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2. 30 특강 이단사설에 대한 반론
마24:5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갈1: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8.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 이단의 개념
➜ 신앙의 문제로는 회개가 없는 죄사함, 거듭남이 없는 구원, 십자가 없는 신앙, 행함이 없는 믿음 등이 언급된다.
사이비(似而非)의 번성은 말세의 징조이며 (마24:5, 마24:24) 교회 안과 밖에서 일어난다. (행20:29, 벧후2:1)
믿음과 행함은 언제나 일치해야 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지적 신념에 불과한 것이다. (약2:20, 약2:26)
사이비 이단의 특성은 다른 복음과 다른 교리를 따라가는 것이다. (갈1:6, 딤전4:1)
고후11:4,“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육신적인 사람들은 지금 이 세상에서 눈에 보이는 메시야를 좋아한다. (대부분의 이단들)
현재의 몸이 죽지 않는다는 불로초 신앙을 세상종교나 기독교 이단들이 선호한다. (도교, 영생교).
사이비와 이단들은 하나같이 세상 축복을 선호하고 강조한다. (세상 사람들)
복음주의자는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이단 사이비는 오직 사람을 기쁘게 하고자 한다.
오늘날 신자들은 이단 사이비 전성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신앙의 정도를 떠난 것에 ➊ 불신앙(不信仰) ➋ 미신(迷信) ➌ 광신(狂信) ➍ 이단(異端) 등이 있다.
불신앙은 현세에만 만족하는 인생관이다. 내세의 소망이 없는 생자필멸(生者必滅)의 길이다.
미신은 신앙의 대상이 잘못 선택된 것이다.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해 예비 된 불못에 참여한다.
광신은 신앙의 방법이 잘못된 것이다. 진리와 믿음과의 균형을 상실하고 비극적인 상태로 나아가게 된다.
이단은 정도(正道)의 허울을 쓴 채 미신 더하기광신의 형태를 갖는 것이다.
➜ 이단의 개념을 바로 이해하는 것은 바른 신앙을 유지하는 데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신약성서는 이설(異說)을 제창하는 별파(別派), 배척해야 할 유설(謬說), 유설을 고집하는 분파를 이단이라 했다.
삼위일체론, 구원론, 영생론, 천국론, 교회론, 종말론 등에 이단교리가 기생(寄生)하기 쉽다.
유스티누스는 이단을 “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자”, “신앙심이 없는 자”, “신성을 모독하는 자”로 정의했다.
물론 이단성이 전혀 없는 교단이나 교회는 찾기 힘들다. 모든 교회와 신자는 필히 자기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인터넷 정보화시대는 이단 사이비 초유의 전성기를 만들어 주고 있으며 이로 인해 개인과 가정과 사회가 오도된다.
특히 한국은 이단 백화점이라고들 한다. 성경중심에서 벗어나 인간의 욕심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이단에는 ➊ 교리상의 이단, ➋ 행위상의 이단, ➌ 진로상의 이단이 있다.
➜ 교리상의 이단은 하나님의 뜻과 다른 교리, 즉 교리적으로 틀린 것을 주장하는 이단이다.
베드로서는 교리상의 이단을 “멸망케 할 이단(destructive heresies)”이라고 표현한다.
➊ 성경에 없는 개념을 주장하는 것으로서 그리스도 밖에 있는 구원이나 한국인 메시아를 말하는 것도 한 예이다.
➋ 성경에 있는 개념을 무시하는 것으로서 고난과 자아의 죽음을 말하는 십자가의 도를 도외시 하는 것도 한 예이다.
➌ 성경에 있는 개념을 달리 말하는 것으로서 매사를 영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 초대교회시대의 주요 이단으로는 유대주의적 분파와 희랍사상적 분파가 있었다.
유대주의적 분파는 기독교를 유대교와 일치시키려 했다. 기독교 이념을 추상적인 유일신론으로 바꾸려 했다.
예수를 “단순한 인간”으로 주장함으로써 기독교의 독자적 특성을 말살하려 했다.
사도 바울을 사도로 인정치 않고 도리어 그를 율법의 배교자로 여겼으며 구원을 받아도 할례를 받아야 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예수의 신성이나 동정녀 탄생, 수난과 부활 및 승천 등을 부인했다.
