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날새에서 드리는 하늘빵🍓
🔔 심벌즈 연주자처럼 살고 싶다
제가 고등학교를 다닐적에 친했던 친구 중에 별명이 '냄비 뚜껑'이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냄비 뚜껑이라는 별명이 컵라면의 이름과 비슷하다고 하여, 그 친구가 컵라면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 별명이 붙여진 것은 아닙니다. 내가 고등학생이었던 때는 컵라면이라는 것이 세상에는 존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친구는 교내 악대부에서 심벌즈를 연주하는 악대부원이었기에 붙여진 별명입니다. 심벌즈라는 악기는 타악기의 일종이며 한 쌍의 놋쇠 원판을 서로 마주쳐서 연주하는 것으로, 그 생김새가 누런 냄비 뚜껑과 흡사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그 친구를 '냄비 뚜껑'이라 놀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야, 냄비 뚜껑이나 두드리려고 악대부에 들어 갔니?" "냄비 뚜껑 치는거야 누군들 못하겠어?" "야, 오늘은 냄비 뚜껑 몇 번이나 두들겼니?"하고 놀려 댔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생각하면 철없던 시절에, 저질렀던 고약한 추억중에 하나가 되어있습니다. 그때 그 친구를 놀린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습니다.
첫째는 단순히 냄비 뚜껑처럼 생긴 악기를 '꽈 앙'하고 마주 부딪치는 것 같은 심벌즈 연주가 다른 악기 연주에 비해 너무 단순하고, 너무 쉽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연주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우리는 그 친구를 얕잡아 본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다른 악대부원들은 연주 때, 처음부터 끝까지 연주하지만, 심벌즈를 맡은 친구는, 제일 뒤쪽에 자리를 잡고 있다가, 어쩌다가 한 두 번 ‘꽈 앙' '꽈 앙’치고는 멀건히 서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 친구는 실력이 없어서 누구나 할수 있는 저런 악기를 맡겼나 보다'라는 생각에서 그 친구를 우습게 생각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그 친구를 냄비 뚜껑이라 놀렸지만, 한편으로는 노랗게 빛나는 심벌즈를 힘차게 '꽈 앙'하고 마주 칠 때면 악대부가 한결 위용 있어 보였고, 연주가 신명나게 들렸던 것도 사실입니다.
훗날 심벌즈가, 연주에 있어서 얼마나 귀한 위치에 있는가 하는 것을 알고 부터는 '냄비 뚜껑'하고 친구를 놀렸던 것이 미안함과 함께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심벌즈 연주자 같은 삶을 살다가 주께서 오라 하시는 그 날에 기쁨으로 주 앞에 설 수 있기를 소망하면서 기도했습니다.
악대의 연주에 심벌즈가 뿜어 내는 금속성의 웅장한 울림이 없다면, 이는 마치 매운탕을 끊이면서, 생선, 콩나물, 파, 마늘, 참기름, 설탕 등 모든 양념은 넣었으나, 정작 고춧가루를 넣지 않는 매운탕과 같다 하겠습니다.
맵고 화끈한 맛에 매운탕을 사람들은 찾는데 고춧가루가 빠져 있다면 무슨 맛으로 매운탕을 먹겠습니까? 심벌즈는 매운탕의 고춧가루와 같은 구실을 톡톡히 감당하고 있습니다.
옛날 증기기관차가 철로를 누비던 시절, 산골이었던 시골 동네는 늘 조용하였습니다. 개울물 조차 소리없이 흐르고 그 옆에서 풀을 뜯는 소의 목에 매달린 요렁 소리가 고요함을 건드려 보지만, 시골 동네의 정적을 깨뜨리기엔 역부족입니다. 이런 고요한 산골 동네에 증기기관차가 지나가면서 "꽤에-액, 꽤에-액"하고 토해 내는 기적 소리에, 산들도 놀라고 시골 사람들도 화들짝 깨어나 활기를 얻었습니다. 졸던 농부는 기적 소리에 일어나 들로 나갑니다. 나무하던 나뭇꾼은 힘을 내어 도끼질을 하게 됩니다. 산골 학교 아이들도 공부시간에 꾸벅 꾸벅 졸다가도, 누가 흔들지 않아도 잠에서 깨어나 선생님 말씀에 귀를 세우게됩니다.
