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자연적인 옛 농기구 쟁기에 서린 삶의 흔적
-폐농기구, 어구수집 자연사박물관조성에 도움을-
훌칭이라는 연장을 아실 것이다. 요즘은 과학영농이라고 해서 트랙터, 경운기 등 기계영농을 하지만 필자 때만해도 농사는 농우소와 훌칭이 아니면 불가능했던 때가 있었다. 당시에는 집집마다 농우 소 한 마리 정도는 소유할 정도로 재산 목록 1호가 되었다. 농사를 위해 웬만큼 사는 집은 암소 한 마리를 기를 줄 알고 있었다. 쟁기질 잘하는 소로 마을 사람들이 우리 집 소를 이용하려고 예약을 하곤 했다. 아버지가 직장 따라 출타하고 안 계실 때 마을 분에게 부탁해 밭갈이를 해주었던 기억이 있다.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직접 소로 논밭을 가는 일을 해본 추억이 있다.
정겨운 고향의 모습이 떠오른다. 옛날 속으로 사라진 고향의 풍경이지만 추억 속 풍경 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어질 때가 있다. 친자연적인 농기구 첫째를 꼽으라면 쟁기를 칠 수 있을 것이다. 쟁기는 약 8000년 전부터 사용해온 농사도구로 소 한 마리를 이용해 땅을 가는데 사용하는 연장으로 작물을 재배할 땅을 갈아엎어 흙을 잘게 부수는 데 사용해온 농기구로 친근감을 느끼게 해 준다는 것이다. 보습과 소에게 씌우는 멍에 정도로 기억한다. 토양에 돌이나 바위가 섞여 있는 비탈 밭을 가는 쟁기로 구조가 간단하고 가볍다는 점이 특징이었다. 나중에 경기도 안성 공도읍에서 본 것은 논만 아닌 밭을 갈 때도 쟁기를 사용하는 걸 보았다.
쟁기라는 말은 쇠로 만든 연장이나 무기를 뜻하는 잠개에서 비롯되었을 것으로 보며 16세기 이후 잠개는 점차 잠기로 변화되었고 18세기에 이르러서는 장기로 바뀌며 20세기에 들어서 장기가 쟁기로 부르게 되었다고 보고 있다. 쟁기질 잘해주고 새끼를 낳아 살림에 보탬을 주었던 농우 소는 가족이나 마찬가지였다. 나중에 소장수에게 팔려갈 때는 가족들의 눈가에 눈물이 맺히는 걸 보았다. 쟁기질을 경험해보면서 느낀 것은 앞을 바라보고 나가야 골을 반듯하게 탈수 있다는 것이다. 앞을 바라보지 않고 뒤를 돌아다보면 골이 비뚤비뚤해진다는 것이다.
좌우로 왔다 갔다 우왕좌왕하면 밭갈이가 엉망이 된다. 손에 쟁기를 잡고 앞을 바라보며 앞으로 전진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쟁기는 뒤로 갈수가 없다.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말은 잘했느냐 못했느냐 평가하거나 비판하며 갈등하지 말라는 것이다. 도전하는 사람, 전진하는 사람에게만 성공과 승리가 주어진다. 후퇴가 없는 전진만 있을 뿐이다. “포기는 배추 셀 때만 쓰시오” 쟁기질을 할 때 힘의 균형을 맞추어 보습이 너무 깊지도 말고 너무 얕지도 않게 적당하게 잡아야 한다. 너무 힘을 주면 너무 깊게 들어가 일소가 죽을 고생을 한다.
또 대충 잡으면 보습이 깊게 들어가지 않음으로 새 흙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와 농부와 쟁기가 일사분란하게 삼위일체를 이뤄 움직일 때 밭갈이는 성공한다. 사진은 최근 수집한 폐 농기구인 쟁기, 써레 모습으로 전시할 수 있는 수양관 내에 자연사박물관조성을 꿈꾼다. 바라기는 다양한 폐농기구, 농기계, 폐 어구 수집에 도움을 주시기 바란다. 쟁기 속담 중에 “일 못하는 자가 쟁기를 나무란다.”는 말이 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눅 9:62)”
/여수=정우평 목사, 010-2279-8728【교계소식】문서선교후원계좌 우체국 500314-02-264196 정우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