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말 같은 바리깡이 사실은 바리캉(Bariquand)이라는 프랑스 말이다.
그것도 ‘Bariquand et Mare’라는 회사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냥 이발기라고 하지만 왠지 바리깡이 더 친숙하게 다가온다.
미국에서는 바리캉을 클리퍼(Clipper)라고 한다고 한다.
아들이 미국에 유학 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리캉을 사서 보내달라는 메일이 왔다.
이발 요금이 너무 비싸 가난한 유학생이 마음 편히 이용할 수가 없어 직접 해결해 보겠다는 것이다.
'중도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어떻게 머리를 직접 손질하겠다는 것인가?
친구와 품앗이 형식으로 서로 손질하면 된다는 지혜로운 발상에 흐뭇하면서도 가슴이 짠했다.
학위 받고 귀국하면서 챙겨 온 짐 속에 그때 보내준 바리깡이 들어 있었다.
반가움 반 고마움 반으로 한참 어루만졌다.
이것으로 적지 않은 이발 요금을 절약했겠구나.
이젠 쓸 일이 없지만, 아들의 땀이 배고 소중한 추억이 담긴 물건이라 고이 간직하기로 했다.
쓰던 물건은 유리컵 하나도 버리지 않고 다 가져왔다.
아끼는 습관이 어릴 때부터 길러진 덕분이다.
우리나라같이 포장이사시스템이 없는지라 처음부터 끝까지 짐을 싸고 박스에 넣어 꾸리는 일을 혼자서 다 했단다.
깨지기 쉬운 물건은 동그란 공기방울이 촘촘히 있는 보호충진비닐로 겹겹이 싸서, 한 달 만에 배로 태평양을 건너온 물건 같지 않게 생생했다.
쓰기는 '바리캉'이지만 읽기는 '바리깡'으로 하는 이발 기구에 대한 추억이 나에게도 있다.
아주아주 오래전에 일본 출장 가는 남편에게 이발용 가위를 사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다.
날렵하게 생긴 일본제 가위로 아이들의 머리를 손질하기 위해서다.
머리카락은 가늘지만 탄력이 있고 질겨서 보통 가위로는 잘 잘리지 않는다.
반드시 이발용 가위를 사용해야 하는데 가격이 꽤 비쌌다.
이발은 상당히 숙련된 기술을 요하는 일이다.
초보인 내가 마음먹은 대로 될 리 없었다.
한쪽을 자르면 한쪽이 길어 다시 자르다 보면 계획한 것보다 짧아지기 일쑤다.
서툰 솜씨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도 아들은 군말이 없었다.
여탕에 갈 수 있을 때까진 목욕하면서 머리 손질을 해 뒤처리가 비교적 쉬웠다.
더 자라서는 화장실에서 머리카락을 자르고는 바로 목욕을 시켰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친정엄마의 호통(?)이 있기 전까지 순조롭게 지속되었다.
"야~들 머리모양이 와 저렇노? 이발소에 안 가고 아직까지 니가 깎아주나? 잘 생긴 우리 손자들 인물 다 베리(버려) 놨네, 야~들아 할무이하고 이발소 가자."
이발소에 다녀온 아이들은 딴 아이가 되어있었다.
단 돈 몇 푼 절약하자고 너희들에게 상처를 주었구나.
후회와 미안함으로 몰래 이발 가위를 깊숙한 곳으로 치워버렸다.
'다른 아이들보다 세련되지 못한 머리 때문에 속상하거나 주눅 들지는 않았을까? '
'엄마, 나도 친구처럼 이발소에서 깎을래.'라고 투정이라도 부렸으면 좀더 일찍 깨달았을 텐데...
잘 참아준 착한 아들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이런 연유로 이 가위도 잘 간직해야 할 품목 중의 하나가 되었다.
몸과 머리카락과 피부(身體髮膚)는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受之父母) 감히 훼상(毁傷)하지 않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라는 유교의 가르침은 오랫동안 우리를 지배했다.
오죽했으면 을미사변(1895년) 후 단발령이 내려지자 최익현 같은 우국지사가 목숨으로 항거했겠는가.
아마 내가 옛날 아이들 머리를 집에서 손질한 것이 꼭 절약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런 조상의 DNA가 내 몸에 흘러서가 아닐까 자위해보기도 한다.
조심조심 내 손으로 내 아이의 머리를 손질해주면서 사랑과 효도를 동시에 느껴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동네마다 남성 전용 헤어숍이 있어 값싸고 세련되게 머리를 손질해주는 세상에 이런 이야기를 하니 전설 같기도 하다.
그래도 바리캉 없이는 이발사가 기술을 발휘할 수 있을까.
2007.3.14
첫댓글 오랜만에 듣는 단어라 새삼스럽네요.
그시대에는 간단한 정리는 집에서 바리깡으로 살짝살짝 밀었던 기억이 납니다.
어깨에 보자기 걸치고 목욕탕에서 머리 정리하는 남자아이...정겨운 그림입니다..
예전에 그 시절엔 남자있는 집에는 바리캉 하나 준비하는 것이 바램이었어 ... 요즘도 옛날 얘기하면서 많이 웃는다 ..
우리 집에는 딸이 많아 언니들이 우리 머리를 깎아 주는데 단발머리 양쪽을 마추느라고
한쪽 깎으면 한쪽이 긴것 같고...이러다 자꾸 마추느라고 깎다 보면 나중에는 머리가
꼭 대접 엎어 놓은것 같이 깎여서 울은적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