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제스님의 가르침을 그가 죽고난후 제자인 삼성혜원이 편집한 임제록에 실린 글이다.
師示衆云 道流 (사시중운 도류) 임제스님께서 대중에게 설법을 하셨다 佛法無用功處 (불법무용공처) 남자 들이여(야 이놈들아) 불법을 애써 힘쓸 필요가 없다. 只是平常無事 (지시평상무사) 단지 평상심으로 무사이 지내면 되느니라. 屙屎送尿 (아시송뇨) 똥싸고 오줌누고 著衣喫飯 (착의끽반) 옷입고 밥먹으며 困來卽臥 (곤래즉와) 졸리면 잠자면 그만이다 愚人笑我 (우인소아) 어리석은 사람은 나를 비웃는다 智乃知焉 (지내지언)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안다 古人云 向外作工夫 (고인운 향외작공부) 옛성인이 말씀 하시길 밖을 향해 공부하지마라 總是癡頑漢 (총시치완한) 그것은 어리석은 자들의 짓일 뿐이다 爾且隨處作主 (이차수처작주) 그러니 그대들은 어느곳에 있던지 그곳의 주인이 되라 立處皆眞 (입처개진) 그대가 머무는 그곳은 모두 진리이니라 境來回換不得 (경래회환불득) 어떤 경계를 맞이해도 회피 하지마라 縱有從來習氣五無間業 (종유종내습기오무간업) 설령 묵은 습기와 무간 지옥에 들어갈 다섯가지 죄업( 五逆罪)이 있다해도 自爲解脫大海 (자위해탈대해) 저절로 해탈의 큰 바다로 변할것이요 今時學者 (금시학자) 요즘 공부하는 이들은 總不識法 (총불식법) 모두들 법을 모른다 猶如觸鼻羊 (유여촉비양) 마치 양이 코에 뭐든지 닿기만 하면 蓬著物安在口裏 (봉착물안재구리) 그냥 무조건 입에 끌어다 넣는거야 奴郞不辨 (노랑불사) 종과 주인을 가리지 못하고 賓主不分 (빈주불분) 손님인지 주인인지 구분 하지 못한다 如是之流 (여시지류) 이와 같은 무리들은 邪心入道 (사심입도) 삿된 마음으로 도에 들어왔다 鬧處卽入 (요처즉입) 그러므로 씨끄러운 곳에도 들어가니(그러므로 이해득실과 시시비비의 변잡스러운 일에 빠져버리니) 不得名爲眞出家人 (부득명위진출가인) 진정한 출가인이라 이름할수가 없다 正是眞俗家人 (정시진속가인) 그야말로 속된 사람이다.
無佛可求(무불가구) : 구할수 있는 부처는 없는 것이요. 無道可成(무도가성) : 성취할수 있는 도라는 것이 없는 것이요. 無法可得(무법가득) : 얻을수 있는 법이라는 것이 없는 것이다. 眞佛無形(진불무형) : 진짜 부처는 형이 없고. 眞道無體(진도무체) : 진짜 도는 체가 없고. 眞法無相(진법무상) : 진짜 법은 상이 없느니라. 이 삼법은 혼용하여 하나로 수렴되어 있거늘 이 사실을 분별하지 못한다면 영원히 미망의 바다를 헤매는 업식중생에 불과 하도다 隨處란 조건과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환경이고 삶터이다. 作主란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 주체적으로 살아가란 뜻이다.
홍주선의 전통을 계승하고 선양하였으며, 심성(心性)의 기점으로 장자가 제시한 “천지와 내가 상호 공생하고 그래서 만물과 나와 더불어 하나가 된다" (天地與我竝生 而萬物與我爲一천지여아병생 이만물여아위일)”고 한 사상의 원칙을 근거로 평상심시도를 제창하면서 가는 곳마다 다 진이다(立處皆廬)의 자오(自悟)를 주장해서 의식 주체의 자각을 강조했다. "불법에는 용공처가 없으며, 다만 평상시에 있는 일이다. 똥을 누고 오줌을 싸고, 옷을 입고 밥을 먹고, 졸음이 오면 곧 자는 것이다”고 하면서, “촉하는 것이 모두 불도이다”고 했으며, “오직 처처에 의심하지 않고(處處不疑),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廬)하면, 문득 깊지 않은 곳이 없고, 해탈 아닌 것이 없다”고 했는데, 이 의미는 있는 그대로가 바로 도의 자리로서, 곧 사람과 도(道)의 사이에 간격이 없고, 자연히 서로 합하고(自然相合), 본래 서로 계합한다(本來相契)라는 의미로서, 임제 의현은 게송에서 “마음은 만 가지 경계를 따라서 전하고, 전하는 곳마다 진실로 그윽해서, 류를 따라 성을 인식하면, 기쁨도 슬픔도 없다” 고 하는 것과 근본적으로 같은 맥락이다.(옮겨온 글)
