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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보이지 않는 손
임경부는 방안에 들어서자마자 뜻하지 않은 진객을 눈앞에 발견하고
『허허 유불란 씨가…… 이게 웬일입니까?』
하고 오상억과 주은몽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오래간만입니다 임경부 ──』
정중한 태도로 임경부에게 앉기를 권하는 유불란의 말에
『이거 참 뜻밖입니다…… 이처럼 훌륭하신 명탐정 두 분이 사이좋게 앉아있을 줄은 참.』
『명탐정 한 분은 또 빼놓으셨군요.』
『하하, 나야 어디……』
『임경부께서는 너무 겸손하셔서 ──』
임경부는 잠깐 말을 끊었다가
『그런데 유불란 씨는 이번 사건에 관해서 무슨 단서를 잡으셨습니까?』
『임경부께서 잡지 못한 단서를 제가 어떻게……』
입맛이 쓰다는 임경부의 얼굴이었다.
『그러면 △△일보에 게재된 오상억 씨의 글을 읽었습니까?』
긴장하는 일동 ── 더구나 은몽의 두 눈동자가 반짝하고 빛난다.
『읽었습니다.』
『오상억 씨의 풍부한 상상력과 치밀한 과학적 두뇌를 선망할 따름입니다.』
『그러면 오상억 씨의 글 전체를 인정하신다는 말입니까?』
『네 ── 한 점도 사실과 어그러짐이 없었습니다. 』
『그러면 유불란 씨는 대체 무슨 이유……』
그러면서 임경부는 상반신을 바싹 유불란에게로 내밀었다.
『대체 어떠한 이유로 일인 삼역이라는 ── 마치 탐정소설의 주인공과 같은 역활을 했는지?…… 직접 유불란 씨 자신의 입으로 설명해 보시요.』
그러나 유불란은 묵묵히 앉아있을 뿐이다.
『변명을 하시요. 오상억 씨의 글이 지금 어떻게 유불란 씨를 불리한 입장에 세웠는가 쯤은 유불란 씨 자신이 잘 알 것이라고 믿는 바이요.』
그래도 유씨는 은몽의 얼굴만을 물끄러미 쳐다볼 뿐이다.
『어째서 화가 김수일이란 가명으로 은몽 씨와 교제해 왔으며 어째서 이선배는 끝끝내 자기의 정체를 감추지 않으면 안 되었던가? 이 모든 의문에 대하여 유불란 씨는 어디까지든 변명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
『그렇습니다. 어디까지든지 나 자신을 변명하지 않으면 안 될 지극히 불리한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도 통절히 느끼고 있는 것 만은 사실입니다. ── 그러나 나의 변명이 얼마나 임경부를 만족시킬런지, 다만 그것만이 마음에 걸려서……. 오늘밤 임경부를 먼저 찾아뵙지 않고 오상억 씨를 찾아온 것도 실상은 나의 변명을 오상억씨라면 혹시 이해해 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였습니다.』
임경부는 입가에 가벼운 조소의 빛을 띄우며
『하옇든 이야길 하여 보시지요. 이해를 하던 못하던 ──』
불쾌하기 짝이 없다는 임경부의 표정이다.
『── 무엇보다 먼저 내가 왜 김수일이란 가명으로 은몽 씨와 교제를 했는가? 이 점을 설명하려면 탐정 유불란이란 사람의 취미, 일상생활 기타 모든 점을 종합해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문제입니다. 오상억 씨도 이미 그 글에서 언급한바 있지만 나의 일상생활 ── 더구나 나의 탐정적 취미 ── 나는 나 자신이면서도 때때로 나 이외의 인물을 모방하는데 무한한 흥미를 가집니다. 그것은 다만 인물의 외관뿐만 아니라 그 인물의 내적 생활(內的生活) ── 성격이라든가, 취미라든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뭐 사람이 지니고 있는 분위기까지도 모방하지요.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가 자연 발생적 이중인격자라면 나는 인위적인 이중인격자입니다. ── 그렇습니다. 내가 미모의 무희, 공작부인과 ××개인 전람회에서 서로 알게 된 것은 바로 내가 화가로서의 생활을 얼마 동안 계속하고서 결심한 그 즈음이었습니다.