희랍사상적 분파는 기독교 신앙을 관념적인 희랍철학으로 바꾸려 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영지주의(靈知主義 Gnosticism)로서 이교들이 갖고 있던 이원론적 종교사상이 들어온 것이다.
희랍사상과 동양신화에 연결된 것으로서 몸의 부활을 부정하고 영적 구원만 강조한다.
➜ 니케아 공회의 시대의 주요 이단으로는 아리우스주의와 아폴리나리우스주의, 그리고 네스토리우스주의를 들 수 있다.
아리우스는 영지주의자로서 “그리스도는 창조된 자이며 피조물 중에 최고이다.”라고 주장했다.
아주 위험한 사상이었으므로 그것으로 인해 삼위일체론을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폴리나리우스는 라오디게아 감독으로서 인성이 신성에 흡수 되었다고 주장했다.
네스토리우스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은 별개이다.”라고 하여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하나 됨을 부인했다.
➜ 행위상의 이단은 입으로는 그리스도를 시인하지만 행위로는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사람이다.
참된 회개가 없는 신앙으로서 죄를 등한히 여기는 결점이 있다. 교회출석만으로 만족해하는 성향을 갖는다.
깨달음을 통해 머리로만 신령해 지는 경향이 있다. 인격적인 성품의 변화가 없는 영지주의적 신앙이다.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몸으로 행한 대로 심판 받는다.”는 (고후5:10) 것을 망각한다. 관념적인 신앙일 뿐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만을 강조하여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는 (약2:17) 말씀을 무시한다.
➜ 진로상의 이단은 가는 길이 주님 가신 길과 다르다. 십자가 없는 복음을 전하고 주와 함께 죽는 길을 피해 간다.
기독교 신앙의 근본이 “자기를 부인하는 십자가의 도”임을 망각하고 세상적으로 편한 길을 선호하는 신앙이다.
저들은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는 말씀을 오용한다.
기독교가 세상적인 축복과 번영의 종교라고 착각하는 기복사상에서 오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 뜻대로 살면 삶에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신다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한다.
► 한국적 사이비의 특징
➜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부인한다. 자칭 메시아가 되려는 수작이다.
그리스도는 삼위일체의 한 위격이시며 하나님의 독생자이시고 유일무이하신 메시아이시다.
그리스도만이 인간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고 인간의 영생이 되신 하나님 자신이시다.
그리스도 밖에 구원자가 절대 있을 수 없고 그리스도 이전 이후에 어느 누구도 메시아가 될 수 없다.
고전1:13,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뇨?”
행5:37,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좇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좇던 사람이 다 흩어졌느니라.”
➜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교리를 변조시킨다. 자기를 재림 예수라고 주장하려는 수작이다.
오늘날 자기를 메시아로 가장하는 인간쓰레기들이 수없이 많다.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는 것이다.
성서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재림은 7년 대환란 마지막 때에 구름타고 감람산에 오신다. 전 세계가 재림을 볼 것이다.
행1:9,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슥14:4,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편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 감람산은 그 한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 산 절반은 북으로, 절반은 남으로 옮기고”
마24:26,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마24: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계1:7,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 영생의 진리보다는 병 고치는 은사나 방언을 더 선호한다. 육신적인 일을 좋아하고 허탄한 자랑을 좋아한다.
병고치는 은사를 태산만큼 받는다 해도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하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영생에 갈 수 없다.
고전14:19),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고전13:2,8,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
➜ 거짓되거나 변조된 복음을 전한다. 구원은 칭의-성화-영화의 삼상일체이다.
구원은 이루어진 구원과, 이루어지는 구원과, 이루어질 구원의 유기적 일체란 뜻이다.
교리적 지식으로 단번에 다 되는 구원을 전한다면 사람들의 인기를 끌 수는 있으나 몹시 위험한 신앙이다.
성화의 과정은 절대 단번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닮지 않고는 슬피 울 날이 있을 것이다.
➜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경고를 무시하고 세상과 영합하는 신앙의 길을 간다.
마7: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마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약4:4,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
마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요6: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 사이비 이단에 대한 변론
➜ 이단 사설(邪說) 001
“보혜사 진리의 성령이 임하여 주와 하나 된 약속의 목자인 ……”
보혜사(保惠師, Helper paravklhto" 파라클레토스)는 그리스도와 성령을 가리킨다.
