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레, 백합아 다시 만나자.
10월의 마지막 주말, 10년 전에 물막이 공사를 끝낸 새만금을 돌아보려 녹색당원들이 길을 나섰다. 10년의 세월이 지나 찾은 새만금 방조제 안쪽은 바깥 바다 쪽보다 수위가 낮아 보이면서 검은 빛을 띠고 있다. 방조제 안쪽으로도 배가 여러 척이 있고, 방조제 가운데 넓은 도로에는 자동차가 드문드문 지나고 있다.
10월 마지막 바다 바람이 차다. (재야사학자라고 불리는)권용호 당원은 준비해 온 자료집을 펼치고 추위에 모자를 쓰고 새만금이 걸어온 길을 설명을 해 준다. 1987년 노태우 민정당 대통령 후보가 선거 공약을 제시하면서 시작되어 2006년 4월에 물막이 공사를 완료하게 된다. 군산 비응도부터 부안군 변산에 이르기까지 33km에 이르는 방조제 공사로 여의도 면적의 140 간척지가 생기게 되었다.
19년에 걸쳐 3조원의 공사비가 투입되어 변산의 해창산을 통째로 깎아 방조제를 쌓았으며 그 후로도 공사는 계속되고 있다. 아직 간척된 토지는 매립이 되지 않은 상태로 용지 조성되지 않아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새만금 사업을 시작할 때에는 식량안보를 내세우면서 농지를 조성한다고 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때만 되면 정치인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새만금 개발 공약으로 열을 올리고 있다.
서해안의 중심지, 중국과 연계한 동북아 전진기지, 한국의 두바이, 새만금 고속도로, 수변관관도시, 신공항, GMO단지, 미군기지, 골프장, 다 열거할 수 없는 많은 공약들을 남발한다. 최근에는 카지노를 유치하겠다고 까지 한다. 아직 용지 조성사업도 되고 있지 못한데, 앞으로 이런 계획들은 계속해서 발표되리라 본다. 삼성의 에너지 사업, LG의 첨단 스마트팜 같은 사업은 발표했다가 사업성이나 반대 여론에 부딪혀 철회하기도 한다.
변산 쪽에서 방조제가 시작되는 곳에 ‘새만금 홍보관’이 있다. 홍보관에는 공사 과정과 앞으로 어떻게 개발해서 유용하게 이용하겠다는 청사진을 그려 놓았다. 공사 때 사용한 설계도도 전시되어 있고, 공사 때의 여러 사진과 방조제 단면도 등 많은 자료를 구비해 놓았다. 여러 영상을 보여주고, 앞으로의 새만금 조감도를 휘황찬란한 조명과 함께 보여주고 있다.
그때 마지막 물막이가 진행되기 전, 새만금을 지키려는 이들이 이 홍보관 아래 담벼락 아래 천막을 치고 여러 날을 지냈다. 밤에 방조제에 가서 페인트로 구호를 써 놓으면 낮에는 직원들이 지우고 하였단다. 그들은 어민들과 함께 먼 바다에 나가서 방조제 막는 공사를 방해하기도 하였고. 그들의 얼굴들이 하나하나 떠오르는데, 지금은 전국으로 흩어져 있다.
요즘 이 나라에 최순실 정유라 부녀로 대통령이 하야를 하게 될까 혁명이 일어날까 하는데, 이들이 승마에 목을 메인듯 승마에 올인했다고 한다. 그런데 새만금에서도 승마연습을 하고, 승마대회를 한다고 천막을 여러 개 쳐 놓고 있다. 더 넓은 곳에는 간간히 말을 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많은 돈을 들이고 수많은 사람들의 애를 태우고 만든 곳에서 말이나 타고 있단 말인가?
해창갯벌, 사연도 많고 친근한 곳이다.
들어서니 불교, 기독교, 천주교, 기독교, 원불교 종교인들이 기도하던 컨테이너가 그 자리를 그대로 지키며 맞아준다. 스님 신부 목사 교무님들이 저 곳에서 기도하고, 서울 시청까지 삼보일배를 했지. 세상은 무심하여 그렇게 고생을 해도 방조제는 막히고, 삼보일배를 한 두 분 성직자는 어디론가 떠나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도로 공사하느라 차량이 통행을 할 수 없게 막아 놓아, 몇 번을 돌다가 해창갯벌 장승에게 다가 갈 수 있었다.
10년이 훨씬 넘은 장승들은 그래도 그 자리를 지키며 찾아온 이들을 반갑게 맞아준다. 비록 세월이 흘러 낡고 허물어 나무가 썩어 가면서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그때 그 자리에 그대로 버티고 있다. 그때 이 나라의 시민사회 단체란 단체는 모두 이곳에 장승을 세웠다. 그리고 함께 싸웠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이 뜸해지면서, 주민들이 장승에게 맡겨놓고 찾아오지 않는다고 섭섭한 마음을 가지기도 했다.
