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서울시향 연주회에서 지휘자 마르쿠스 슈텐츠와 단원들이 인사하는 모습. 서울시향 제공
지난달 16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서울시향 연주회(지휘 마르쿠스 슈텐츠). 영국 정상급 피아니스트 스티븐 허프(59)가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을 협연한 뒤 관객들의 박수 갈채에 네 차례나 무대로 나와서 거듭 답례했다. 이쯤이면 관객들도 앙코르를 기대할 터. 하지만 허프는 무대 뒤편의 합창석을 돌아보면서 깍듯하게 인사하면서도 정작 앙코르는 생략했다.
불과 2주 전인 2~3일 같은 악단과 협연한 뒤 자신이 직접 편곡한 ‘아리랑’을 앙코르로 선사했던 것과는 사뭇 딴판이었다. 허프는 올해 발표한 자신의 독집에도 ‘아리랑’을 녹음해서 실었다. 설마 보름만에 야박해지기라도 한 걸까.
이유는 최근 수도권 거리두기 4단계 격상 때문. 밤 10시 이전에 공연장을 모두 비우고 극장 불을 꺼야 한다. 이 때문에 실제 공연은 9시 50분 이전에 모두 마쳐야 하는 상황. 최근 클래식 공연장에서는 앙코르가 자취를 감추는 경우가 많다. 중간 휴식 시간도 줄이거나 때로는 아예 없애기도 한다. 이날 연주회도 중간 휴식을 기존 15분에서 10분으로 줄였다. 서울시향 측은 “통상적으로 공연 시간을 100분에 맞추고 앙코르와 휴식 시간 등을 조정한다”고 밝혔다.
거리두기 4단계에 따른 예술의전당 공지
다음날인 17일 저녁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린 호른 연주자 김홍박(39)의 리사이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서울시향을 거쳐서 현재 오슬로 필하모닉 수석으로 활동 중인 정상급 연주자. 3년 만의 국내 독주회에서 힌데미트·비녜리의 호른 소나타 같은 어려운 20세기 작품들을 종횡무진했다. 객석의 갈채가 끊이지 않았지만, 역시 앙코르는 생략. 김홍박은 무대에 나와서 “어려운 시국에 찾아주셔서 감사하다. 방역 수칙 따라서 아쉽지만 이것으로 마치겠다”고 인사말로 대신했다.
4단계 격상 이전에도 좌석간 거리두기, 관람 도중 마스크 착용, 전자 출입 확인 같은 방역 조치는 공연장에서 엄격하게 적용됐다. 추가로 밤 10시가 공연장의 ‘통행 금지’ 시간이 된 것. 주말 낮 공연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지만, 평일 오후 8시에 시작하는 음악회는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처지다. 지난달 1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코리안 챔버 오케스트라(음악 감독 김민)의 연주회는 아예 시작 전부터 ‘인터미션(중간 휴식) 없이 100분 가량 진행될 예정’이라는 공지를 띄웠다.
이 때문에 공연 시작 시간을 저녁 8시에서 7시 30분으로 30분 앞당겨 재공지하는 경우도 크게 늘었다. 음악계 관계자는 “일일 확진자가 1000명을 뛰어넘은 현 상황에서는 별다른 사고 없이 음악회를 치르는 것 자체가 최우선적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면서 “방역과 문화 향유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