*홍주선 (洪州禪) 마조(馬祖:709~788)는 한주(漢州) 사람으로 속성은 마(馬)씨. 들어난 형상이 중후하여 호랑이처럼 보고 소처럼 걸었다(虎視牛步)고 한다. 선종의 대선사로서 다른 사람과 다른 면모를 전하고자 이런 기록을 남겼을 것이다. 평생 그의 속성(속성)인 마씨(馬氏)로서 마조(馬祖)라고 불렀다. 이것은 마조로부터 시작되는 조사선(祖師禪)의 새로운 조(祖)로 추앙되는 사실의 반영이다. 마조는 자주(資州)의 처적(處寂:665~732)에게 삭발하고 유주(兪州) 원율사(圓律師)로부터 구족계를 받았다. 행각중에 형악(衡嶽)에서 회양(懷讓)선사가 육조혜능의 정법을 이은 대선지식임을 알고 그를 찾아 참문하여 한마디의 교시에 불법의 대의를 깨닫게 되었다. 마조는 천보원년(天寶元年:742)에 건양(建陽)의 불적령(佛跡嶺)에 도량을 개창하고 개당설법(開堂說法)했다. 마조의 나이 34세 때이다. 이듬해인 천보 2년에 임천(臨川)으로 옮겨 750년까지 그곳에 주석했다. 임천은 강서성 임천현으로 마조의 수제자 서당지장(西堂智藏:738~817)이 이때에 마조를 참문했다. 마조는 다시 남강(南康)의 공공산으로 옮겼다.대력연간(766~779)에 마조는 다시 강서의 홍주(洪州. 지금 남창) 개원사로 옮겨 주석하게 되었다. 이후부터 그는 홍주를 중심으로 하여 전법하게 되었다. 그가 널리 선양한 선법을 조계정통(曹溪正統)의 홍주종(洪州宗) 혹은 홍주선(洪州禪)이라 불렀고, 홍주선의 조를 마조(馬祖)라고 존칭하였다.
* 무간지옥 범어(梵語) 아비치(Avici)를 음역하여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한다. 팔열지옥(八熱地獄)의 하나로서, 무간이라고 한 것은 그곳에서 받는 고통이 간극(間隙)이 없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불교에서는 이 지옥이 가장 대표적인 지옥으로 알려져 있으며, 불교 경전 및 우리나라 고승들의 저술에서도 그 이름이 자주 나타나고 있다. 이 지옥은 남섬부주 아래 4만 유순(由旬)이 되는 지하에 있다. 여러 경전에 묘사된 이 지옥의 고통 받는 모습으로는 옥졸이 죄인을 잡아 가죽을 벗기고,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수레에 실은 뒤 타오르는 불길 속에 넣어 몸을 태우며, 야차들은 큰 쇠창을 불에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코·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지기도 한다. 또, 철로 만들어진 매가 죄인의 눈을 파먹는 등 극심한 형벌을 받게 된다.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이러한 고통을 받게 되는 까닭은 부모를 죽이는 죄, 덕이 높은 스승을 죽이는 죄 등의 오역죄(五逆罪) 중 어느 하나를 범하거나, 인과(因果)를 무시하고 절이나 탑을 무너뜨리며, 성중(聖衆)을 비방하거나 수행하지 않고 시주가 주는 음식만을 먹는 경우라고 한다. 이 지옥의 고통 받는 모습은 사찰 명부전(冥府殿) 안의 시왕탱화(十王幀畫) 속에 묘사되어 있는 경우가 많으며, 여러 문학 작품이나 민간 설화에도 이에 대한 표현이 나타나고 있다.
* 오역죄((五逆罪) 소승불교 1). 아버지를 죽이는 죄( 殺父) 2). 어머니를 죽이는 죄( 殺母) 3). 아라한을 죽이는 죄 (殺阿羅漢)(아라한 : 소승 불교에서 불제자 중에 번뇌를 끊어 더 닦을 것이 없으 므로 마땅히 공양을 받을 만한 덕을 갖춘 사람을 이르는 말) 4). 승단의 화합을 깨는 죄(破和僧) 5). 부처님 몸에 피를 흘리게 하는죄(佛身出血)
대승불교 1). 소승의 5역죄중 하나를 범하는 죄 2). 탑사를 파괴하는 죄 3). 삼보재물을 훔치는 죄 4). 부처님 가르침을 천하게 여기는 죄 5). 스님을 욕하고 부리는 죄
臨濟 : 법명은 의현(義玄) 시호(諡號, 공덕을 칭송하여 붙인 이름)는 혜조선사(慧照禪師). 선종의 한 갈래인 임제종의 창시자, 중국 당나라 때의 승려로 속세의 성은 형(邢)이다. 황벽선사(黃檗希運)의 법을 전해 받아 854년부터 임제원(臨濟院)의 주지를 지냈다. 그러므로 의현이 일으킨 종파를 임제종(臨濟宗)이라고 한다. 또 임제종의 창시자인 만큼 임제의현(臨濟義玄), 임제스님, 임제선사로도 불린다. 제자를 가르치는 데 몽둥이를 쓴 덕산(德山)과 쌍벽을 이루어, “덕산의 방망이, 임제의 고함(德山棒 臨濟喝)”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출처] 임제선사의 隨處作主 立處皆眞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