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와 이야기
최두석
노래는 심장에, 이야기는 뇌수에 박힌다.
처용이 밤늦게 돌아와, 노래로써
아내를 범한 귀신을 꿇어 엎드리게 했다지만
막상 목청을 떼어 내고 남은 가사는
베개에 떨어뜨린 머리카락 하나 건드리지 못한다
하지만 처용의 이야기는 살아남아
새로운 노래와 풍속을 짓고 유전해 가리라.
정간보가 오선지로 바뀌고
이제 아무도 시집에 악보를 그리지 않는다
노래하고 싶은 시인은 말 속에
은밀히 심장의 박동을 골라 넣는다.
그러나 내 격정의 상처는 노래에 쉬이 덧나
다스리는 처방은 이야기일 뿐
이야기로 하필 시를 쓰며
뇌수와 심장이 가장 긴밀히 결합되길 바란다.
-<성에꽃>(1990)-
해 설
[개관 정리]
◆ 성격 : 서정적
◆ 특성
① 시인의 시론을 제재로 시의 본질을 이야기함.
② 시어의 대립적 구조를 보여줌.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심장 → 감성
* 뇌수 → 이성
* 처용이 밤 늦게 ~ 건드리지 못한다. → 노래는 독자를 감동시키는 감화력을 갖지만,
이야기만으로는 독자를 감동시킬 감화력을 갖지 못함.
* 목청을 떼어 내고 남은 가사 → 이야기
* 유전 → 세상에 널리 퍼짐 또는 세상에 널리 퍼뜨림.
* 정간보 → 조선 세종 때에, 소리의 길이와 높이를 정확히 표시하기 위하여 만든 악보.
井자 모양으로 칸을 질러 놓고 율명(율명)을 기입함.
* 정간보가 오선지로 바뀌고 → 시간이 흘러 현대로 넘어옴.
* 이제 아무도 시집에 악보를 그리지 않는다 → 오늘날 시가 노래와 멀어진 현실을 개탄함.
* 노래하고 싶은 ~ 골라 넣는다. → 말에 생명을 불어넣어 감동을 주는 시를 쓰고자 하는
바람을 표현함.
* 심장의 박동 → 리듬, 운율
* 뇌수와 심장이 가장 긴밀히 결합되길 바란다 → 이 둘이 긴밀히 연합될 때 좋은 시가
된다는 뜻임.
◆ 주제 : 노래와 이야기가 결합된 시를 쓰고 싶은 마음
[시상의 흐름(짜임)]
◆ 1행 : 노래와 이야기가 결합된 시
◆ 2~7행 : 처용 설화를 통해 본 노래와 이야기
◆ 8~11행 : 노래가 사라진 현실
◆ 12~15행 : 뇌수와 심장이 결합된 시를 쓰고 싶은 소망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작품은 시가 '노래(운율)'와 '이야기(가사)'가 결합된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성과 감성이 결합된 시를 쓰고 싶어하는 시인의 소망을 노래하고 있다. 화자는 처용 설화를 통해 노래와 이야기의 성격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현실을 '악보(노래)'가 사라진 것으로 규정하고, '노래'를 '은밀히' 말 속에 골라 넣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뇌수(이성)'와 '심장(감성)'이 조화된 시를 쓰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내고 있다.
이 시는 시의 본질을 시로 표현한 작품이다. '심장'은 감성과 '뇌수'는 이성과 연관되는데, 이 둘이 긴밀히 결합될 때 좋은 시가 된다는 것이다. 1~5행에서 노랫말은 사람을 감동시키는 힘이 없다고 한다. 시인은 시에 자신의 노래(감성)를 담으려 하지만 담아지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한다. 그리고 6~9행에서는 시간이 흐르면 노래(감성)는 잊혀지고 이야기(이성)만 남는다고 한다. 그래서 시가 노래와 떨어진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10~15행에서는 시어가 은밀한 리듬과 노래(감성)를 갖고 있으며 그것을 정제된 형식으로 표현한 것이 시라는 것이다. 이렇게 '뇌수(이성)'와 '심장(감성)'이 긴밀히 결합될 때 좋은 시가 되므로 이 둘이 긴밀히 결합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작가소개]
최두석(1956년 ~ )은 대한민국의 시인이자 대학 교수이다.
1956년 전라남도 담양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국어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의 국어국문학과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강릉대학교(현 강릉원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1991~1997)를 거쳐 현재 한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1997~)로 재직하면서, 계간 《실천문학》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2007년 제2회 「불교문예작품상」, 2010년 제3회 「오장환문학상」을 수상했다.
<약력>
1980년 《심상》에 〈김통정〉 등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2007년 제2회 「불교문예작품상」, 2010년 제3회 「오장환문학상」을 수상했다.
<수상>
2007년 제2회 「불교문예작품상」
2010년 제3회 「오장환문학상」
<저서 시집>
《대꽃》(문학과지성사, 1984)
《임진강》(청사, 1986; 개정판: b, 2010)
《성에꽃》(문학과지성사, 1990)
《사람들 사이에 꽃이 필 때》(문학과지성사, 1997)
《꽃에게 길을 묻는다》(문학과지성사, 2003)
《투구꽃》(창비, 2009)
<평론집>
《리얼리즘의 시정신》(실천문학사, 1992; 재판: 1998, 2010)
《시와 리얼리즘》(창비,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