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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맞춰주는 곳을 찾을 것인가, 나를 성장시키는 법을 찾을 것인가
사이비는 누가 만들까요?
거짓말하고 사람을 속이는 사람만 없어지면 사이비도 사라질까요?
이날 큰스님의 법문은 아주 쉬운 음식 이야기에서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법문을 끝까지 따라가다 보면 음식 이야기에서 정통 불법과 사이비의 문제로, 다시 경전을 어떻게 현대인에게 전할 것인가의 문제까지 이어집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결국 한 자리로 돌아옵니다.
무엇을 찾고, 무엇에 끌리고, 무엇을 믿게 되는가도 각자의 복덕과 근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큰스님의 법문
1. 돈이 없으면 아무 음식이나 먹게 됩니다
큰스님께서는 먼저 아주 현실적인 비유를 드셨습니다.
돈이 없고 배가 고프면 아무 식당에 가서라도 밥을 먹어야 합니다.
당장 배를 채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음식의 재료가 얼마나 좋은지,
어디서 만들었는지,
몸에 좋은지 나쁜지를 따질 형편이 아닙니다.
일단 먹어야 몸을 살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유가 생기면 달라집니다.
음식을 골라 먹습니다.
좋은 것을 찾고,
몸에 맞는 것을 찾고,
어떤 재료를 사용했는지도 따져봅니다.
큰스님께서는 여기서 바로 말씀하셨습니다.
“마음도 그렇습니다.”
몸이 궁하면 아무 음식이나 먹듯이,
마음에 복이 부족하면 아무 불교나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불교가 다 똑같지.”
“이것도 불교고 저것도 불교지.”
하며 가리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 아무 음식이나 계속 먹으면 몸이 상할 수 있듯이,
아무 가르침이나 계속 받아들이면 마음도 상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2. 좋은 것을 알아보는 안목도 복입니다
큰스님께서는 명품 이야기도 하셨습니다.
형편에 여유가 생기고 좋은 것을 접하다 보면 좋은 것을 알아보는 눈도 생깁니다.
이 말씀의 핵심은 비싼 물건을 가지라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불교에도 무엇이 좋은 법인지 알아보는 안목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큰스님께서는 중국에서 들어오는 물건을 예로 들기도 하셨습니다.
우리가 값싼 물건만 접하면
“중국 제품은 다 저렇다.”
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중국 안에도 아주 좋은 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고, 좋은 제품도 얼마든지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요구하고,
어느 정도의 것을 찾고,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접하게 되는 것도 달라진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불교도 마찬가지입니다.
복덕이 부족하면 아무거나 붙잡기 쉽지만,
복덕이 있으면 정통 불법으로 눈이 간다고 하셨습니다.
3. 겉으로 불교처럼 보여도 모두 같은 것은 아닙니다
큰스님께서는 당시 유튜브를 비롯해 여러 곳에서 이상한 종교적 주장들이 퍼지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하셨습니다.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었다고 해서,
불교 용어를 쓴다고 해서,
천도와 극락을 말한다고 해서
그 말이 모두 부처님의 가르침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특히 사람의 죽음과 사후세계에 대한 불안을 이용해
특정한 의식을 해야만 문제가 해결된다거나,
큰돈을 내면 특별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식의 주장을 하는 사례를 들며 강하게 경계하셨습니다.
카페 글에서는 특정 인물을 거론하지 않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큰스님께서 왜 그런 사례를 말씀하셨는가입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도 문제지만,
그 말을 듣고 실제로 찾아가는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4. 해로운 줄 알아도 찾는 사람이 있습니다
큰스님께서는 담배를 예로 드셨습니다.
담배가 건강에 해롭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고 담배를 아예 만들지 않으면 흡연이 사라질까요.
큰스님께서는 그렇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찾는 사람이 있으면 다른 방법으로라도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과거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절의 밀주 이야기도 하셨습니다.
집안 식구들이 먹을 쌀도 부족한데,
술을 마시고 싶은 사람은 그 귀한 곡식으로 술을 만들어 먹기도 했습니다.
해롭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만으로 욕망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큰스님께서는 이 점을 불교에도 연결하셨습니다.
“이것은 해로운 가르침이다.”
“이것은 정법이 아니다.”
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그런 것을 계속 찾아다니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복덕과 근기의 수준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5. 사람은 자기 기분에 맞는 곳을 찾아갑니다
법문 후반부에 큰스님께서는 이 문제를 아주 직접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한 곳에서 불교를 배우다가 떠났다고 해봅니다.
그 사람이 떠났다고 해서 반드시 더 바른 곳으로 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큰스님께서는
“자기 기분에 맞는 데를 가겠지요.”
라고 하셨습니다.
그곳에서도 자기 마음에 맞지 않으면
조금 더 자기 기분을 맞춰주는 곳으로 갑니다.
거기서도 불편하면
또 더 맞춰주는 곳을 찾습니다.
결국 무엇이 바른 법인가를 기준으로 찾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내 마음에 드는가를 기준으로 찾게 되는 것입니다.
