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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무(農舞)
작가 소개 신경림(申庚林 1935- ) 시인. 충북 중원 출생. 동국대 영문과를 졸업. 1955~1956년 <문학예술>에 추천을 받아 시 “낮달”, “갈대”, “석상” 등을 발표하여 문단에 나왔다. 건강이 나빠 고향으로 내려가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했고, 다시 서울로 올라와 출판사 등에서 편집일을 맡았다. 한때 절필하기도 하였으나 1965년부터 다시 시를 창작하였다. 이 때부터 초기 시에서 두드러진 관념적인 세계를 벗어나 막연하고 정체된 농촌이 아니라 핍박받는 농민들의 애환을 노래하였다. 그의 작품 세계는 주로 농촌 현실을 바탕으로 농민의 한과 울분을 노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시는 ‘민중의 사랑을 받을 수 있고 받아 마땅한 문학’이라는 평을 받았다. 그는 우리 민족의 정서가 짙게 깔려 있는 농촌 현실을 바탕으로 민중들과 공감대를 이루려는 시도를 꾸준히 하고 있다. 1973년 제1회 만해문학상, 1981년 제8회 한국문학작가상을 수상하였다. 시집에 <새재>(1979), <달넘세>(1985), <남한강>(1987), <우리들의 북>(1988), <길>(1990) 등이 있고, 평론에 <농촌현실과 농민문학>(1972), <삶의 진실과 시적 진실>(1982), <역사와 현실에 진지하게 대응하는 시>(1984), <민요기행>(1985), <우리 시의 이해>(1986) 등이 있다.
시 전문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 달린 가설 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 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래기들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 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 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라리를 불거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거나.
시어 풀이 쇠전 : 우시장. 소를 파는 곳 도수장 : 도살장. 짐승을 잡는 곳
핵심 정리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율격 : 내재율 성격 : 사실적. 묘사적 표현 : 역설적인 상황 설정. 이야기 형식의 원용(援用) 어조 : 산문적인 어조 구성 : 1-6행 농무가 끝난 뒤 소줏집에서 답답하고 고달픈 심정을 술로 달램 7-10행 장거리에 나서면 조무래기들만 따라붙고 처녀애들이 담벽에 붙어 킬킬댐 11-16행 농사를 여편네에게 맡겨 두고 나온 자신들의 울분을 춤으로 삭임 17-20행 농무를 추며 신명이 남 제재 : 농무(農舞) 주제 : 농민들의 한과 고뇌의 삶 출전 : <창작과 비평사>(1971)
이해와 감상 신경림의 시는 농촌의 이미지를 쉽게 우리에게 환히 보여 주고 있다. 시집 <농무>에 실린 40여 편은 모두 농촌의 상황시라 할 수 있다. 한국의 현대시가 반세기 후에 얼마나 남을 것인지 예언할 수 는 없으나, 오늘의 농촌을 반세기 후에 시에서 보려면 시집 <농무>에 그것이 있다 하겠다. 그의 이른바 농민시는 서사적 성격을 띠고 있으며, 쉬운 언어를 통해 민중의 삶을 노래한다. 산업화에 밀려 소외된 계층의 애절한 목소리로 노래하는 가운데, 울분과 분노를 표출한다. 이 시는 그런 것의 대표작이 되는 셈이다. 이 시는 산업화 이후의 이농(離農)으로 인한 농촌의 공동화(空洞化) 현상과 분배의 상대적 불평등을 주제로 삼았다. 시의 전편에 감도는 분위기는 절망적이다. 모두가 떠나고 난 허전한 자리, 그 공간에 남은 사람들의 소외감, 그 절망을 잊으려 하는 농무의 춤사위가 비극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시의 주된 제재는 농악 놀이이다. 학교 운동장에 설치한 가설 무대에서의 공연이 끝나고 소줏집에 몰려가 술을 마시는 행위는 서글픔을 잊고자 하는 절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장거리로 농악대의 행렬이 나서면 철없이 웃어 대는 처녀애들은 그들의 애환을 모른다. 답답하고 고달픈 삶에서 오는 원통함과 술과 춤으로 달래야만 하는 처절한 아픔을 이해하지 못한다. 사람의 절망감에서 울부짖는 그들의 아픔은 농촌의 궁핍 현상에서 온 것이다. 이미 농촌을 떠나 버린 사람처럼 그들도 모든 것을 훌쩍 털어 버리고 떠나고 싶어한다. 그러나 농촌은 그들의 터전이며 삶의 원천이자 전통적, 문화적 환경에서 정서가 길들어진 곳이다. 쉽사리 버릴 곳이 아니다. 바로 그 농촌이 봉쇄되어 가는 현실 앞에 그들이 받는 피해는 물질적 차원을 떠나 정신적 공허감으로 이어진다. 농촌의 문화적 전통과 농심(農心)의 상징이 바로 농무(農舞)이다. 그 농악이 사라져 가는 쓸쓸함을 딛고자 농악 가락에 농무를 후줄근하게 추어 보며 절망을 잊어 보려 한다. 그러나 그것은 근본적 치유가 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그러기에 더욱 농악에 신명을 내어 그 속에 몰입하는 사람들의 애환이 절실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참고> “농무”의 역설적 상황 1970년대 농민시의 대표적 작품으로, 피폐된 농촌의 현실과 농민의 울분을 사실적으로 보여 준다. 텅 빈 운동장, 철없는 쪼무래기들만 따라나서는 장거리에서의 농무, 채산성이 없는 농사 등은 농민의 소외감과 울분을 효과적으로 보여 주는 시적 상황 설정이다. 그런데 마지막에서 그 자조와 한탄이 ‘신명’으로 전환되고 있다. 그것은 표면적으로는 흥겨움의 표현이지만, 이면적으로 살의가 느껴질 정도의 분노의 감정이다. 뿌리 깊은 좌절감과 울분을 농무의 신명이라는 역설적 상황을 통해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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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수고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