지율 스님을 만나 장승 앞에 다시 섰다. 스님은 아픔을 간직한 평택 대추리, 새만금, 천성산 등이 10년의 세월이 지났다고 다시 찾아본다고 했다. 우리는 ‘그때 그 장승이 아직도 그대로 있구나.’ ‘세월의 흔적으로 상처나고 부서진 장승도 있구나.’ 라는 정도로 생각하고 지나쳤는네, 스님께서는 ‘여장군’이 사라지고, 새로 세운 장승이 서 있다고 한다. 자세히 보니 여장군은 보이지 않고 대장군만 남아 있다. 그리고 깨끗한 장승은 나무도 썩지 않았고, 오래지 않아 땅을 판 흔적이 있다. 현장을 지키는 스님의 보는 눈이 남다르다.
장승이 서있는 구석구석을 살피니 넘어져서 썩어 흔적만 남기고 있는 장승이 여럿 있다. 높이 들여져 있던 배도 떨어져서 썩어 가고. 지난날 수많은 이들이 새만금을 순례하고 이곳을 지나쳤다. 그러나 요즘은 찾아오는 이들이 없어 장승들만 외로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그래도 가끔씩 찾아오는 이들이 있어 노란 리본을 붙여 놓았다.
그곳에 만난 현지 시민감시단 활동가는 말한다. 잘못된 환경영향평가서로 공사를 시작했고, 자신들이 지금껏 새만금 모니터링을 하면서 멸종위기의 동물들을 모니터링하면서 싸우고 있다고. 그리고 새로운 장승을 다시 세웠다고. 세상에 하나쯤은 ‘송곳’이 있나 보다.
새만금이 막히고 난 그해 여름에 새만금을 잊지 않고, 생태환경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 1주일 동안 에코토피아를 열었다. 말 그대로 화석연료 없이 솥단지를 걸고 불을 때서 밥을 해 먹고, 생태화장실도 만들어서 사용하고,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 자전거를 돌려 발전해서 사용했다. 그 시간에 마침 군산에서 열리는 새만금이라는 이름을 걸고 하는 락페스티벌에 가서 반대행동도 하고. 나는 무 씨앗을 가져가서 땅을 파서 뿌렸는데, 며칠 지나니 파란 싹이 돋아나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 가서 그 흔적을 찾으려고 하니 전혀 찾을 수 없다.
이번에 만나게 된 스님은 10년 전 현장인 시화호, 평택 대추리, 새만금, 부안, 순천만, 을숙도, 천성산, 그리고 낙동강을 돌아본다고 했다. 스님이나 우리나 비록 많은 이들이 함께 하지는 못하였지만, 이번 걸음이 앞으로 개발로 아픔이 있는 현장을 돌아보면서 그 울림이 퍼저 나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다. 그러면서 겨울쯤에 순례를 조직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면서 10년 전 개발의 현장을 돌아보면 좋겠다고 하면서, 한번 해 보자고 한다.
새만금 싸움에서 주도적으로 활동 했던 지역이 ‘계화도’다. 그래서 전국의 많은 활동가들이 계화도를 찾았고, 그곳의 애틋한 기억들이 많다. 그곳을 찾아보지 않을 수 없다. 새만금 활동의 근거지로 활용하던 ‘그레’는 건물 그대로 남아 있다. 지금은 이용하는 사람이 없으니 문을 잠궈 놓았다. 창문 너머로 지난날의 그레 안의 모습이 약간 보이기도 한다. 그레는 이곳 사람들이 백합을 캐는 기구인데, 활동 공간이름을 그레라고 했다. 주민들은 그레를 가지고 바다에 나가면 맨몸으로도 괜찮을 수입을 올릴 수 있었는데, 지은 바다가 황폐화 되어 육지로 변했다.
계화도 앞 바다, 살금갯벌로 가 봤다. 갈대와 잡풀로 우거져 방치되어 있는 땅이 되었다. 막히기 전에는 뻘이어서 들어가기도 힘들었는데, 지금은 공사 때문인지 길이 나있어 자동차도 저 멀리 까지 들어갈 수 있고, 끝까지 가니 다른 길과 연결이 되어 있다. 곳곳에서 공사 중이고. 언젠가 비오는 날 이곳에서 백합을 한 가득 주워서 즐거워하기도 했고, 막히고 난 직후 고은식 씨가 트랙터로 기차를 만들어 갯벌 안까지 타고 들어가서 보기도 했는데, 지금은 아무도 없다.