큰스님께서는 이것도 복에 따라 달라진다고 하셨습니다.
복덕이 있으면 정통 불법을 찾고,
그렇지 않으면 이름만 불교라고 해도 아무거나 붙잡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6. 왜 가짜는 끊임없이 진짜처럼 보이려고 할까요
큰스님께서는 가짜 검사 이야기도 예로 드셨습니다.
가짜가 사람을 속이려면
자신이 진짜인 것처럼 보여야 합니다.
그래서 명함을 만들고,
직함을 내세우고,
신분을 강조합니다.
진짜처럼 보여야 그다음에 얻을 것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큰스님께서는 종교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끊임없이 자신의 특별함을 내세우고,
남에게는 없는 능력이 있다고 하고,
신비한 일을 할 수 있다고 하고,
자기에게만 특별한 방법이 있다고 강조한다면
그 외형보다 안에 들어 있는 가르침을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얼마나 특별해 보이느냐보다
그 말이 실제로 부처님의 가르침과 맞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7. 사람마다 찾는 위안도 다릅니다
큰스님께서는 사람마다 찾는 것이 다르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막걸리를 마시고,
어떤 사람은 소주를 마시고,
어떤 사람은 위스키나 고량주를 마십니다.
사람마다 취향도 다르고 형편도 다릅니다.
정신적인 세계도 비슷하다고 하셨습니다.
이 종교를 믿는 사람도 있고,
저 종교를 믿는 사람도 있고,
이상한 가르침을 찾아가서도 나름대로 정신적인 위안을 얻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것이 잠시 위안을 주느냐가 아니라
결국 그 사람의 마음을 어디로 데려가느냐는 것입니다.
몸에 좋지 않은 것을 오래 먹으면 몸이 망가지듯,
잘못된 가르침을 오래 받아들이면 마음이 피폐해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8. 잘못된 믿음이 깊어지면 다시 돌리기도 어려워집니다
큰스님께서는 술과 담배를 오래 한 사람이 치료를 시작하면 회복이 더 어려울 수 있다는 비유를 들었습니다.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면 훨씬 빨리 회복할 수 있었을 텐데,
오랫동안 몸에 쌓인 것이 있으니 치료에도 시간이 더 걸립니다.
마음도 마찬가지라고 하셨습니다.
잘못된 믿음을 반복해서 듣고,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고,
오랫동안 그 사고방식에 익숙해져버리면
나중에는 바른 법을 들어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큰스님의 표현은 상당히 강했습니다.
그만큼 무엇을 반복해서 듣고 믿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무엇을 먹느냐가 몸을 만들듯,
무엇을 받아들이느냐가 마음에도 흔적을 남깁니다.
9. 그렇다면 정통 불법을 어떻게 전해야 할까요
그런데 큰스님의 법문은 사이비를 비판하는 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방향 전환이 일어납니다.
바른 법이 있다면,
그 법을 사람들이 실제로 만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큰스님께서는 오래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일이 있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불교 경전이 아주 방대합니다.
큰스님의 표현으로는 수천 권에 이릅니다.
그런데 그 수많은 경전은 각각 내용이 다릅니다.
그 내용을 현대 사람들이 한눈에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림으로 만들면 어떻겠느냐는 것입니다.
10. 경전마다 한 장의 그림을 만든다면
큰스님의 구상은 단순히 불교풍의 예쁜 그림을 만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먼저 그림을 만드는 사람이 경전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경전의 핵심 장면과 뜻을 현대적인 그림으로 표현합니다.
그 아래에는 짧게 설명을 붙입니다.
어느 경전의 어떤 내용을 표현한 것인지,
왜 이런 장면으로 그렸는지를 설명합니다.
그런 그림들이 수천 장 모이면
하나의 거대한 그림 장경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큰스님께서는 옛날의 변상도를 말씀하셨습니다.
경전의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해 전하던 전통이 이미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옛 그림을 그저 오래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바라보고 있어서는 현대 사람들이 그 뜻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눈으로도 바로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변상도가 필요하다는 말씀이었습니다.
11. 오래되었다는 것과 법이 전달된다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큰스님께서는 옛날 그림이나 판화가 오래됐다는 이유로 무조건 신심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사람이 보고도
무엇을 표현한 그림인지 모르고,
무슨 경전 이야기인지 모르고,
그 속의 법을 이해할 수 없다면
전달의 역할을 제대로 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적이고,
아름답고,
오늘의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그림으로
경전의 내용을 다시 보여주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부분에서 큰스님께서는 이전에 만들어본
부처님의 첫 설법과 다섯 수행자의 그림도 언급하셨습니다.
그런 방식의 그림이 좋았다고 하시면서,
오늘날에는 AI 같은 새로운 기술을 이용하면 이런 작업도 훨씬 가능해졌다는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12. 법당 벽에도 경전의 내용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큰스님께서는 법당 벽화 이야기도 하셨습니다.
법당에 무엇을 그려놓을 것인가.
