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린교 아래 솔섬의 소나무 숲
바르고 평탄한 뜨락에 휘늘어진 그 소나무 嫋嫋其松殖殖庭
문경을 가로막아 푸른 병풍을 펼치었네 橫遮門逕布蒼屛
저녁 바람 솔솔 불어와 시원키도 하려니와 細吹晩籟泠然爽
다시 엄한 서리 깔보고 혼자서 푸르구나 更傲嚴霜獨也靑
ⓒ 한국고전번역원 | 임정기 (역) | 1998
―― 정조(正祖, 재위 1752 ~ 1800), 「소나무 병풍(松屛)」
▶ 산행일시 : 2019년 12월 21일(토), 흐림
▶ 산행인원 : 10명(모닥불, 중산, 악수, 대간거사, 소백, 일보 한계령, 상고대, 사계, 메아리,
승연)
▶ 산행거리 : 도상거리 10.6km(1부 5.0km, 2부 5.6km)
▶ 산행시간 : 7시간 46분
▶ 교 통 편 : 두메 님 25인승 버스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가급적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를 따랐음)
06 : 29 - 동서울터미널 출발
07 : 50 - 서울양양고속도로 홍천휴게소
08 : 34 - 현리 기린2교, 1부 산행시작
08 : 47 - 능선 진입
09 : 02 - 508.7m봉
09 : 15 - △557.5m봉
10 : 20 - 음골 아래, 임도
10 : 45 - 내린천
11 : 26 - 창암산 보덕사
11 : 34 - 솔섬, 서리제(西里堤), 1부 산행종료, 점심, 이동
12 : 32 - 서리(西里) 오동골, 2부 산행시작
13 : 07 - 안부, 임도
13 : 50 - △862.1m봉
14 : 57 - 매봉산(응봉산, 982.8m)
15 : 25 - 임도
16 : 20 - 서리(西里) 오동골, 산행종료
16 : 36 - 17 : 07 - 현리, 목욕
17 : 40 ~ 19 : 00 - 홍천, 저녁
20 : 23 - 동서울 강변역, 해산
1-1. 산행지도(1부 산행,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1/25,000)
1-2. 산행지도(2부 산행,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1/25,000)
2. 산행 고도표
▶ △557.5m봉, 창암사 보덕사, 솔섬
여느 때처럼 서울양양고속도로 홍천휴게소를 들른다. 휴게소 데크전망대에 나가 공작산과
그 연릉을 바라보며 오늘 일기를 짐작한다. 우중충한 날씨다. 홍천휴게소를 지나면서부터 버
스 안에서 산행을 준비한다. 점심도시락과 산행 후 갈아입을 여벌의 옷가지는 버스 안에 내
려둔다. 배낭이 홀쭉해진다. 인제IC로 빠져나와 내린천로를 따라 6km 남짓 가면 기린면이다.
기린면은 첩첩 두메산골이지만 고구려 때부터 대처였다. ‘기린(麒麟)’이란 지명은 이곳의 형
국을 기린에 비유한 데서 유래하였다(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 고려 때 현(縣)이 있었던 곳
이 지금 면소재지인 현리(縣里)이다. 현리에 들어 버스를 서행하며 시내 한복판에 있는 기린
면복지회관 목욕탕을 살핀다. 목욕탕 요금을 4,000원에서 3,000원으로 인하하였다는 안내
문이 얼른 눈에 띈다. 우리는 산행 후 여기에서 목욕할 것이다. 면소재지 중 목욕탕이 있는
데는 매우 드물뿐더러 있다고 해도 목욕탕 요금은 대개 6,000원이다.
기린교에 이어 기린2교를 지나고 산자락을 오르려는데 워낙 가파른 터라 낙석방지용 철조망
을 높이 둘렀다. 음지촌 마을까지 돌아 가본다. 이번에는 산자락에 산짐승들의 내습을 방비
하려는 것인지 펜스를 길게 둘렀다. 이때 중산 님의 밝은 눈이 한몫한다. 기린2교 지나자마
자 몇몇 등산객들이 차에서 내리더라나. 버스를 돌려 그리로 간다.
