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서글프고 애절한 계절’에 부쳐
강 학 순
가지산 온천물의 기분 좋은 뜨거움이 내 몸의 피로와 마음의 긴장을 화아-악 풀어주고 있다. 거의 3층 높이 정도의 2층에 있는 큰 대중탕이다. 주중이라 그런지 넓은 탕에 따로 따로 서너명이 조용조용하다. 목을 조금 젖혀 욕조 둘레에 머리를 편안하게 뉘고 남쪽 벽을 대신한 커다란 유리창을 통해 밖을 보니, 저 멀리 이번에 내가 올랐던 영남알프스의 고봉들이 주우-욱 눈에 들어온다. 올 늦가을에 20 여 년 만에 영남알프스 등산을 처음 해 본 것이다.
그간 3년에 걸친 노가다 일을 하면서 ‘이 일만 마치면…’ 하고 벼르고 별러 왔었던 산행을 오늘 끝내고 나니, 자랑하고 싶은 것이 한 가지 생겼다. 48년생 할머니인 집사람이 이번 모든 산행을 나와 함께 했다는 것이다.
집사람은 인생 끝났다 싶을 정도로 심한 고통의 척추협착증을 겪었다. 끝내 내가 결심한 방법은 산행이었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 멀지 않게 올려다 보이는 동아대 뒤의 승학산을 집사람과 함께, 때로는 집사람에게 강제를 해서라도, 자주 오르는 편이다. 하지만 1000m 넘는 고봉들을 넘으면서 하루에 6-7시간씩 산행한다는 것은 상상을 못했었다.
그런데, 10월 말경 우리는 느닷없이 한 친구 부부에게 호출당해 남해 금산 자락의 국립자연휴양림 펜션에서 2박하게 되었다. 집사람은 당시 정황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거의 700m나 되는 금산 재를 오르게 된다. 하산해서 집사람 하는 말이 아름다운 계곡과 단풍, 맑은 공기 덕분인지 크게 힘든 줄 몰랐고 걱정했던 허리 다리 이상증세도 별로 못 느꼈다는 것이다. 나는 저으기 놀라면서 한편으로 내심 아하- 되겠구나 싶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몇 일 후 동네 아는 사람과 함께 어느 산악회를 따라 창녕 영취산(782m)을 등정하게 되었다. 집사람은 자신 없어 하면서도 따라 나선다. 과연 ‘시작이 반’, 지난 번 금산 산행에서 자신감이 좀 생겼음이 틀림없다. 산악회버스를 타고 보니, 주중임에도 대부분 젊은 사오십 대이다. 순간 이들과의 속도보조가 크게 걱정스러웠다.
역시 걱정대로였다. 등정 시작부터 평균 45도 정도의 가파른, 군대군대 험한 길이 약 600m나 계속 되는데 뒤쳐지더라도, 전체에게 지장 줄 정도로, 너무 뒤쳐지지 않으려고 무지하게 힘들었다. 막상 정상에 올라보니, 무전기를 손에 든 인솔자가 3분의 1 정도는 아직 우리 뒤에 쳐져 있다는 것이다. 이 말에 집사람은 땀을 닦으면서 화아-안하게 웃었다. 심리적으로 자신이 붙었다는 것이다. 집에 와서도, 피곤해하기는 했지만, 젊은 사람들과 거의 대등하게 산행한 것에 대해 스스로 대견해 하는 마음을 읽었다.
나는 이제 됐다 싶었다. 집사람 자신감이 붙었을 때, 내쳐 벼르던 영남알프스 등정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바로 계획을 세웠다. 승용차가 없는지라 전적으로 전철/기차/시외버스/마을버스에 의존해야 한다. 해가 짧아 이것들 간의 시간연결을 잘 맞추어야 하고, 특히 깊은 산중의 일몰시간과 막차시간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아주 세심하게 계획했다.
11월 6일, 드디어 벼르고 벼르던 영남알프스산행을 집사람과 함께 시작했다. 집사람은 “도저히 자신 없어요. 만약 내 다치거나 탈이라도 생기면 당신 그 불편 어떡할라 그래요”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며 어림도 없어 했다. 하지만 나는 있는 것, 없는 것 다 끌어다 붙여 ‘소쿠리비행기’를 태워 자신감을 고취시켜 집사람과 함께 새벽 전철 역으로 향했다.
누구보다도, 한솥밥을 먹는 내가 놀랐다. 집사람은 이삼일 간격으로 3번에 걸쳐 영남알프스 대표 고봉들을 거뜬히 다 등정해 낸 것이다!
첫 번에는 기차를 타고 원동 역에 내려 마을버스로 갈아탔다. 배내골에 내려 이곳 저곳에 담긴 옛 추억들을 회상하며 파래소 폭포를 지나고 긴 간월 재를 굽이굽이 올라 간월산(1083m), 신불산(1209m)을 등정했다.
