풍파는 마리우스가 떠난 이후에 벌어지고 그 후의
약 10여년간의 이야기가 나머지 절반입니다.
이야기가 급격히 가파르게 흘러가는 것은 마리우스가 떠난 후 화니가 임신한
사실을 알고 부터입니다. 우리나라보다 서구가 성에 대해서 좀 더 자유분방한
것 같지만, 뻔히 서로 알고 지내는 동네에서 미혼모가 임신했다는 것은 결국
이사를 가야 하는 상황,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마리우스 때문에 사실상 사생아를
낳아야 하는 화니는 결국 40여살이나 차이가 나는 파니스와 결혼하기로 하고
파니스는 모든 사실을 알고도 늦은 나이에 아들을 얻을 수 있다는 기쁨에 기꺼이
화니를 받아들입니다. (호색남 노인인줄 알았더니 쿨하고 너그러운 부자더군요)
이후 벌어지는 상황이나 이야기는 일반적인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전개되는
것과는 꽤 다릅니다. 사랑하는 남자를 떠나 보내고 그 아이를 임신했지만 나이든
부자 노인과 결혼하는 여주인공의 이야기라면 우리나라에서는 지독스런 신파나
비극적인 전개로 흘렀을테고, 대체로 누구의 아이인지를 숨긴채 출생의 비밀이
전개될테지만 화니는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도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코믹한
내용이 수시로 등장하고 무엇보다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를 이해하고 감싸주는
두 노인 세자르와 파니스의 관계가 참 재미있습니다. 모리스 슈발리에의 능청스런
연기는 1년전 출연한 '캉캉'에 이어서 여전히 한량 같은 노인역으로 재미난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있고, 주로 멜러물에서 시니컬한 역할을 많이 했던 샤를르 보와이에도
모리스 슈발리에에 뒤지지 않은 수다스럽고 코믹한 노인역할을 잘 해내고 있습니다.
만약 이 두 원로 배우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화니'는 굉장히 맥빠진 영화가 되었을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남녀, 임신, 그렇지만 떠난 남자, 남의 아이를 임신한 40세 연하의 처녀와
결혼한 노인, 떠난 아들을 그리워하지만 며느리가 될 뻔한 여자를 그 노인에게
시집보낸것을 오히려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지지하는 쿨한 노인, 자기를 좋아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딸에게 눈독을 들이는 노인을 쿨하게 사위로 받아
들이며 그 덕분에 많은 돈을 얻을 수 있는 것에 만족하는 생선장수 과부.....
아버지인지 할아버지 인지 구분이 안갈 정도로 연로한 양아버지 밑에서 쑥쑥
자라는 소년....바다로 나가는 꿈은 이루었지만 사랑하는 여자와 어린 아들 모두를
만나지 못하며 외로운 객지생활을 전전해야 하는 남자.....
자, 도대체 이런 이야기가 어떻게 정리가 되고 결말이 날까 끝까지 궁금한 것이
이 영화의 묘미입니다. 결론적으로는 그래도 가장 합리적인, 즉 '아무도 큰 손해'를
입지 않는 것으로 마무리된 것으로 평가하고 싶습니다. 물론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서로 조금씩의 손해를 감수하며 약간의 희생을 해주었기 때문인데,
우리나라의 막장이라면 서로간의 원수가 되어 내가 잘했니 네가 잘못했니 하다가
다 망할 전개로 흘러갔겠지만 '화니'는 그래도 나름 최선의 합리적인 결말로
귀결된 영화로 생각됩니다.