낙서방지용 철조망이 시작되는 가장자리에 인적이 보인다. 수직사면의 오르막이다. 외길이
다. 다른 수가 없다. 돌부리 나무뿌리 움켜쥐며 기어오른다. 낙엽이 쌓인 데는 쓸어내어 발
디딜 곳을 마련하고 오른다. 영하 7도 한랭이 무색하게 더운 입김 뿜어대며 오른다.
불과 13분이 무척 길다. 가파름이 한결 수그러든 능선 마루금에 올라선다.
오늘 산행의 콘셉트는 더덕주를 굶은 지가 하도 오래되었기에 ‘더덕주 좀 마셔보자는 것’이
다. 저간에 내린천 건너편의 방태산 변방에서 대물을 뽑아 올리는 향긋한 손맛을 보았기에
오늘은 그 맞은편 산릉을 훑는 것이다. 그런데 이미 글렀다. 인적이 뜸한 우리의 길이지만 울
창한 소나무 숲이거니와(소나무 숲이라고 꼭 불모지인 것은 아니지만) 좌우사면이 너무 비
탈져서 감히 들러볼 엄두를 내지 못한다.
날 무딘 릿지를 간다. 등로 주변의 아름드리 소나무 숲이 볼만하다. 508.7m봉 넘고 잔 봉우
리 세 차례 오르내리다가 작정하고 긴 한 피치 오르면 △557.5m봉이다. 삼각점은 ‘현리 303,
2005 재설’이다. 수렴을 발로 걷으면 유장한 내린천과 현리이며 산 첩첩 가칠봉 쪽 백두대간
의 전망이 트인다. 첫 휴식한다. 홍어회 넙죽이 오뎅탕에 마오타이주(茅台酒)로 한속을 다독
인다.
3. 서울양양고속도로 홍천휴게소에서 바라본 공작산
4. 서울양양고속도로 홍천휴게소에서 바라본 공작산
5. 멀리 왼쪽은 점봉산
6. 오른쪽 뒤는 방태산
7. 가칠봉 쪽 조망
8. 맹현봉 쪽 조망
9. 매봉(1,052m), 한석산은 이 매봉 뒤에 있다
날 무딘 릿지는 계속된다. 소나무 숲 울창한 562.9m봉도 첨봉이다. 뚝 떨어져 내렸다가 그
반동을 살려 냅다 540m봉을 올려친다. 더 가보았자 빈눈 빈손일 것은 분명하고 2부 산행에
서나 도모하고자 그만 하산한다. 남동쪽으로 방향 틀어 엷은 능선을 잡는다. 오늘 산행을 시
작할 때 올랐던 그런 가파름을 내린다. 골로 간다. 막판에는 절벽에 막혀 더 못가고 얕은 지
계곡 건너편 사면에 붙는다. 미끄러지듯 음골 아랫녘 골짜기에 내린다.
널찍한 공터와 정자가 있고 오가는 길이 임도로 잘 났다. 골 따라 굽이굽이 돌아내린다. 여울
옆 개활지는 갈대밭이다. 아마 신가이버 님이 왔더라면 갈대축제를 벌일만하므로 그 입장료
를 내라고 할 것이라 오늘 이곳을 오지 않았기 무척 다행이라며 이구동성으로 덕담한다. 대
천으로 흐르는 내린천에 다다르고 당연히 동네로 이어지리라 믿었던 다리가 보이지 않는다.
징검다리도 없다.
내린천이 꽁꽁 얼었다면 건너겠는데 가장자리만 엷게 얼었을 뿐 가운데는 큰물로 흐르고 그
폭 또한 넓다. 산기슭 천변을 간다. 산행시작 지점인 기린교까지 가야 한다. 장장 1km.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이다. 인적은 있는 듯 없는 듯 대단한 험로다. 덤불숲이나 잡목 숲 또는 너
덜을 지날 때는 사뭇 재미있었다. 그러나 깊은 계류로 직하하는 낙엽 쌓인 사면이나 그런 바
위 슬랩을 트래버스 할 때는 오금이 저렸다.
