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터 한구석에 버려진 의자가 있다. 너도 한때는 고급스러워 보란 듯 온갖 교태를 부리고 싶었을 것이다. 주인은 새 의자라고 자랑하며 거드름을 피우며 뽐내고 앉아 주절주절 으스댔을 것이다. 그러나 정신없이 세월이 가면서 서서히 해어지고 볼품 사나운 고물로 이지러져 눈 밖에 나고 어느 날 미련 없이 내몰리면서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다. 하루아침에 노숙자가 되었다. 너나 나나 무상하기는 마찬가지다. 고요 속에 침묵하는 한밤이면 애써 별빛을 끌어안고 있으려니 심술궂은 바람은 추억마저 허물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빈 의자는 속수무책이다. 자신을 지킬 어떠한 힘도 도와줄 사람도 없다. 가을은 푸짐한 결실의 계절이고 거둠의 계절이라고 하면서. 국화의 계절이고 단풍의 계절이며 축제의 계절이다. 독서의 계절이며 한발 성큼 내디디며 여행을 떠나기 좋은 계절이다. 국외든 국내든 멀고 가까운 것을 가리기보다는 어디든 나서면 뭉클할 만큼 좋은 계절이다. 가을바람 안고 어디든지 훌쩍 떠나보고 싶은 계절로 혼자라도 좋다. 가로수도 더는 못 참고 단풍 물이 들어간다. 여문 열매가 서서히 익어가다 수확을 재촉한다. 무더위에도 빈틈없이 시간은 가고 새로운 계절을 꾸준하게 준비를 한 것이다. 제가 할 일을 소홀히 하지 않은 것이다. 불평에 미룰 수 없다. 생존은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 살아 있다고 한없이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물건도 한없이 사용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 기회를 그 시기를 놓치면 그냥 허무하게 지나간다. 뒤늦게 이러쿵저러쿵 해보아야 되돌아오지 않으며 혼자 겪을 불평불만밖에 되지 않는다. 물건도 시간이 흐르면서 낡고 허물어져 눈 밖에 나게 된 것이다. 처음 애지중지한 마음은 오간 데 없고 슬그머니 내다 버린다. 아쉽지만 더는 필요치 않다. 마치 공터에 팽개친 빈 의자와 다를 것 없다. 그토록 틈만 나면 가까이서 사랑받았는데 언제부턴가 거들떠보지도 않더니 아무렇지 않게 버림당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흘러가는 시간은 너나 나나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