이틀 후 등정 역시 배내골에 내려 죽전까지 걸어가서 사자평, 재약산(1108m), 천황산(1189m)을 등정하고 밀양 표충사로 하산했다.
사흘 후 등정 때는, 언양의 석남사 주차장에서 버스를 내려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가파른 코스를 냅다 쳐올라 영남알프스 최고봉 가지산(1240m)을 등정하고 쌀바위 귀바위를 지나 하산했다. 가파르게 내려오는데 쌓인 낙엽이 깊고 미끄러워 조심조심 긴장의 연속이었다. 집에서 교통이 가장 멀고 불편한 가지산을 12일 오늘 마지막으로 등정한 것이다.
피부에 와 닿는 감이야 일반물 온천물 뭐가 그리 다를까마는, 20 여 년 만에 우리땅 온천물이라서 그런지 뜨끈함의 느낌이랄까 기분이랄까 아아-주 좋다. 몸의 피곤과 마음의 긴장이 화아-악 풀린다. 몸과 마음은 하나라고 했던가, 쫄때기 같은 내 마음도 푸근하게 너그러워지는 기분이다. 내 툭하면 이것 저것 못마땅해서 집사람에게 꾁꾁 성질 내는데 오늘따라 집사람이 아주 대견스럽고 여러모로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 허허허…
목욕탕 창 밖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고 저 멀리 고봉들의 자태가 사라져간다.
고개를 돌려 내려다 보니, 갈아엎은 듯한 밭에 지펴진 작은 불길에서 연기가 피어 오르고 있다.
누르-거무스름한 톤의 주변 경치가 이내 어두움으로 덮인다.
아차 싶어 욕탕 시계를 보니, 버스시간은 아직 넉넉하다.
먹다 남은 김밥과 고구마로 저녁은 된다.
다시 욕조둘레에 목을 뉘었다.
창 밖은 이제 어둡고 밭에 작은 불길만 가물가물 눈에 들어온다.
보고 있노라니, 추억 같은 어떤 멜랑콜리가 애틋한 아름다움으로 마음 속에 피어 오른다.
젊은 시절 친구들과 이름난 산들을 골라 오르면서 오망때망소리 다 재밌어서 희희닥 낄낄대며 마냥 행복했던 우정 어린 추억들, 그 물 맑고 호젓했던 배내골에서 몇 일씩 텐트를 치고 꼬맹이들과 재미있게 놀던 일 등등 아- 옛날은 가고 없어도 마음 더욱 설레라!
오랫동안 불러본 적 없는 노래가 나도 몰래 흠잉으로 나온다.
수많은 날은 떠나 갔어도
내 맘의 강물 끝없이 흐르네
그날 그땐 다시 없어도
내 맘의 강물 끝없이 흐르네
이수인 ‘내 마음의 강물’, 이렇게 마음에 사무칠 줄이야…
내 흠잉소리에 내 정서가 더욱 일어 나도 몰래 가사가 나지막이 섞여 나온다.
새파란 하늘 저 멀리
구름은 두둥실 떠나고
비바람 모진 된서리
지나간 자국마다 맘 아파도
알알이 맺힌 고운 진주알
아롱아롱 더욱 빛나네
그날 그땐 지금은 없어도
내 맘의 강물 끝없이 흐르네
끝없이 흐르네…
문득 내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내 정서가 왜 이런가?
벼르고 벼르던 추억의 산행을 모두 잘 마쳤다. 더욱이 집사람은 이번 산행으로 그 무지무지했던 척추협착고통의 잠재적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참으로 오랜만에 고국 온천에서 푸근하게 몸과 마음의 릴렉스를 즐기고 있다.
그런데 왜 지금 이 순간 이렇게 센티한 멜랑콜리인지…
나이 때문인가?
사무엘 울만은 ‘나이를 더해가는 것만으로 사람은 늙지 않는다. 이상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늙는다’고 했다.
누구는 이것을 의역해서 과감하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했다.
나 역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상과 정열로 나이를 이긴다고 믿었다.
하지만 아니다, 이제 나는 아니다. 내 마음 깊은 곳 의식의 흐름을 짚어볼 때 오호라- 이제 나에게 숫자는 숫자이고, 나이는 엄연히 나이이다.
게다가 가을은 정비석이 <들국화>에서 말했듯이 ‘서글프고 애절한 계절’이 아닌가.
지금 이 애절한 늦가을 정취에서, 내 나이 역시 어느덧 가을이니…
아- 옛날은 가고 없어도 마음 더욱 설레라!
아- 옛날은 가고 없어도 그때 어른거려라…
2014년 늦가을
영남알프스 산행을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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