메아리 대장님은 척후하여 길 개척하고, 승연 님은 바위절벽 돌아가는데 도우미로 거들었다.
어렵사리 절집 요사채 마당에 이르고 대로를 간다. 절집은 안내판에 ‘창암산 보덕사’라고 한
다. 우리가 방금 오른 산을 창암산이라고 하는가 보다. 대웅전의 주련이 장식이다. 부처님의
거룩한 말씀을 중생들이 쉽사리 알아볼 수 없게 행서로 갈겨써놓았으니.
다리 건너 솔섬 서리제(西里堤) 너른 공터다. 햇볕 바른 양지에 점심자리 편다. 솔섬은 내린
천이 소양강으로 합류하기 전에 만든 삼각주이다. 솔섬 가운데를 기린교와 기린2교가 지난
다. 다리 위쪽(북쪽)을 유원지로 조성하였는데 낙락장송 소나무 숲이 꽤 볼만하다. 내가 대
표로 둘러보고 왔다. 그 사이에 일행들은 시바스리갈 한 병을 다 비워버렸다.
10. 주걱봉, 오른쪽 가리봉은 구름에 가렸다
11. 소나무 숲길
12. 자작나무숲
13. 내린천 가기 전 갈대밭
14. 내린천,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가 시작된다
15. 솔섬의 소나무 숲
▶ 매봉산(응봉산, 982.8m)
2부 산행은 매봉산이다. 당초에는 왜골과 다리골 사이의 무명봉을 오르려고 했으나 1부 산
행의 재판이 될 것을 염려하여 손맛 소득이 확실할 매봉산으로 바꾼다. 설령 빈손이더라도
이름 붙은 봉우리 하나를 얻는다. 산간 농로를 깊숙이 들어간다. 비포장도로가 나오고 버스
를 돌릴 수 있을 공터가 나올 때까지 들어간다. 오동나무가 있었다는 오동골에서 멈춘다.
몇 걸음 아끼려고 계류 가로막은 사방댐을 건넌다. 사방댐이 되게 깊다. 댐 중간에 사이가 약
간 벌어져 건너뛰어야 하는데 일보 한계령 님과 모닥불 님은 겁이 나서 건너지 못하고 뒤돌
아서 농로로 간다. 빈 밭 지나고 전깃줄 넘어 산기슭 울창한 낙엽송 숲으로 들어간다. 낙엽
수북한 사면을 연신 헛발질해가며 한 피치 오르고 임도와 만난다.
가파른 절개지를 암벽처럼 오르고 저마다 좌우사면을 누빈다. 710m봉을 넘은 야트막한 안
부에는 임도가 지난다. 잠시 휴식하며 인원 점검한다. 소득이 없지는 않았다. 메아리 대장님
이 3수, 대간거사 님이 3수. 이다음에는 △862.1m봉에서 만나기로 하고 또다시 흩어져 오른
다. 임도 절개지가 높아 경사 느슨한 사면으로 돌아 오른다. 혼자 가는 산행이다. 능선에는
칼바람이 일기 시작하여 생사면을 누비는 것이 일석이조다.
△862.1m봉. 서래야 박건석 님이 ‘왝골봉 862.1m’라는 표지를 걸어놓았다. 이 봉우리 남쪽
아래인 왝골에서 따온 것이다. 흙 쓸어 판독한 삼각점은 ‘어론 420, 2005 복구’이다. 배낭 벗
어놓고 오래 휴식한다. 메아리 대장님이 일습 준비해온 과메기를 안주하여 탁주잔 거푸 비운
다. 대간거사 님의 연호가 바람결 타고 들려온다. 어느새 △862.1m봉 오른쪽 사면을 돌아갔다.
특히 겨울산행에서 선두는 괴로운 법이다. 일행이 당도하기까지 그저 기다려야 하니 그렇다.
