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국 정부 반도체 지원이 미일보다 적은 진짜 이유 / 7/8(월) / 조선일보 일본어판
한국정부는 1일부터 18조원(약 2조엔) 규모의 반도체 금융지원 정책을 도입했다. 국채 금리와 같은 수준으로 반도체 제조업체에 대출을 해 주는 내용이다. 이를 포함해 정부는 26조원 규모의 반도체 생태계 종합 지원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위기에 빠진 반도체 산업을 뒷받침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세계적 기업들의 반도체 패권전쟁 속에서 미국, 일본, 유럽 등 주요국 정부는 수백 십조원 규모의 보조금 지원책을 펴고 있다. 미국은 CHIPS법에 따라 현지에 공장을 짓는 기업에 총 390억 달러(약 6조 3000억엔)의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으며 인텔이 최대 85억 달러를 확보했다. 일본은 소니, 도요타 등 자국 기업이 출자해 만든 반도체 드림팀 라피다스에 누적 9200억엔의 보조금을 투입하기로 했다. 유럽연합(EU)도 430억유로의 보조금을 지급한다. 반면 반도체 산업이 주력인 한국의 지원책에는 보조금이 포함돼 있지 않다.
현재 한국 기업은 공장을 지을 때 필요한 전력 송전망 등 인프라 구축 비용까지 부담해야 한다. 미국 등 주요국은 인프라 구축 비용을 정부가 지원한다. 정부의 이번 정책에는 첨단산업특화단지의 용수, 전력, 도로 등 인프라 시설에 필요한 비용 중 15~30%를 국비로 지원하는 내용이 포함됐지만 인공지능(AI) 산업의 급성장에 따른 반도체 패권전쟁에 대응하는 정책으로는 미흡한 느낌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반기업 정서가 있다. 반도체를 언급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업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다. 두 회사는 모두 국내에서 가장 수익성이 높은 우량 기업이다. 반기업 정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두 회사가 멸망 직전의 연민의 대상으로 전락할 필요가 있는데, 이는 반도체 패권을 미국, 일본, 대만, 혹은 중국에 내준 뒤의 일일 것이다. 반기업 정서를 해소하려면 국민도 조금 양보해야 하고 삼성과 SK는 더 노력해야 한다.
다음은 나라의 주머니 사정이다. 세계적으로 국가재정은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로 평가한다. 그러나 한국만은 관리재정수지라는 지표를 고안해 별도로 발표하고 있다. 통합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등 사회보장성 기금의 수지를 뺀 수치다. 그만큼 한국에서는 사회보장성 기금이 재정 건전성을 좌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에서는 아직 국민연금기금이 흑자를 내고 있어 통합재정수지 적자폭이 관리재정수지보다 작아 보이지만 관리재정수지가 적자로 돌아서면 통합재정수지 적자폭이 급격히 늘어난다. 이미 국고보전이 이뤄지고 있는 공무원연금은 10조원에 육박하는 적자를 내고 있지만 20년 뒤 국민연금 등 4대 공적연금에서 발생하는 적자는 100조원을 넘어서게 된다. 통합재정수지 흑자 폭은 1970년 통계가 시작된 이래 가장 흑자였던 해만 해도 37조원(2007년)에 불과했다. 연금개혁 없이는 앞으로도 핵심산업을 부양하기 위해 국가가 내놓는 정책은 이번처럼 겉도는 게 불가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