음악에는 문외한이지만 심벌즈는 시골의 나른한 정적을 깨우는 기적소리와 같이, 연주의 흐름에 힘을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심벌즈 연주 없는 악대나 오케스트라 연주는 생각만 해도 밍밍하고 싱겁습니다.
'세인트루이스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인 '레너드 슬래트긴'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습니다.
"브루크너의 제 팔번 교향곡에서는, 처음 두 악장이 진행되는 동안 심벌즈가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3악장의 클라이맥스(climax)y)에 이르러서야 심벌즈가 단 한번의 거대한 굉음을 울립니다. 그나마도 오직 한 번뿐, 그 후로 작품이 끝날 때까지 다시는 심벌즈의 연주를 들을 수 없습니다. 팔번 교향곡이 이어지는 1시간 30분 동안 심벌즈가 오케스트라에 합류하는 시간은 겨우 3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 공연에 있어서 심벌즈 주자의 임무는 상당히 막중(very precious)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심벌즈 주자에게 주어진 단 한 번의 연주, 그것도 단 3초짜리 연주지만 그 삼초를 잘해 주지 못하면, 그 날 그 연주는 초라해지고 맙니다. 그 3초의 순간을 심벌즈가 완벽하게 연주함으로써 그 작품의 3악장은 화려한 절정에 이르게 됩니다.
모든 연주자들이 연주를 성공적으로 연주 했을지라도, 심벌즈 주자가, 단 1초라도..., 아니, 단 0.3초 라도 일찍 연주하거나, 반대로 단 1초라도..., 아니, 단 0.3초 라도 늦게 연주하게된다면, 이는 마치 지금까지 국을 맛있게 잘 끊였는데, 불 조절을 못하여 순식간에 국이 푸르르 하고 끌어 올라와..., 주체할수 없이 넘치게되어, 지금까지 그렇게 잘 끊였던 국을, 순식간에 망치게 되듯이..., 연주에 있어서도 심벌즈 연주가 바로 그런것입니다. 이토록 심벌즈 연주는 중요합니다. 연주를 잘 마치느냐, 못마치느냐하는 것은, 심벌즈의 마지막 연주가 좌 우합니다. 그러므로 '제팔번 교향곡'과 같은 작품을 마치고 나면, 심벌즈 주자들은 하나같이 녹초가 되어 있습니다.
1시간 30분의 긴 연주임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 그것도 3초의 연주를 위하여 심벌즈 주자는 끈기있게 기다렸다가 1초라도 빠르거나 늦지 않게 지정된 순간에 혼신의 힘을 남김 없이 쏟아 부어 힘차게 연주하는 것으로 자기 역할을 다합니다.
따라서 지금도 저는 심벌즈 주자와 같은 삶을 살고 싶습니다.
세례 요한은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 1:29) 라는..., 이 한마디를 하기 위하여 태어났고 살았고 죽었습니다.
오만하고 불순종하면서 지지 부진하면서 길게 살다가 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단 한 번, 단 한 순간이라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후에 그 자리에서 잠들어, 주님품에 안길 수만 있다면, 그 길을 택하고 싶습니다.
스데반 집사님, 주기철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 세례 요한 같은 분들은 비록 젊은 날에 죽었으나 심벌즈처럼 주를 위해 모든 것을 한꺼번에 쏟아부어 헌신 하신 분들입니다. 그 누가 이분들을 보고 "짧게 살다가 갔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이런 시로 오늘 하늘빵을 모든 분들의 식탁에 올립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늦부지런 떨어 부끄럽습니다.
성령의 능으로
말씀의 능으로
결백청정 (潔白淸淨)
생을 태우게한 후
주님 품으로 부르옵소서
한 가지 더 구하옵기는
오동철갑 (烏銅鐵甲)처럼
더더귀 더더귀
때 묻혀 가면서
오래오래 살기보다는
짤라뱅이 같은 삶일지라도
심벌즈처럼 살다가
갈 수 있게 허락하소서. 아 멘
🖐.낱말풀이
🟢 결백청정: 깨끗하고 맑음.
🟢 오동철갑: 때가 묻어 온통 까맣게 됨.
🟢 짤라뱅이: 짤막하게 생긴 물건을 속되게 이르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