누구한테도 그러하듯 나는 완전한 한 개의 화가 김수일로서 나 자신을 공작부인께 소개하였던 것입니다. ──』
유불란은 잠깐 말을 멈추고 어떻게 설명하면 상대방을 충분히 이해 시킬 수 있는가를 생각하다가 다시 계속하였다.
『── 물론 처음엔 그저 가벼운 의미에서 잠깐 만났다 곧 헤어지는 사람가운데 하나로서 공작부인을 대하였습니다마는 ──」
하고 얼굴을 주은몽에게로 돌리며 임경부야 듣건 말건, 은몽 씨 당신 좀 내말을 똑똑히 들어주시오, 하는 투로
『── 그러나 나는 얼마 지나 실로 의외의 사실을 발견하였던 것입니다. ── 세상의 애인 공작부인 주은몽 씨가 나를 따르고 나를 사모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은몽 씨!』
유불란은 한층 어조를 높여서
『당시의 나로서 이 얼마나 영광이었겠습니까! 그러나 한 가지 슬픈 사실 ── 그것은 그리 고상하지 못한 직업을 가진 탐정 유불란에게 바치는 애정이 아니고 화가 김수일 ── 예술가적 아름다운 공상과 예술가적 사색과 정열과 분위기를 가진 순진하고도 쾌활한 청년화가 김수일이에게 바치는 애정인줄을 깨달은 나의 슬픔과 낙망을 은몽 씨, 당신은 감히 짐작할 수 있겠습니까? 바늘 끝처럼 예민한 은몽 씨의 예술가적 기질은 화가 김수일과 맞을지언정 탐정 유불란과는 결코 맞을 리 없으리라고 이것은 단지 나 자신의 추측이 아니라 어떤 날 우리들의 화제가 우연히도 탐정소설에 언급하였을 때 은몽 씨, 당신은 무엇이라 말씀했었는지 기억하십니까? ── 나는 탐정소설을 즐겨 읽지마는 그것은 소설에 나오는 탐정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도리어 탐정에게 쫓겨 다니는 범죄자의 말 못할 사정, 호소할 곳 없는 신세 ── 온 세상을 적으로 삼고 싸우는 그 저릿저릿한 공포와 쓸쓸한 심정을 생각할 때 치밀한 두뇌와 민활한 수완을 가진 소위 명탐정이란 존재를 은몽씨는 그 예술가적 사색을 가지고 얼마나 경멸했으며 얼마나 비웃었습니까? 나는 그때처럼 자기의 직업에 대해서 슬퍼해 본 적은 없었지요. 이것이 즉 나로 하여금 끝끝내 화가 김수일로서의 행동을 취하는 한 중대한 원인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말이 없다.
『── 그래서 나는 태평동 나의 집에서 가장 가까운 서린정 「중앙 아파─ 트」에다 김수일의 숙소를 정했던 것입니다. 은몽 씨가 나의 사진을 한 장도 가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임경부께서는 적지 않게 수상히 생각 하였겠습니다마는 그것도 역시 어디까지든지 나 자신을 감추려는 데서 한 장의 사진도 은몽 씨께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
하고 그 때까지 묵묵히 귀를 기우리고 앉았던 임경부가 입을 열었다.
『어째서 유불란 씨는 또 이선배란 이름을 가지고 가장무도회에 나타났는지 그 점을 정확히 설명해 보시요.』
『그것도 역시 같은 동기에서 부터였지요. 그 점에 대해서는 나보다도 오상억 씨의 글이 더 정확히 설명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파트너」 백영호 씨에 대한 의리 때문에 모든 것을 저바리고 그리로 시집가려는 공작부인에게 최후의 의향을 물어볼 생각이었지요. 그러려면 필연적으로 김수일이란 얼굴을 그대로 가지고 갈 수 없는 것이 무도회에는 유불란과 김수일의 얼굴이 같다는 것을 공작부인 앞에서 증명할 사람이 있을 것을 두려워한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로는 예의 이중인격 취미 ── 더구나 그것이 한국에서는 처음보는 가장 무도회라는데 자극을 받아 그런 장소에 어울릴만한 가장을 시켜서 이번에는 놀라운 이 선배란 인물을 내세웠던 것입니다. 그러나 나로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다른 사람은 혹시 몰랐다하더라도 과언이 아니지만, 은몽 씨가 이선배의 가장을 몰라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은몽 씨는 이 선배를 유불란 씨 인줄은 몰랐을망정 그것이 김수일이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나는 믿습니다. 은몽 씨 어떻습니까?』
하고 은몽의 얼굴을 쏘는 듯이 쳐다본 것은 오상억 변호사였다.
