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지혜라 하나요?"
승산 박광전 종사님의 담박한 법문은
맑은 죽비소리처럼 우리를 일깨웁니다.
"아는 것과 깨닫는 것은 다릅니다.
'실행할 수 있개 아는 것'을 깨달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정직이 좋고 성실함이 좋다고 하더라도
지혜가 없는 정직은 소용이 없고
실전 없는 성실은 아무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이 직접 해보고, 일으켜 세워보고,
참아보고, 녹여봄으로써 수증한 지혜라야,
비로소 깨달음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대산 종사 말씀하십니다.
"법이란 일찍 깨고,
늦게 깨는 데 관계없이 전해지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도 쉬지 말고 계속 마탁 시켜서 깨야 한다.
내가 파서 먹는 샘물이라야 시원하지
남이 떠다 놓은 물은 시원한 맛이 없다.
그와 같이 깨야 샘물이 되고, 툭툭 터진 소리가 나오게 된다."
안세명 교무님의
만번의 감사
만번의 행복 글 중에서
첫댓글 며칠 전에 별안간 '부처가 뭘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답은 '글쎄요, 모리것는디요.' 이었습니다.
때마침 좌산상사님의 글을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불당에 황금빛으로 조성해 모신 등상불을 부처님으로 압니다.
좀더 공부가 깊어지면 법당의 부처님은 참 부처님이 아니요. 이천오백여년 전 중인도에서 태어나신 서가모니불, 이 어른이 부처님인 줄 압니다.
공부가 좀더 깊어가면 서가모니불만이 부처님이 아니라 진리를 깨달으신 모든 분이 다 부처님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공부가 좀더 깊어가면 바로 내 마음이 곧 부처임을 깨닫게 됩니다.
좀더 깊어지면 우주 만유가 다 부처 아님이 없다는 것을 확연히 깨닫게 됩니다.
우리에게 죄 주고 복 줄 실질적 권능이 어느 절대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천지에게도 있고, 부모에게도 있다는 것을 압니다.
동포에게도 있고 법률에게도 있다는 것을 압니다.
나아가 우주 만유 전체도 우리에게 죄 주고 복 줄 권능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죄 주고 복을 줄 수 있는 실질적 권능이 있기 때문에 부처님이요 부처님들이시기 때문에 법당에서 뿐만 아니라 그 일 그 일에 불공의 정성을 다하라는 말씀.
내가 직접 깨닫지 못했더라도 진실로 믿고 성심으로 본받으려 한다면 가르침과 어긋나는 일은 없으리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