화니는 사랑하는 남자대신 마음에 없는 40살이나 많은 노인과 살았고,
세자르는 아들이 사랑하는 여자를 대신 친구인 노인에게 시집보내면서
사실상 자기 손자의 부유한 미래를 얻는 것으로 타협을 보았고, 파니스는
남의 아이를 임신한 여자를 받아들였지만 평생 처음으로 아들을 얻었고,
40살이나 젊은 여자와 말년의 행복한 삶을 보냈고, 화니의 어머니는
딸을 노인에게 시집보냈지만 대신 하루아침에 힘겨운 생선장수에서 부유한
마나님이 되었고......그래도 가장 큰 희생을 한 것은 사랑하는 여자와 아들을
10여년동안이나 만나지 못하고 객지생활을 하며 고생한 마리우스라고 할 수
있는데, 대신 마리우스는 자기 아들을 큰 부자의 상속자로 만들었고, 결국
파니스가 죽으면 화니와 재결합할 수 있으니 오랜 고통만큼 상응하는 보상을
받을 수 있고......
이런 화니의 전개를 보면서 사람은 길게 보고 살아야 하고, 양보를 하면서
얻어낼 것을 얻어내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어떻게든 서로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하는 우리나라의 막장드라마와
너무 비교된다는 생각입니다.
홀스트 부크홀츠는 당시 28세였는데 가장 빛나던 시절이었습니다. '황야의 7인
에서 농부가 싫어서 총잡이가 되려고 한 청년 역으로 출연한 뒤, 다시 헐리웃
제작 영화에 주연으로 발탁되어 화니를 사랑하지만 떠날 수 밖에 없었던
마리우스를 연기했습니다. 레슬리 캐론은 데뷔 10년차의 30세에 접어든 나이
였지만, 초반부 18세 연기가 어울릴 정도로 꽤 앳된 외모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뮤지컬에서 안무의 재능을 많이 보였지만 썩 미인배우로 인식되지는 않았던
레슬리 캐론이지만 '화니'에서는 참 앳되고 예쁘게 나왔습니다. 10대 후반에서
20대 후반까지의 역할을 무난하게 해내며 '뮤지컬 배우'에서 탈피하는 성공적
연기를 했고, 골든글러브 주연상까지 노미네이트되었습니다.
베테랑 샤를르 보와이에와 모리스 슈발리에는 영화를 살린 핵심 주역인데
헐리웃 영화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인 두 사람이 실제 태생인 프랑스 사람을
연기했는데 헐리웃에서 만든 영화라서 영어대사 출연이었습니다.
희곡을 영화화 한 것이라서 대사가 꽤 많고 연기도 많이 튑니다. 막장스럽게
흘러갈 수도 있는 이야기를 다채로운 유머와 코믹한 설정으로 부드럽게
만들었고, 무엇보다 마르세이유 현지 로케촬영을 아름답게 표현한 영상이
뛰어납니다. 감독으로도 활약을 했지만 당시 명 촬영기사였던 잭 카디프의
솜씨이며 아카데미 촬영상 후보에도 올랐습니다. '화니'는 총 5개 부문에서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지만 그 해 상을 휩쓸어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
밀려 수상을 못했습니다. 앞 부분만 조금 내용을 줄여서 1시간 50분 정도의
분량으로 만들었다면 더 좋았을 영화입니다.
평점 : ★★★ (4개 만점)
ps1 : 레슬리 캐론은 1년 후 "L자 모양의 방" 이라는 영화에 출연하여 열연을
펼치며 아카데미 주연상 후보에도 올랐고,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에서도
레지스탕스 여인으로 등장해 좋은 연기를 보입니다. 60년대에 완전히
뮤지컬 스타에서 탈피하여 일반 연기자로 확고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데 아쉽게도 우리나라에는 거의 50년대 영화들만 알려졌습니다.
ps2 : 영화속에 등장하는 모자로 속이는 장난, 이거 개봉당시에 좀 따라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ps3 : 영화속에서 두 노인역을 연기한 모리스 슈발리에와 샤를르 보와이에는
영화속 나이가 50대 후반이었는데, 지금 기준이라면 톰 크루즈나
브래드 피트의 나이보다 약간 더 많은 것입니다. 지금은 그 정도 나이면
절대 노인이 아니지요.
[출처] 화니(Fanny 61년) 레슬리 캐론 주연의 추억의 희귀 고전|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