새만금과 같은 시기 부안에서 핵(방사능)폐기장을 유치하겠다고 해서 한바탕 큰 싸움이 있었다. 분안 군민이 치열한 투쟁하면서 주민투표로 반대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그 후 핵 폐기장이 경주로 가게 되었다. 그 이전에는 굴업도에 건설하겠다고 해서 그곳에서도 쫓겨났다. 그러나 그때 5만 부안 군민이 둘로 나누어져 치유하기는 너무 힘들겠다고 했다. 부안에서는 핵폐기장 싸움을 하면서 에너지 자립의 중요성을 깨닫고 에너지를 자립해 보겠다고, 태양광 발전소도 만들고, 유채로 바이오 디젤도 활용하는 노력을 하였다. 그 대표적인 곳이 등용마을인데 마침 주일 미사가 있는 시간이라 마을을 자세히 둘러보지는 못하고 지나왔다.
새만금을 둘러보고 가까운 채석강도 가고, 아름다운 모항, 그리고 젓갈로 유명한 곰소항에서 맛난 것도 먹었다. 전남에는 관광객이 그렇게 많이 오지 않는데, 전북 지역만 해도 관광객이 많이 찾아온다. 채석강에는 주차하기도 힘들 정도로 자동차가 많고, 바람이 불어 쌀쌀한 바닷가에 사람들로 가득하다. 채석강에 가면 할머니들이 따온 굴에 소주를 한잔 하는 게 운치가 있고 제 맛인데 요즘은 그런 풍경이 없고, 번화한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이제껏 채석강의 바위는 어디서나 보기 힘든 구조를 하고 있어 신기하게만 바라로 보았다. 요즘 경주 지역에서 잦은 지진이 발생하고, 핵폐기장을 건설하고 있는 곳의 암반 구조가 단층이라고 하는데, 이곳 채석강의 단층하고 비슷하지 않은가 하면서 설명문을 읽어 본다. 시루떡 같이 있는 저 틈 사이로 물이 스며들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 해남의 공룡화석이 있는 바위도 저 비슷한 데가 있는데.
격포 앞 바다에는 어선들이 많은 어선들이 정박하고 있다. 여기 격포 앞 바다에 있는 ‘위도’가 핵폐기장을 만들겠다고 했던 섬이기도 하고, 이곳에서 배를 타고 들어갈 수 있다는데, 아직 가 보지 못했다. 그때 부안군수가 위도 출신인데 자신의 고향 위도에다가 핵폐기장을 짓겠다고 하다가 욕만 먹고 말았다.
이번 나들이를 보고 어떤 이는 좀 어두워 보인다고 했다. 우리가 나들이를 하면서 진지하기만 하고, 긴장하면서 다니지는 않았다. 다리 아프면 쉬기도 하고, 아침 늦게까지 따뜻한 방에서 늦잠을 자기도 했다. 나들이에는 보고 먹고 마시면서 즐거운 시간도 있는 법이다.
채석강은 지나면서 변산에 먹어보아야 할 바지락 죽을 먹고, 젓갈로 이름난 곰소에서 갖은 젓갈로 차린 밥상도 받았으며, 공소 어시장에서 바닷고기를 사다가 모항의 따뜻한 방에서 지역 소주인 ‘하이트’와 함께 밤늦게까지 담소를 나누면서 깊은 시간을 가진다.
예전부터 녹색당 당원들과 나들이를 다녔으면 했다. 개발로 파괴되는 땅을 지키면서 아픔이 있는 곳과 역사와 민중들의 삶을 지키고자 했던 현장, 그리고 우리의 산하를 파헤쳐 곳과 아름다운 우리의 땅을 돌아보고 싶었다. 그러면서 오늘 우리의 자리를 돌아볼 수 있으리라 볼 수 있겠고. 이번이 그 처음이고, 힘들게 누군가에게 가자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더욱이나 백남기 농민의 상 중이라 대놓고 가자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적은 수의 당원이 소박하게 다녀왔다. 이번에 새만금을 돌아보면서 이런 곳은 녹색당원들이 여럿이 한번 같이 찾아 개발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눈으로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새만금이 막히기 전달 3월에 새만금에 집중하는 집회가 있었다. 그때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드는 생각이 있었다. 이를 건설한 토건업자가 나중에 일거리가 떨어지면 자신 입에서 다시 ‘트자’라는 말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을까?
그레야, 백합아 또 다시 만나자.
이번 나들에서는 선운사 마애블, 앉으면 죽산 서면 백산이 된다는 백산, 전봉준 고택도 돌아 보았다. 틈나면 이곳 동학에 대한 이야기도 이러 나갈 수 있겠다.
그리고 다음에는 언제, 어디를 돌아보면 좋을까?
12월 말쯤, 2017년 초...
영덕, 울진, 삼척 - 탈핵.
동학 농민들의 발자취를 따라.
따뜻한 남도....
첫댓글 관심있고 함께 하고 싶은 분들은 아래의 페이스북 공개그룹으로 오시면 함께할 수 있습니다.
https://www.facebook.com/groups/greendd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