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새 슬피 우는 노을진 바닷가에
외로움 달래가며 쓸쓸하게 혼자 거닐면
지난 옛 추억이 또 다시 내 맘 속에 사무쳐
그리움이 파도처럼 밀려오네
잃어버린 그 사람을 목이 메어 불러봐도
지금은 모두 흘러간 아름다운 추억인데
파도 밀려오는 노을진 바닷가에
외로움 달래가며 추억 속에 혼자 걸었네
잃어버린 그 사람을 목이 메어 불러봐도
지금은 모두 흘러간 아름다운 추억인데
파도 밀려오는 노을진 바닷가에
외로움 달래가며 추억 속에 혼자 걸었네
『추억 속에 혼자 걸었네』
(박춘석 작사/작곡)는 1978년
「패티김」이 발표한 발라드 명곡입니다.
6·25전쟁의 상처를 딛고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꿈틀거리기 시작했던
1959년 한국의 대중 음악사는
그 이후로 30년 이상을 통치하게 될
두 사람의 위대한 Diva를 데뷔시킵니다.
한 사람은 엘레지의 여왕으로
제2의 트로트 전성시대를 열게 되는
'이미자'.
그리고 또 한 사람은
미 8군 무대에서 발아(發芽)한
새로운 음악 양식인
스탠더드 팝의 여왕인 「패티김」
(본명 김혜자) 입니다.
우아하고 감상적인 왈츠 풍의 발라드로
1950년대의 미국 백인 사회를 장악했던
금발의 스탠더드 팝 뮤지션
'Patti Page'의
이름을 딴 「패티김」의 신화는
1960년대와 함께
시작된 TV의 시대에 이르러
아름답게 개화(開花)합니다.
한국의 TV 브라운관은
매혹적인 풍모와 카리스마 넘치는
보컬을 두루 갖춘
그녀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오리지널 히트곡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1966년 동양 방송은
"패티김 쇼"라는
고정 프로그램을 헌사했고,
이 방송의 정규 멤버 중의 한 사람인
색소폰 주자이자 작곡가 '길옥윤'은
「패티김」에게 어쩌면
첫 오리지널 히트곡인
‘사월이 가면’ 을 헌정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해 말 결혼식을 올렸고
"패티김-길옥윤"의
전성시대(全盛時代)가
개막(開幕)됐습니다.
압도적인 성량(聲量)과
극적인 표현력을 지닌 그의 목소리는
일제(日帝) 강점기와 전쟁을 딛고
근대화를 향해 질주하던
1960~1970년대 한국 사회의
다이내믹한 에너지를
상징하는 것이었죠.
그녀는 언제나 당당한 여왕이었고
당시 여성 엔터테이너로서는
치명적일 수도 있었던
이혼(1973)의 위기도
노래로 승화(昇華) 시킬 수 있는
자신감이 충만했습니다.
이혼을 암시하는
그의 최대 히트곡 ‘이별’(1972)과
이혼을 발표한 날 밤 '길옥윤' 이 만들어
이듬해 동경음악제에서 동상을 차지한
대곡(大曲)
‘사랑은 영원히’가 발표됐습니다.
두 명곡(名曲)으로
이 부부의 이혼은
그들의 결혼을 넘어서는
세기의 이혼이 됩니다.
'길옥윤'과의 마지막 인연인
‘사랑은 영원히’에서 「패티김」이 보여준
오페라틱한 절창(絶唱)은
'박춘석'과 콤비를 이룬
『추억 속에 혼자 걸었네』를 지나
1983년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