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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마리 개미- 주잉춘 그림, 저우쭝웨이 글
2007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2008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특별상(유네스코 )
저자의글:
아이 때는 땅바닥에 쪼그려 앉아 개미만 봐도 시간 가는 줄 몰랐죠 개미들 사는 모양이 그렇게 재미날 수가 없었습니다. 어른이 되고 나선 개미 볼 일이 없어졌어요. 그저 제 앞가림에 바빴죠 개미는 나의 세계에서 멀어져 갔습니다.
어쩌다 동물의 왕국 같은 데서나 다시 볼 수 있었는데, 너그러운가 하면 제멋대로이기도 한 그들의 모습이 사람과 다를 바 없다고 새삼 느끼곤 했습니다 개미들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먹을 것을 구하고, 번식하고, 무리를 짓고, 싸우고, 심지어 동료의 시체를 묻어줄 줄도 알더군요. 어느 날 다시 땅에 쪼그리고 앉아 개미를 지켜봤는데, 문득 개미가 사람을 닮은 게 아니라 실은 사람이 개미를 꼭 빼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뻣뻣하게 서 있는 사람은 개미가 눈에 들어오지 않아, 작 디작은 개미의 생명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여기기 십 상입니다. 땅바닥에 앉았을 때에야 사람과 개미는 똑같이 가엽다는 걸
이 우주에서 사람은 개미보다 나을 것 없이 허약한 존재 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자신을 낮추고 쪼그려 앉아 가만히 보면 거기 세상의 참 모습이 펼쳐질 겁니다 사람과 개미는 원래 같으니까요.
* 장자 만물제동론(萬物齊同論)
천지만물은 선악(善惡)도 미추(美醜)도 없이 모두 평등하다
96.97 나는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없어 하늘의 뜻을 놓고 한판 내기라도 걸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몸부림쳐도 말판 위의 주사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친구는 다시 웃으며 말했다.
"너는 운명을 굴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구나. 실은 운명이 너를 굴려 가는 거야, 그런데다 힘을 낭비하지 말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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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마리 개미
주잉춘, 저우쭝웨이
혹 밤에 잠들 때에 안대나 귀마개를 사용하시나요? 요란한 소리나 호화스런 조명을 견디기 어렵다고 느낀 적이 있나요? 더 높고 넓고 좋아 보이는 어떤 것을 향하여 빳빳하게 고개를 들고 위를 꿈꾸며 살아가는 일이 이제는 버겁다고 느끼진 않나요? 그렇다면 어느 하루엔 당신도 이 개미가 되어 보기를 권합니다. 규칙과 명령에 순응하고 기회나 위기 앞에서 떼로 몰려들어 협동과 단결력을 보여주는 개미를 권하는 건 아닙니다. 오늘 소개하는 건 아주 작고 별난 한 마리입니다. 당신의 속눈썹보다 짧고 당신의 한숨보다 가벼운, 그러나 당신이 떨구는 시선 한 줄기를 어둔 밤 달빛 보듯 반가워하는 개미요.
<나는 한 마리 개미>라는 책은 중국의 저명한 북디자이너 주잉춘이 그림을 그리고, 난징 사범대학 교수인 저우쭝웨이가 글을 써서 만들었습니다. 본래 이 책의 제목은 '개미의 잠꼬대'랍니다. 책의 주인공인 한 마리 개미는 우리에게 익숙한 개미가 아닙니다. '개미와 베짱이'나 '개미 투자자' 같이 인간들이 사용하고 있는 개미에 대한 비유 중에 이 개미와 비슷한 건 하나도 없습니다. 생애 처음, 광활한 햇살 아래에 선 이 개미는 가장 먼저 자신이 기대고 숨을 수 있는 그림자가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자신의 그림자를 구하기 위하여 시작한 개미의 여정은 곧 집을 찾는 걸음으로, 시간과 생명에 대한 탐구로, 영웅이 되었다 빌런으로 추락하는 과정으로, 소중한 지기(知己)와의 만남과 이별로 이어집니다. 주잉춘 북디자이너는 배경을 과감하게 치우고 손톱보다 작은 개미를 하얀 종이 위에 풀어 두었습니다. 개미의 여정 속에는 흙이나 숲, 길이나 도시와 같은 배경이 없습니다. 오직 개미 그 자신과 개미가 만나는 존재들이 차례로 등장할 뿐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페이지마다 고요합니다. 가로 세로가 손 한 뼘 정도 너비인 넉넉한 종이 위에 그려져 있는 건 오직 홀로 걸어가는 개미. 하도 여백이 많아서 출판 초기에는 '그림책을 공책으로 쓰라고 이렇게 만들었냐?'는 힐난도 많았다고 하네요. 그러나 이 책은 2007년에는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2008년에는 유네스코 선정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이 되었습니다. 2년을 거듭하여 아름다운 책으로 선정된 이 책의 미학(美學)은 바로 여백입니다.
세상은 소란합니다. 온갖 기기와 기계들이 내지르는 소음, 행여 서로 질세라 마구잡이로 밝혀둔 수많은 조명, 주변을 홍수처럼 채우는 욕망과 자극에 휩쓸려 하루가 갑니다. 아파트니, 스펙이니 하는 것들, 높은 곳을 보고 쉼없이 올라가지 않으면 곧장 쓰레기처럼 나뒹굴 것 같은 위기감은 또 얼마나 지치고 곤한가요. 배경에 파묻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어져버린 ‘나’를 위해 고개를 숙이고 작은 것에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나를 둘러싸던 모든 배경이 신기루처럼 사위어 사라지고 하얀 종이 위 개미처럼 빈 여백 속에 나만 있게 됩니다. 그리곤 개미의 여정을 말없이 따라갑니다. 꿈을 세우고 그것을 좇아 힘차게 가보지만 내 한 몸도 건사하지 못하는 초라하고 남루한 자신을 마주할 때도 있고, 민들레 홀씨를 발견하고 그 포근함에 황홀해하다 뒤이어 다가온 일대의 위기를 겪으며 소스라치기도 합니다. 좋은 일인 줄 여긴 게 화를 부르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쁜 일 사이엔 다행한 것들이 항상 같이 있구나 싶으니, 생은 개미나 사람이나 매 한가지네요. 이런저런 일들을 지나며 개미와 내가 다다른 곳은 모든 생명체가 반드시 이르는 생의 마지막 장. 개미와의 동행은 어둠 속 동그랗게 비추는 빛 한 점으로 남습니다.
지은이들은 책에 '사람과 개미는 원래 같다'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합니다. 무리로서는 종이를 까맣게 메울 만큼 크지만 홀로 있을 땐 공백투성이인 작고 작은 개미와 나 자신이 동일시되는 건 당연한 거였네요. 개미와의 동행은 끝났지만 현실 속에서 나는 그 동행에서 길어온 감각을 잊지 않기로 합니다. 삶이 소란할수록 여백을 지키자고 스스로에게 당부도 합니다. 하얀 종이 위에 보잘 것 없이 작을지라도 ‘나’만은 지워버리지 말기를, 함께 분투 중인 많은 개미들에게도 격려와 안녕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