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목
이육사
푸른 하늘에 닿을 듯이
세월에 불타고 우뚝 남아서
차라리 봄도 꽃피진 말아라
낡은 거미집 휘두르고
끝없는 꿈길에 혼자 설레이는
마음은 아예 뉘우침 아니라
검은 그림자 쓸쓸하면
마침내 호수 속 깊이 거꾸러져
차마 바람도 흔들진 못해라
(『인문평론』, 1940.7)
♣작품해설
이 시는 삶을 포기하면서까지 자신의 의지를 지키겠다는 굳은 결의를 간결하고도 강인한
어조로 표현한 작품이다. ‘우뚝 남아서서’·‘휘두르고’·‘깊이 거꾸러져’ 등의 남성적 강인함을
느끼게 하는 시어는 ‘차라리’·‘아예’·‘마침내’·‘차마’ 등의 부사와 어울려 화자의 단호한 자세
를 드러내고 있는 한편, ‘말아라’·‘아니라’·‘못해라’ 등의 부정어로써 그 강인한 의지를 배가시
키고 있다.
‘교목’은 줄기가 굳고 굵으며 높이 자라는 나무[큰 키 나무의 총칭, 관목(灌木)과 반대]로,
의지를 굽히지 않는 육사의 강인한 삶을 비유하고 있다. 따라서 육사가 추구하는 삶인 「교
목」은 유치환의 「바위」와 같은 맥락에 놓여질 수 있다. 다만 「바위」는 미래에 이룰 소망
이라면, 「교목」은 현재의 시점에서 자신의 태도를 표현하는 사물로 사용되고 있는 점이 다
를 뿐이다.
1연은 교목이 우뚝 서는 모습을 통하여 화자의 굳은 의지와 의연한 자세를 표출하고 있
다. ‘푸른 하늘에 닿을 듯’, ‘세월에 불타고 우뚝 남아’ 서 있는 ‘교목’이 화자의 강렬한 의
지를 형상화한 것이라면, 교목을 불태우는 ‘세월’은 바로 그가 살고 있는 식민지의 혹독한
현실 상황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검게 탄 몸으로 하늘에 닿을 듯이 우뚝 선 교목의 모
습에서 지절(志節) 높은 선비를 보는 듯하다. ‘푸른 하늘’은 좁은 의미로는 조국의 독립을
뜻하며, 넓은 의미로는 일체의 장애가 제거된 완전한 인간적 삶을 뜻한다. ‘차라리 봄도 꽃
피진 말아라’라는 단호한 금지(禁止)는 생명을 포기함으로써 봄이 와도 꽃을 피울 수 없을
지언정 그 의지만은 버릴 수 없다는 다짐의 말로, 상대적인 저항성을 포괄하는 절대적인
추월성을 담고 있다.
2연은 교목의 내면세계를 드러냄으로써 후회 없는 삶을 결의하고 있다. ‘낡은 거미집’
은 화자의 현실적 조건을 암시하고 있으며, ‘끝없는 꿈길’은 새로운 세계를 희구하는 마
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1연의 ‘푸른 하늘’과 연관되는 이미지이다. 이러한 현실적 고통속
에서도 새로운 세계를 희구하는 자신에게 뉘우침은 결코 없을 것임을 다짐하고 있다.
한편 ‘설레이는’과 ‘뉘우침’은 화자가 겪는 번민과 괴로움을 표상하고 있다고 볼 수 있
다. 강인한 의지 그 내면에 존재하는 갈등을 솔직히 보여 주고 있는 동시에, 담금질을 당
하는 쇠가 더욱 강해지는 것처럼 이러한 번민과 고통을 통하여 그의 의지가 더욱 강해지
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연에서는 다시 부동(不動)의 정신 자세를 드러내고 있다.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참담한 상황이 찾아온다면, ‘호수 속 깊이 거꾸러’지듯 자신의 삶을 결연히 버림으로써
의지만을 지키겠다는 단호한 결의를 펼쳐 보인다. ‘차마 바람도 흔들진 못하리라’는 확신
이 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올곧은 기개를 내버리지 않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서 ‘바람’
은 그의 의지를 꺾으려는 어떤 유혹이나 타협, 또는 외부의 힘을 상징하고 있다. 이러한
결의는 바로 일제에 대한 저항의 결의요, 육사를 지켜 주던 ‘선비의 도(道)’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선비의 도’는 후일 발표된 「광야」에서 ‘초인(超人)’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해 주는 것이다.
이 시는 혹독한 일제 치하에서 온갖 시련을 겪으면서도 그것에 굴복하기는커녕 오히려
‘세월에 불타고 우뚝 남아 서서’ 살아온 육사의 삶의 자세를 ‘교목’을 통해 형상화한 작품
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이 같은 그의 굳은 의지는, 많은 문인들이
부정한 현실과 타협하여 일신의 영화를 누리는 와중에서도,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온몸을 던지게 한 원동력이 된 것이다.
[작가소개]
이육사(李陸史)
본명 : 이원록(李元祿), 원삼(源三), 활(活)
1904년 : 경북 안동 출생
1915년 예안 보문의숙에서 수학
1925년 형 원기(源祺), 아우 원유(源裕)와 함께 대구에서 의열단에 가입
1926년 북경 행
1927년 조선은행 대구 지점 폭파사건에 연루, 대구 형무소에 3년간 투옥됨
이 때의 수인(囚人) 번호(264)를 자신의 아호로 삼음
1932년 북경의 조선군관학교 간부 훈련반에 입교
1933년 조선군관학교 졸업 후 귀국, 이 때부터 일경의 감시하에 체포와 구금생활 반복
1935년 『신조선』에 시 「황혼」을 발표하여 등단
1943년 피검되어 북경으로 압송
1944년 1월 16일 북경 감옥에서 사망
시집 : 『육사시집』(유고시집, 19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