칼바람은 등 떠밀고 하늘은 금방 눈이라도 뿌릴 듯이 잔뜩 찌푸렸다. 어둡다. 먼 데 산이 흐
릿한 것은 눈발이 날려서다. 앞뒤 일행간 안전거리 유지하며 잡목 숲 길게 내려 안부 지나고
바람벽 사면에서 서성이는 대간거사 님과 반갑게 해후(?)한다.
매봉산에 이르도록 오른쪽 광활한 사면은 벌목하고 낙엽송 어린 묘목을 심었다. 그래서 흐리
지만 시야가 훤히 트인다. 879.7m봉 넘고 이 근방 맹주인 매봉산이 눈에 잡힌다. 숱이 적은
더벅머리다. 930m봉 넘고 왼쪽 사면을 수대로 누벼 적잖은 소득을 올린다. 야트막한 안부
지나 가파른 오르막 한 피치 오르면 매봉산 정상이다. 휴식한다. 배낭 털어 먹고 마신다.
매봉산 정상에서 서쪽으로 약간 비키서 사면을 살짝 내려서면 반공을 채운 방태산 연봉을 전
망할 수 있는데 오늘은 눈발이 캄캄하게 가렸다. 하산! 아까 올라왔던 오동골을 겨냥한다. 잘
난 길의 북서쪽 능선을 잡는다. 한 차례 뚝 떨어진 안부에서 오른쪽 벌목한 사면을 내린다.
완만하고 벌목꾼들이 오르내려서인지 인적이 뚜렷하다.
임도. 오른쪽 산모퉁이 돌아 두툼한 지능선을 붙들고 일로 북진한다. 울창한 아름드리 소나
무 숲을 이슥하니 지난다. 이윽고 다다른 골짜기는 먹구너미고개에서 내려오는 농로다. 먹구
너미고개는 고개가 길어서 지루하므로 무엇이던지 먹고서야 넘을 수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
름이라고 한다. 양지바른 산자락에는 드문드문 이국풍의 양옥이 그림 같다.
얼마 안 가면 아까 우리가 매봉산을 오르려고 버스를 세운 오동골이다. 뒤돌아 지나온 산릉
을 바라보면 벌목한 능선에 남겨진 몇 그루 소나무 모수가 간송 조임도(澗松 趙任道, 1585
∼1664)가 읊은 「겨울 산에 빼어난 외로운 소나무(冬嶺秀孤松)」를 생각나게 한다.
내가 사랑하는 것은 겨울 산마루에 우뚝이 홀로 서서 吾愛截然特立冬嶺上
당당하고 굳세게 홀로 빼어난 모습의 외로운 소나무 亭亭落落獨秀之孤松
늙은 줄기 높이 솟아 굽은 쇠처럼 엉켜 있고 老幹偃蹇交錯如屈鐵
깊은 뿌리 구부러져 누운 용처럼 웅크리고 있네 深根屈曲盤踞如臥龍
우뚝하게 하늘로 솟아 검푸른 빛은 사철 변함없고 兀有參天黛色貫四時
아래로는 깎아지른 절벽 위로는 위태로운 봉우리네 下臨絶壑上危峯
추운 겨울 세모에 눈보라 거세지만 天寒歲暮風雪急
북풍 세차게 몰아쳐도 매서운 겨울을 견디네 朔氣冽冽當嚴冬
16. 매봉산 들머리
17. 매봉산
18. 벌목한 사면에 남겨진 소나무 모수
19. 뒤가 매봉산이다
20. 오동골 건너편 산릉
21. 오동골 건너편 산릉
22. 매봉산(응봉산) 정상에서
23. 매봉산 하산 길
24. 매봉산 벌목한 사면에 남겨진 소나무 모수
첫댓글 멋드러진 시와 잔잔한 산행기 잘 읽었습니다.
요번에 새로 개발한 강기슭치기는 신종스포츠로서 아주 장래성있다고 생각해유. 나름대로 짭잘하고 긴장감도 있었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