예수 그리스도는 파라클레토스로서 아버지의 법정에서 죄 범한 신자를 대변하는 변호자이시다. (요일2:1)
성령은 파라클레토스로서 역사하신다. 성령은 세상과 관련하여 제자들의 조언자가 되신다.
그리스도는 신자들을 중보하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계시고 성령은 하나님의 뜻을 알리기 위하여 세상에 계신다.
성령은 성도와 함께 거하시는 (요14:16) 권위 있는 교사로서 (요14:26), 그리스도에 대한 증인으로서 (요15:26),
세상을 책망하는 자로서 (요16:8)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시며 (요16:13)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요16:14) 하신다.
성령의 임재와 주님과 하나 됨은 모든 신자에게 필수조건으로서 어느 특정인에게만 국한 된 것이 절대 아니다.
성령의 임재와 주님과 하나 됨이 없이는 헛된 기독교 신앙이며 어느 누구도 영생에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약속의 목자」운운하는 것은 가증스런 자기주장이다. 성령강림 약속에 은근히 편승하는 어법이기 때문이다.
➜ 이단 사설(邪說) 002
“하나님은 나의 친아버지” 이것은 2012년 12월 27일 동아일보에 실린 3면 (A18-A19-A20) 전면광고의 제목이다.
신문에는 광고주가 돌나라(十誡石國總會)로 되어 있다. 광고 본문으로 선택된 성서구절은 시2:7,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였다.
세 페이지나 되는 이 전면 광고 속에는 납득할 수 없는 주장과 표현들이 많이 있다.
그 많은 돈을 들여 거짓된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 “하나님께서 우리『친아버지』(요5:18)시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그 몸으로 우리를 실제로 나으셨다는 말입니다.” (A18)
요5:18, “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만 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부모가 낳은 자식은 부모와 같은 유형이다. 사람이 낳은 자식은 사람이고 하나님의 독생자는 바로 하나님이다.
독생자(獨生子)의 원어인 movnogenhv"(모노게네스)는 “유일하게 태어난”, “단 하나의”의 뜻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말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성부ㆍ성자ㆍ성령이시다. 저들이 주장하는 대로 하나님이 인간의 친아버지라면 인간도 하나님이란 위험천만한 뜻이 된다. 요5:18이 이를 뒷받침 한다.
➜ “… 아담의 아버지는 하나님이시니라. 이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의 친아버지가 되십니다.” (눅3:23-38) (A18)
세상에 죄를 가져온 아담이 하나님의 친아들이라면 하나님도 죄를 지을 수 있다는 말인가?
고전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를 낳아주신 친아버지가 아니시라면 우리가 어디서 생겨나왔던 말인가? 분명히 누군가 낳았으니 우리들이 퍼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우리 인류를 친히 낳아주신 친아버지이십니다.” (A18)
“영이신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육체가 없는 창조주의 태와 방법대로 당신의 자녀들을 낳아서 기르시는 것입니다.”(A18)
아담은 흙으로부터 창조된 피조물이다. 피조물을 유일하신 참 하나님의 친아들이라 말하는 것은 신성모독이 될 수 있다.
「창조주의 태」라는 말은 하나님을 동물에 비유하는 발언이기도 하다.
➜ “예수께서는 분명히『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를 원래 낳아 주신『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고 (마23:9) 일러주셨습니다.” (A18)‘
엡4:6,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여기서 만유는 만물을 의미한다. 여기서의 아버지는 존재의 근원을 말하는 것이지 “낳아주신” 아버지가 아니다.
땅에 있는 아비로써의 인간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로써의 하나님과 그 권위와 영광을 비교할 수 없다는 말이다.
마23: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이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또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마6:9)
라고. 또한 이제 이후로부터는『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고 (요5:18) 부르라고 말씀 하십니다.” (A18)
마6:9과 요5:18을 관련시키는 것은 맞지 않는다. 마6:9은 신자들에 대한 구절이고 요5:18은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이다.
➜ “하나님의 친아들 예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 올라』갔다고 말『하라』고 (요20:17) 하심으로 여전히 우리는 자기와 똑같은 하나님의 친아들딸들이요, 동일한 형제들로써 지구의 영원한 상속자들임을 분명하게 거듭 천명하시는 것입니다.” (A18)
주님께서 제자들을 이렇게 부른 것은 자신과 제자들 간의 구분과 일치를 동시에 가르쳐 준다.
