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꽃 목욕탕 외 1편
유계자
꽃 뭉치가 샤워기 같다
일 년에 단 열흘만 개장한다는 등꽃 목욕탕
강변의 사각정에 올려놓은 등꽃, 사방에서 틀어놓은 샤워기처럼 보라색 물이 쏟아진다
등꽃 그 뜨신 향기에 먼저 민들레가 몸을 담그고 멧비둘기도 날개를 적시고 바람은 털썩 바닥에 앉아 신을 벗는다 막 들어온 햇살이 꽃 뭉치 샤워기를 끝까지 틀어놓는다
어질어질 물길은 깊어져 온통 보랏빛 향기 속으로
자주 응급실을 들락거리던 한 여자가 시든 몸을 담근다
부은 발을 주무르고 훈김 오르는 물방울이 안경 속으로 후드득 떨어진다
돌아앉은 그녀의 등을 멧비둘기가 꾸욱꾸욱 밀어준다
풀어진 여자가 탕 속에서 나오자 참새 몇 마리 슬픔의 각질들을 서둘러 치우고 등꽃 목욕탕은 노을을 받을 채비를 하고 있다
어머니를 대출합니다
겉표지가 낡아 덜렁거린다
풀로 붙이고 표지를 싸매고 첫 장을 열었다
훅 풍겨오는 곰팡내 책 비듬이 떨어진다
까실까실한 글자들로 들어차
손끝이 찔려 바로 돌려줄까 고민하다
이왕 빌렸으니 꼼꼼히 읽기로 했다
한쪽이 허물어져 침을 묻혀도 잘 넘어가지 않는다
이미 서슬 퍼런 문장들은 녹이 슬고
고단한 제목들도 코 고는 사족이다
빛나던 경칩의 장식은 떨어져 나가고
꼭지를 놓친 복숭아처럼 물러져 있다
침대맡에서 책을 읽다가
힘이 빠진 저녁을 떨어뜨리기도 했다
수십 년 버무려진 이야기를 한 달에 끝낼 수 없어
다시 제자리에 꽂아 놓았더니
도서 대출 칸에
둘째 동서가 기록되었다
약력: 2016년 《애지》 등단, 시집『 오래오래오래』 ,『목도리를 풀지 않아도 저무는 저녁 』 ,『물마중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22년 중소 출판사 출판콘텐츠 선정, 애지문학작품상, 웅진문학상 수상, poem-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