단순히 익숙한 불교 그림을 반복해서 채우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생애와 실제 경전의 내용을 제대로 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경전 속의 장면이 벽에 펼쳐지고,
그 공간에 사람이 들어가
그림을 보며 법을 생각하고,
기도하고,
수행할 수 있다면
마치 경전 속으로 들어간 것 같은 공간이 될 수 있습니다.
큰스님께서는 그런 공간 자체가 법을 전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셨습니다.
법당이 단순히 불상을 모셔놓는 공간이 아니라
경전의 세계를 경험하는 공간이 되는 것입니다.
13. 내용은 정통이어야 하지만, 전하는 방식은 현대적이어야 합니다
이날 법문에서 저는 이 부분도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옛것을 무조건 버리자는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은 바꾸면 안 됩니다.
경전의 본래 뜻도 정확하게 지켜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전하는 방법까지 옛날에 머물러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의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
오늘의 사람이 보고 이해할 수 있는 그림,
영상과 새로운 기술을 이용해서라도
정통 불법을 제대로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법의 내용은 정통이어야 하지만,
그 법을 담는 그릇은 시대에 맞게 바뀔 수 있다는 말씀으로 들렸습니다.
14. 집집마다 보물처럼 간직하는 경전
큰스님께서는 오래전 인연이 있었던 한 스님의 이야기도 하셨습니다.
해외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던 스님과 교류하면서
부처님의 초기 가르침을 담은 경전을 제대로 번역하고 책으로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하셨습니다.
단순히 책 한 권을 출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집집마다 하나씩 두고
집안의 보물처럼 간직할 수 있는 경전입니다.
삶이 힘들 때,
어려움이 생겼을 때,
사람이 무엇인지 고민될 때,
언제든 펼쳐볼 수 있는 책입니다.
큰스님께서는 기독교인들이 삶의 문제 앞에서 성서를 펼쳐 답을 찾아가듯,
불자들도 경전을 그렇게 가까이에 두고 살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집안의 족보처럼,
가보처럼 소중히 여기면서
필요할 때마다 꺼내보는 경전입니다.
15. 종단이 해야 할 일도 이런 것이 아닐까
큰스님께서는 종단에서도 이런 일을 하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경전을 제대로 편집하고,
오늘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을 넣고,
많은 불자들에게 보급해서
누구나 집에서 경전을 가까이 두고 수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법문 중에는
“큰 절 몇 개 팔아서라도 하면 되지 않느냐.”
는 식의 큰스님 특유의 농담 섞인 진담도 나왔습니다.
그만큼 큰 건물이나 외형보다
실제로 불자들에게 법을 전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뜻으로 들렸습니다.
불교의 자원과 힘을
사람들이 바른 법을 만나는 데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16. 그리고 다시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법문 마지막 부분에서 큰스님께서는 다시
복과 마음의 문제로 돌아오셨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가난해지면
이상한 것에 관심이 가기 쉽다고 하셨습니다.
좋은 법이 있어도 그것을 찾지 않고,
자기 기분에 맞는 곳을 찾아갑니다.
그곳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더 자기 기분을 맞춰주는 곳으로 갑니다.
큰스님께서는
무엇을 찾고,
무엇에 끌리고,
어떤 가르침을 받아들이는지도
결국 자기 복에 따라 달라진다고 하셨습니다.
복이 있으면 정통 불법을 찾고,
복이 부족하면 아무거나 붙잡으면서도 그것을 불교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말씀으로 다시 처음의 음식 비유와 연결되었습니다.
좋은 음식이 있어도
좋은 음식을 알아보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좋은 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까지가 이날 큰스님께서 하신 법문의 전체 흐름입니다.
법문을 들으며 제가 생각해 본 부분
이번 법문을 들으며 저는 결국 제 욕망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에 끌립니다.
쉽게 복을 받고 싶으면 그런 말을 해주는 곳에 끌리고,
내가 잘못하지 않았다는 확인을 받고 싶으면 계속 나를 맞춰주는 곳에 끌립니다.
반대로 정말 자신을 바꾸고 싶다면,
조금 불편하더라도 내 욕망과 소견을 돌아보게 하는 법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법문을 이렇게 받아들였습니다.
복덕이 부족하면 자기 소견을 만족시켜주는 곳을 계속 찾게 되고,
복덕이 있으면 조금 불편하더라도 자신을 성장시키는 정법을 찾게 됩니다.
결국 내가 무엇에 끌리고 있는지가 지금의 내 마음을 가장 솔직하게 보여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이것 하나만 물어보면 좋겠습니다
지금 나는 무엇에 끌리고 있는가?
그리고 그다음 질문입니다.
그것은 나를 맞춰주고 있는가,
아니면 나를 성장시키고 있는가?
사이비를 분별하는 공부는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데서만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내 욕망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보는 데서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좋은 법을 만나는 것도 복이고,
그 법을 알아보는 것도 복입니다.
그리고 그 법 앞에서 내 욕망과 소견을 내려놓고
나 자신을 바꾸어갈 수 있는 것.
저는 그것이 더 큰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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