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되돌아보는
기회
나의 관 위에는
꽃 대신 시집을!
이해인 수녀
나는 열반이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그 의미가 깊고 철학적이어서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쉽지 않겠지만,
모든 불교 수행자에게 열반은
궁극의 꿈이요. 희망일 것이다
사전적 용어로 열반이란,
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꺼버리듯
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이다.
니르바나의 음역어로,
불가에서 흔히 수행에
의해 진리를 체득하여
미혹과 집착을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한
최고의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얼마나 멋진 말인가. 수행을 하다가
입적을 하시는 큰스님들의 경우
마지막 깨달음의 게송으로
열반송을 남기기도 한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에게
나는 가끔씩 스님들의
열반송을 읽어주곤 한다.
그리고 그분들에게 이런
시를 하나 써보라고 말한다.
굳이 시가 아니어도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정리할 수 있는 글이면 좋다.
그것은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도 되지
만, 죽음을 준비하고 심신의 안정을
찾을 수있는 치유법이 되기도 한다.
죽음 앞에서 읽어도. 깨우침을
얻을 수 있는 좋은 열반송이 참 많다.
다음은 평생 하루 한 끼로 청빈과
무소유의 삶을 살며 생사에 초연
하셨던 청화 스님의 마지막 게송이다.
이 세상 저 세상
오고 감을 상관치 않으나
은혜 입은 것이 대천계만큼 큰데
은혜를 갚는 것은 작은
시내 같음을 한스러워할 뿐이네
다음과 같은
나옹혜근선사 열반송도 있다.
칠십팔 년 고향으로 돌아가나니
이 산하대지 온 우주가 다 고향이네
삼라만상
모든 것은 내가 만들었으며
이 모든 것은 본시 내 고향이네
죽음과 삶을 뛰어넘은
큰스님들의 열반송은
죽음 앞에서 불안해 하고 두려워
하는 사람들에게 큰 위안을 준다.
처음에는 그 어떤 소리도 들으려
하지 않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도움이 되는
글귀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그때 나는 다시 이렇게 말한다
''큰스님들만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예요. 살아오면서
자녀들에게 그리고 수많은 후배들,
직장 부하직원들에게 얼마나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나요.
그 말씀 때문에 자녀들은
바른 길을 갔고 후배들은 세상에
나가 열심히 살았잖아요.
그런 말을 해오신 분이
정작 자신의 삶을 말하는 짧은
글을 왜 못 쓰겠어요."
그분들이 살아온 삶
역시 치열한 수행이었다.
가정에서는 누군가의
부모이자 자식이었고.
사회에서는 성실한 일꾼이었다.
나름대로의 삶의 철학이 있는,
개인이라는 저대한 우주였다.
그런데 막상 죽음 앞에 서니
한없이 작아지고 위축되어
그동안 가지고 있던 철학이나
인생관도 흐릿해지고 마는 것이다.
그래도 꼭 한번 지나온
인생을 돌아보며 글로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갖기를 바란다.
내가 좋아하는
부휴 선사와 구산 선사의
열반송을 더 소개한다.
칠십 년 꿈과 같은 바다에서 놀다가
오늘 이 몸 벗고 근원으로 돌아가네
텅 비어 적적하여 한 물건도
없나니 어찌 깨달음과
나고 죽음이 따로 있겠는가
가을 서리 내린
낙엽이 봄꽃보다 붉나니
두두물물 만물의 큰
기틀이 모두 뚜렷하도다
삶도 공이요 죽음도 공이러니
부처님의 해인삼매
속에 미소 짓고 가노라
큰스님들의 열반송을 들려주며
자신의 삶을 시나
글로 써보라고 말했을 때
피식 웃거나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분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아니면 유언이라도
미리 남겨보세요."
''유언이요?"
아프지 않은 사람에게 유언을
미리 써보라고 하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생각하지만.
죽음을 앞둔 사람들에게
유언을 쓰라고 하면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거나
몹시 마음 상해할 수가 있다.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은
사람들의 유언을 말해주기도 한다.
''중광 스님이라고 있어요.
거침없는 행동으로
세간에 화제를 뿌린 스님이지요.
그림을 그리시는 스님인데
아시아학회에 참석해
<나는 걸레> 라는 자작시를
낭송한 후,
걸레 스님이라고 불렸지요.
그 스님의 마지막
유언이 무엇인지 아세요?''
''.....''
"괜히 왔다 간다!''
그러면 박장대소를 하고 웃는다
''조병화라는 시인이 있어요.
그분은 유언으로
'나는 어머님 심부름으로
이 세상에 나왔다가 이제 심부름
다 마치고 어머님에게 돌아갑니다'
라는 말을 남기셨어요."
어머니가 계신 곳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생각을 하면
많은 사람들이 죽음 앞에서
숙연해지면서도 푸근함을 느낀다.
소설가 박완서 선생께서는 나이가
들어가고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씩 곁을
떠나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죽음은 아무도 모르지만
그래도 나의 어머니와 남편과 아들이
일찍 떠난 곳이라고 생각하면,
그래서 나도 그들에게
간다고 생각하면 죽음이 그리
두려운 것만은 아니에요."
나는 죽음을 앞둔 분들에게 묻곤 한다
"돌아가신 분 중에서 가장 보고
싶은 분이나 좋아했던 분이 누구세요?''
할머니. 할아버지. 나이 드신
분들은 어머니나 가족들을 말한다
"그분들 만나러
가신다고 생각하세요."
그러면 대부분 한결 편안해한다.
나도 그럴 것이다.
이 세상 떠나는 날, 그토록 그립던
그분을 만나러 간다는 생각을 하면
조금은 편안히 떠날수 있을 것 같다
"스님은 유언이 뭐예요?"
누군가 내게 물었다. 유언?
나는 특별한 유언이 없다.
나를 이어 정토마을 자재병원을
잘 꾸려갈 분만 있다면,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좋은 죽음을 맞이할
수만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언젠가 말했듯이
나는 법정 스님을 존경한다.
그분의 형형한 눈빛, 정신, 무소유.
내가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된
계기도 법정 스님의 영향이 크다.
법정 그님이 열반에 드실 때
나는 마음속으로 울었다.
세상의 큰 정신. 스승,
별하나가 지는구나!
법정 스님께서는 "죽음이 언제
어디서 나를 부를지라도 '네' 하고
선뜻 털고 일어설 준비만은
되어있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법정 스님의 그 말을
우리는 늘 상기해야 한다.
수행자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는
본래무일물 本來無一䥼 이다.
원래 하나의 물건도 없다는
뜻으로 아무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빈손으로 와서 그 손으로 이 세상
따뜻하게 어루만지다가
다시 빈손으로 가는 것이다
세상은 온갖 물질로 채워가는데
나는 나의 방 한쪽 구석까지도
작은 화분으로 채우려 하네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생각들이
범람하는데 나는 나의 머릿속
한쪽 구석에 사랑이란
이름을 찍어 넣으려 하네
가을 나무는 낙엽을
떨구어 땅을 덮어가는데
나는 나의 가슴 마당을
무상으로 채우려 하네
매 순간 사람들은
영원으로 떠나가는데
매 순간 사람들이 영원에서
지금으로 돌아오네
능행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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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되돌아보는 기회---능행스님
고구마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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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0.20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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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
_()_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
어머니 심부름 왔다가 어머니 걱정만 시켜드리고
가는인생
그래도 부처님과
좋은 인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