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인생
세월의 흐름에 따라 늙음도 자연스럽게 찾아온다. 늙음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지만, 그 속도를 늦출 수는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늙음을 천천히 맞이할 수 있을까.
안셀름 그륀은 『황혼의 미학』에서 세월에 안주하며 무덤덤하게 살아가지 말고, 황혼의 삶 또한 배우고 익혀 즐기며 살아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살아갈 때 늙음의 속도 또한 늦출 수 있다는 것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같은 속도로 흐르지만, 그 시간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에 따라 느껴지는 시간의 깊이와 속도는 달라진다.
우주여행을 빛의 속도에 가깝게 다녀오면 지구의 사람보다 덜 늙는다는 상대성이론처럼, 같은 거리라도 속도에 따라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 우리의 삶 또한 그러하지 않을까. 어떤 마음으로 삶의 여정을 살아가느냐에 따라 시간의 무게와 늙음의 깊이 또한 달라질 것이다.
이곳 라우어의 삶에서도 그런 모습을 느낄 수 있다. 같은 연배임에도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젊고 밝아 보이는 분들이 많다. 이는 단순히 세월을 견디며 살아온 결과가 아니라, 시간을 즐겁고 의미 있게 살아낸 결과일 것이다. 취미생활에 몰두하고, 배우고 싶은 것을 익히며, 자신만의 기쁨을 만들어가는 삶이야말로 젊음을 오래 머물게 하는 힘인지도 모른다.
이곳에는 사십여 개의 아카데미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주민들은 각자 배우고 싶은 것을 신청해 배우며 시간을 보낸다. 시간을 무료하게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붙잡고 즐기며 살아간다. 그래서 시간의 흐름에 끌려가는 삶이 아니라, 시간을 이끄는 삶을 살아가는 듯하다. 그것이야말로 ‘황혼의 미학’이며, 시간의 추종자가 아니라 삶의 주체자로 살아가는 모습일 것이다.
나 또한 삶을 돌아보면, 시간은 일정하게 흘렀지만, 그 시간의 순간에 몸과 마음이 지나온 거리는 그리 멀지 않은 듯하다. 어쩌면 기쁨과 행복이 늙음의 속도를 늦추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증거는 자연스레 표정과 삶의 태도 속에 드러난다.
그 대표적인 모습이 아침마다 함께하는 국민체조이다. 매일 아침이면 백여 명이 넘는 입주민들이 모여 일제히 국민체조를 한다. 그 시간만큼은 마치 청명원의 팽나무 아래 시간이 잠시 머물러 있는 듯하다. 실제로 시간은 흐르고 있지만, 몸과 마음은 한순간에 머물러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러한 소소한 기쁨의 조각들이 모여 삶을 즐겁고 행복하게 만들고, 늙음 또한 천천히 오게 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의 삶은 결국 상대적이다. 어떤 마음으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느냐에 따라 삶의 길이와 깊이는 달라진다. 그러니 황혼의 삶 또한 배우고 익히며 건강하고 보람 있게 살아간다면, 인생의 황혼 역시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여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