예수와 하나님의 관계는 삼위일체의 맥락에서 영원하고 특별한 관계이다.
이 관계는 양자(養子)의 영을 통해 부자관계가 된 (롬8:15)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와는 구분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에게는 하나님이 생부(生父)요 본질적인 친아버지시나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은혜로 맺어진 양(養)아버지시다.
성자 하나님의 성육신은 본래 인류를 창조주 하나님과 생명 차원에서 연결시키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었다.
➜ “자기 몸속에 있는 영원불멸의 생명을 아담의『코에 불어넣으시니』(창2:7) 그 아들(아담)이 눈을 뜨고 방긋 웃으면서‘아빠’ 하고 일어났던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너를 내가 낳았도다』라고 (시2:7) 말씀하시며 힘차게 포옹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우주의 역사적인 대사건, 바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몸으로 자식을 친히 낳으신” (A18)
이 내용은 하나의 코메디이다. 시2:7이 우리에게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은 그 다음 구절들을 읽어보면 명확하다.
시2:9은 천년왕국의 왕으로 오시는 그리스도를 말하고 시2:12은 구원자 곧 메시아이신 그리스도를 말한다.
➜ “『생기를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즉‘육체를 가진 하나님이 탄생한지라.’는 말씀이 창세기 2장 7절의 말씀인 것입니다. 사람의 몸은 유일하게 하나님의 몸에 접촉되어 나온, 즉 하나님의 몸으로부터 파생되어 나온 고귀한 신체(神體)들인 것입니다.” (A19)
사람의 몸이 신체(神體)라면 죽지 않고 썩지 않아야 한다. 창2:7의 아담의 육체는 인간의 부활체가 절대 아니다.
인간을 하나님으로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되고 싶은 생각에서 나온 사탄의 사상이요 신성모독이다.
➜ “만약 하나님께서 직접 몸으로 우리를 낳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그분의 찬자식이 될 수 없고, 또 감히 그분을『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마6:9) 부를 수도 없는 것입니다. 또한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찾아오셔서『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거 너를 낳았도다.』라고 (시2:7) 말씀하실 수도 없는 것입니다.” (A19)
친자가 아닌 양자도 양부(養父)를 아버지라 부른다는 것이 성서의 증언이요 일반 사회의 통례이다.
롬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앞서 설명한 대로 시2:7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관련된 구절이다.
➜ “물론 시편 2편 7절은 사도행전 13장 33절의 말씀대로 예수님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 사실입니다. 그것을 石仙이 몰라서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시편 2편 7절을 예수님을 가리켜 말씀하심과 동시에 또한 우리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입니다. 만약 사도행전 13장 33절만 들어 말하면서 우리는 시편 2편 7절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성서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 없는 책이 되므로 우리 모두는 성서를 다 내다버려야 할 것입니다” (A20)
행13:33이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적용된다는 것은 행13:34~39이 확증한다.
잘못된 편견에서 계속 우를 범하고 있는 주장이다.
➜ “만약 시편 2편 7절이 예수께만 말씀하신 것이라고 누가 끝까지 주장한다면 그들이야말로 새빨간 거짓말쟁이들인
것입니다. 언제 하나님께서 예수를 낳으셨던가? 예수는 마리아가 낳았지 하나님께서 예수를 낳으시는 것을 저들이
보았던가?” (A20)
마리아가 예수를 낳은 것은 사실이나 마리아가 그리스도를 낳은 것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성육신하신 성자 하나님 자신이시다.
창세전부터 계시는 성자 하나님이 성령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마리아의 몸을 빌려 우주 안에 오신 것이다.
➜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 자기의 친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고 기뻐하는 자녀들에게만 주어지게 된다는
(요17:3) 사실을 잊지 마시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A20)
이것은 이단 사이비적인 주장이다. 하나님은 피조물인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될 경우에만 그를 받아들이시고
아버지가 되어 주시며 영원히 살리신다.
글쓴이:천안은하교회 정현대 목사님
본문에 나오는 돌나라(十誡石國總會) 참고자료입니다.
마지막때가 되니까 별의별 사이비 교주가 다 나타나네요.
한번 미혹이 되면 이렇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