은몽은 잠자코 오상억을 바라보았다.
『어떻습니까 은몽씨? 김수일과 이선배가 동일한 인물이란 것을 은몽 씨만은 벌써부터 알고 있었으리라고 믿는데……』
하고 재차 묻는 오상억의 말에 은몽은 또 다시 머리를 숙이며
『저도 처음엔 몰랐어요. 그러나 화장실에서 침실까지 그이에게 안기워올때 저의 코를 찌른 이상한 몸 냄새가 수일 씨의 것인 줄은 얼마 지나서야 생각이 났어요. 그러나 도저히 제 입으로 이선배와 김수일 씨가 같은 인물이란 말은 어떻게……』
『그러면 김수일 씨를 위해서 아직까지 잠자코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려?』
임경부의 불만이었다.
그러나 은몽이 아무 대답이 없는 것을 보고 임경부는 유불란을 향하여
『그러면 유불란 씨가 ── 아니 이선배가 무도회장을 탈출하여 끝끝내 자취를 감추어 버린 것도 오상억씨의 추측과 같이 유불란과 이선배,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서 유불란과 김수일 이가 같은 인물이라는 사실을 감추려고 한 때문입니까?』
『그렇습니다. 오상억 씨의 상상과 조금도 어그러짐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이유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 두겠습니다. 내가 그처럼 경찰의 맹렬한 추격을 받아 가면서 까지 끝끝내 자취를 감추었나는 것에는, 그리고 지금까지 일인삼역이라는 사실을 숨겨두고자 한 이면에는 대단히 외람스러운 수작이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설명해 드리지 못하는 무레를 용서해 주십시요.』
『음 ──』
하고 임경부는 한번 신음한 후에
『그러면 거기에는 무슨 중대한 이유가 숨어 있다는 말씀이지요?』
『아니올시다. 숨어있을 것 같아서 하는 말입니다.』
『그럼 무슨 단서를 잡았다는 말입니까.』
『아니올시다. 잡을 것 같아서 하는 말씀입니다.』
『음 ── 하옇든 사건이 이만큼이라도 진전을 본 것은 오상억 변호사의 공로라는 사실과 사건을 이처럼 복잡하게 하고 경찰당국과 일반 민중을 이처럼 속여 온 책임은 유불란 씨에게 있다는 것만은 기억해 두셔야겠습니다.』
『네 잘 알아 들었습니다. 거기 대한 책임은 이 사건을 하루바삐 해결하므로써 당국과 아울러 전 한국 민중에게 사죄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
유불란은 그 때 오상억과 은몽을 한 번씩 쳐다본 후에
『그러나 오상억이라는 호적수(好敵手)가 본격적으로 사건에 손을 댄다면…… 임경부, 정신을 똑똑히 차려야 합니다. 이러다가는 결국 사건의 공로자라는 지위는 임세훈 경부나 유불란 탐정을 무시하고 오변호사 께로 옮아갈 것입니다. ── 더구나 공작부인 주은몽을 위해서는 전 생명을 바쳐서라도 발을 벗고 나서겠다는 것이 오상억 씨의 의향인 듯 싶은 지금에……』
동서고금을 통하여 명작에 나오는 명탐정들은 거의 다 연애를 모르는 글자 그대로의 목석같고 기계 같은 초인적(超人的)인물이다.
그러나 유불란 탐정만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보통 사람과 같이 연애할 줄 알고 보통사람과 마찬가지로 질투할 줄 아는 말하자면 피가 도는 인간이다.
허나 이처럼 노골적으로 은몽과 오상억 사이에 관심을 두는 것은 처음이다.
『유불란 씨는 아까부터 나와 은몽 씨의 사이를 너무 과도히 신경을 쓰시는 모양같습니다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너무 교양 없는 사람들의 취할 태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말씀을 좀 삼가시는 게 어떻습니까?』
그러나 사람들은 유불란 씨의 답변만을 듣고 있을 여유를 갖지 못했다.
바로 들창을 등지고 앉았던 은몽이 무엇에 놀랐는지 「흑!」하고 숨을 드려 마시며 갑자기 의자에서 벌떡 일어서서 휙하고 뒤를 돌아다 본 때문이다.
