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는 타협과 상식의 ‘찐 노조’를 바란다
MZ세대가 생각하는 노동조합의 역할은 명확했다. MZ세대가 노조에 요구하는 것은 ‘합리와 타협, 상식과 실리’로 요약됐다. 동아일보와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20, 30대 남녀 6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는 이 같은 인식이 명확히 드러났다.
MZ세대는 오늘날의 노조를 더 이상 약자로 보지 않았다. 한 20대 청년은 은행 영업시간 연장을 반대하는 노조를 향해 “고객 불편은 뒤로하고 본인들 것만 챙기려는 억대 연봉 집단이 약자들인가요?”라고 되물었다.
MZ세대의 눈에 비친 노조는 ‘대립과 폭력, 정치화, 갈등’으로 대표되는 집단이었다. 취재하면서 만난 MZ세대들이 노조를 ‘어두운 집단’ ‘권위적’이라고 표현하는 것만 봐도, 오늘날의 노조는 뭔가 문제가 있음을 엿볼 수 있다. 한 30대 직장인은 “노조가 일단 무리한 요구로 질러 놓고, 안 들어 주면 대립하고 투쟁하는 게 국룰(특정 행위가 불문율임을 뜻하는 유행어) 아닌가요?”라고 말했다.
MZ세대는 노조 자체를 반대하지 않았다. MZ세대 10명 중 8명은 “노조는 근로자들의 근무 환경 개선과 복지 및 임금 향상에 힘써야 한다”고 답했다. MZ세대는 정치색으로 물든 노조가 아닌, 근로자와 친노동을 위한 ‘찐 노조’를 갈망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MZ세대들이 주축이 된 젊은 노조위원장들이 모였다. 이들은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출범을 결의하면서 기존 노조 형태와는 다른 노동 운동을 펼치겠노라 뜻을 모았다. “상식의 길을 걷겠다” “우리의 핵심 가치는 공정과 상생” “사회적 공감대를 조성하고, 투명한 노동시장을 조성하겠다”고 강조했다. 현재의 노조를 ‘리셋’해야만 한다는 이 시대정신은 어쩌면 구시대적인 노조에 대한 반작용으로 필연적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었던 흐름인지도 모른다.
이들의 목소리가 반향을 일으키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실질적인 교섭 주체로 자리 잡기까지 수많은 난관이 존재할 것이다. 전 세계가 산업 경쟁력을 안보의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있는 경제전쟁의 시대다. 노조와 노동 개혁을 위한 골든타임은 시작됐고 여건도 마련됐다.
대한민국을 이끌 미래 세대는 ‘개혁’을 열망하고 있다. ‘노조 개혁’을 바란다면 이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변종국·산업1부 기자
MZ노조 ‘탈정치’ 선언에… 민노총 “MZ는 정치투쟁 경험 부족”
양경수 위원장 “아쉽다” 반박
민노총의 상급노조 탈퇴 금지 규약
고용부, 시정 추진… 이탈 늘어날 듯
4일 서울 중구 서울스퀘어에서 각 기업의 신생 노조 위원장들이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결의식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유준환 LG전자 사람중심 노동조합 위원장(앞줄 오른쪽)과 송시영 서울교통공사 올바른노조 위원장(앞줄 왼쪽)이 각각 의장과 부의장으로 선출됐다.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이동훈 한국가스공사 더 코가스 노조 위원장, 백재하 LS일렉트릭 사무노조 위원장, 전승원 LG에너지솔루션 연구기술사무직노조 위원장, 김우용 부산관광공사 열린노조 위원장, 유 위원장, 박재민 코레일네트웍스 본사 일반직노조 위원장, 송 위원장.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제공
양경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위원장이 MZ세대 노조가 민노총 등을 비판하며 연대를 선언한 데 대해 “한국 사회에서 한미관계나 남북관계 등 정치적 사안에 개입하고 의견을 내지 않으면 노동자의 삶이 바뀌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양 위원장은 8일 서울 중구 민노총에서 가진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MZ세대가 주축이 돼 구성된 청년 노조에 대해 “환영한다”면서도 민노총과 달리 탈(脫)정치 노선을 표방한 데 대해서는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민노총과 함께하느냐 마느냐를 떠나서 민노총이 정치적 문제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며 “한반도에 평화적 분위기가 확장돼 군비를 감축하면 남는 재원을 복지, 노동자 예산으로 쓸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2002년 ‘효순이 미선이 사건’을 언급하며 “MZ세대로 일컬어지는 분들은 이 같은 대중적 반미투쟁 당시 아주 어렸거나 아예 경험해보지 못했을 것”이라며 “이제 노조를 막 시작하는 젊은 MZ분들은 이런 문제를 깊이 사고하거나 직접 경험해본 일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양 위원장은 최근 국정원과 경찰이 민노총 본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데 대해서는 “민노총을 마치 불온한 집단, 종북세력인 것처럼 만들고 있다”며 5월 20만 명 총궐기, 7월 대규모 총파업 등 반정부 투쟁을 예고했다. 정부의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 방안과 관련해선 구체적인 재정 자료는 제출하지 않기로 했다는 입장도 밝혔다.
한편 고용노동부는 8일 민노총 산하 전국금속노동조합과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의 규약 가운데 일부 내용이 위법성이 있다고 보고 노동위원회에 이에 대한 시정 요청서를 보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금속노조와 사무금융노조 규약 중 ‘단위 총회를 통한 집단탈퇴는 불가하다’는 조항과 공무원노조 선거관리 규정 중 ‘민노총 탈퇴 공약을 하는 경우 입후보자는 그 자격을 잃는다’는 조항이 이에 해당한다. 지난해 11월 포스코지회는 조합원 투표를 통해 민노총 금속노조 탈퇴를 가결했으나 금속노조가 탈퇴를 막고 되레 포스코지회 간부들을 제명했다. 이번 시정요청이 의결되면 젊은 노조원들을 주축으로 상급 단체를 탈퇴하자는 요구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미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