흐느적 흐느적 움직이는 「커 ─ 텐」!
치렁치렁하게 늘어진 「커 ─ 텐」이 물결처럼 흐느적거리지를 않는가?
사람들은 불현 듯 그 어떤 불길한 예감에 온몸이 으스스함을 느꼈다.
『바람도 없는데 「커 ─ 텐」이 왜 움직일까?』
그런 의혹이 일시에 사람들의 가슴을 꽉 부여잡는다.
그 순간, 의자에서 벌떡 일어선 유불란 탐정이
『누구냐?』
하고 고함을 치면서 비조처럼 재빠른 솜씨로 「커 ─ 텐」을 헤치고 들창을 휙하니 넘어 나갔다.
들창 밖은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 안개의 담벽이다.
오상억과 임경부도 들창 밖을 내다보았다.
『누구냐?』
정원을 헤매는 유탐정의 거치른 목소리가 안개를 뚫고 들어온다.
그 때였다.
『앗!』
하고 외치는 은몽의 째지는 듯한 목소리가 오상억과 임경부의 등 뒤에서 떨려졌다.
『왜 그러시우?』
오상억과 임경부가 그렇게 고함을 치면서 일시에 뒤를 돌아다보았을 때
『붉은 봉투가 ── 그 놈의 붉은 봉투가 ──』
하고 은몽은 그 때까지 자기가 걸터앉았던 의자의 등을 가리켰다.
『붉은 봉투?』
오상억과 임경부는 그렇게 반문하면서 은몽이 가르치는 곳을 바라보았다.
『아, 봉투다! 빨간 봉투로구나!』
『해월이다! 해월의 것이다!』
한장의 주홍색 봉투가 조그마한 단도와 함께 의자의 등 ── 심노색 「비로 ─ 드」에 박혀 있지 않는가!
해월의 경고문(警告文)! 복수귀 해월의 무서운 경고문이다!
오상억은 곧 칼과 함께 주홍색 봉투를 뽑았다.
고슴도치처럼 몸을 오그리고 바들바들 떠는 주은몽 ──
『아아 무서워!…… 무언가 등 뒤에서 사람의 숨결소리가 들리기에 돌아다보니 「커 ─ 텐」이 그처럼 흐느적 흐느적……』
새파랗게 변색한 은몽의 입술이었다.
오상억은 부리나케 봉투를 떼었다.
은몽!
내가 가장 미워하고 내가 가장 귀애하는 은몽! 가장 미워하기 때문에 너를 죽이려고 결심한 나요, 가장 귀애하기 때문에 아직도 죽이지 못하고 있는 나로다. 그러나 은몽! 나는 알고 있다. 이제 방금 오상억의 품안에서 뭐라고 아양을 부렸는가? 『이 품안이 나의 피난소, 피난소! 』하고 너는 중얼거렸다. 그러나 너의 남편 백영호가 죽은지 오늘까지 몇일인고?…… 요부! 요부! 은몽, 너는 어렸을 때부터 요부였다. 그러나 결국 너는 나를 두려워하지 않고는 못 견딜 것이다. 네가 그처럼 영원한 보금자리로 믿고 있는 오상억의 품안이 그 얼마나 힘없는 것인가를 알 때가 오리라.
그러면 제 이차의 참극의 주인공은 누구냐? 누구냐?……
복수귀 해월
『음!』
오상억은 편지에서 눈을 떼었다. 무서운 얼굴이다.
『나를 죽이겠다고?……』
반항심에 타오르는 듯한 오상억의 얼굴을 은몽은 미안한 듯이 바라다본다.
두 사람의 시선과 시선이 그 어떤 굳은 맹세를 짓는 것 같았다.
그 때 정원으로 해월을 따라 나갔던 유불란이 돌아왔으나 아무런 수확도 없었다. 짙은 안개속 ── 해월이가 어느 구석에 숨었는지 알 길이 만무하다.
유불란도 편지를 읽었다. 아까 자기가 들창 밖에서 방안을 엿보고 있을 때 해월이도 어느 구석에서 자기와 같이 방안을 드려다 보고 있었던가? ──
『대담한 놈이다! 무서운 일이 반드시 일어나고야 말 것이다!』
유씨의 이 한마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그것은 유씨 자신만이 알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