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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한 신앙, 기도를 넘어 발원으로
어린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듯, 어른은 부처를 향해 성장해야 합니다.
어릴 때 우리는 어른이 되면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위인전을 읽으며 큰 꿈을 꾸기도 했고, 정의로운 영웅의 이야기에 가슴이 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 나서는 어떻습니까?
직장을 얻고, 가정을 꾸리고, 먹고사는 일에 바쁘게 지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무엇이 되겠다는 꿈을 꾸지 않게 됩니다.
지금보다 조금 더 잘살고, 건강하고, 편안하게 지내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되어버립니다.
그런데 이번 법문에서 큰스님께서는 뜻밖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릴 때 커서 어른이 되듯이, 어른이 커서 부처가 되는 거야.”
우리는 어른이 되면 다 성장했다고 생각하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보면 인간은 아직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하듯, 인간도 부처를 향해 한 단계 더 성장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절에 다니고 있을까요?
건강을 지켜달라고, 자식이 잘되게 해달라고, 지금보다 조금 더 편안하게 살게 해달라고 부처님께 기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큰스님께서는 여기서 신앙의 방향을 구별하셨습니다.
기도는 부처님의 힘을 내 삶으로 끌어오려는 것이고, 발원은 내가 부처님의 세계를 향해 나아가겠다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똑같이 부처님께 예배하고 염불하더라도, 무엇을 바라고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느냐에 따라 신앙의 의미가 달라집니다.
이번 법문은 바로 그 차이에서 시작합니다.
1. 어른이 되었다고 성장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큰스님께서는 어린 시절 위인전을 읽던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그때는 누구나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높은 이상을 품고, 더 넓은 세상을 꿈꾸며, 지금보다 나은 사람이 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달라집니다.
직장을 얻고,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고, 사회에서 자기 자리를 잡으면 어느 순간부터 그곳에 머물러 버립니다.
더 높은 곳을 바라보기보다 지금 가진 것을 지키고, 부족한 것을 채우는 데 평생을 보냅니다.
큰스님께서는 바로 이 지점에서 인간의 성장이 멈추어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어린아이가 어른이 되는 것은 성장의 한 단계일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되었다고 해서 존재의 성장이 모두 끝난 것은 아닙니다.
큰스님께서는 인간을 아직 완성되지 않은 존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부족한 것을 채웁니다.
돈이 부족하면 돈을 벌고, 건강이 나빠지면 치료를 받고, 생활이 어려워지면 그 어려움을 해결하려고 애씁니다.
그렇게 하나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나타납니다.
평생 무엇인가를 보태고 고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재산을 모으고, 좋은 음식을 먹고, 높은 지위에 올라도 피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그 한계 안에서 조금 더 잘사는 것이 우리 삶의 마지막 목표가 되어도 괜찮을까요?
큰스님께서는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를 여기서 찾으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인간의 삶을 조금 더 편안하게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이 그 한계를 넘어 부처가 되는 길을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위인전과 부처님의 경전을 연결하셨습니다.
아이들이 위인전을 읽으며 훌륭한 어른이 되기를 꿈꾸듯, 어른이 된 우리는 경전을 읽으며 부처를 향한 더 높은 이상을 품어야 합니다.
경전은 단순히 불교 지식을 쌓기 위한 책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보여주신 세계를 알고, 그 길을 따라 자신을 성장시키기 위한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길을 알면서도 자꾸 지금의 삶에 머물려고 합니다.
바로 여기서 신앙의 방향이 갈라집니다.
2. 기도와 발원은 방향이 다릅니다
큰스님께서는 인간이 어른이 된 뒤 추구하는 삶에는 두 가지 방향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는 지금의 나를 중심으로 삶을 더 풍요롭고 편안하게 만들려는 길입니다.
다른 하나는 내가 존경하고 공경하는 분을 중심으로, 그분이 보여주신 높은 경지를 향해 나아가는 길입니다.
큰스님께서는 이 차이를 기도와 발원으로 설명하셨습니다.
기도는 외부의 힘을 내 쪽으로 끌어오는 것입니다
건강하게 해주십시오.
자식들이 잘되게 해주십시오.
사업이 번창하고, 어려운 일이 잘 풀리게 해주십시오.
이러한 기도에서는 지금의 내가 중심에 있습니다.
신이나 초자연적인 힘, 또는 부처님의 힘을 빌려 현재의 삶을 더 좋은 상태로 만들고자 합니다.
큰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기도는 자기중심으로 신의 힘을 끄집어내거든요. 외부의 희망을 자기 쪽으로 끄집어내리기 위해서 기도를 합니다.”
기도의 방향은 밖에서 나에게로 향합니다.
원하는 것을 얻으면 기뻐하고, 얻지 못하면 실망합니다.
그러나 원하는 것을 얻었다고 해서 인간의 근본적인 한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고 많은 재산을 모아도 결국 늙고 병들고 죽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지금의 삶을 아무리 윤택하게 만들어도 그것만으로 인간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셨습니다.
발원은 내가 부처님의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발원은 방향이 반대입니다.
부처님의 힘을 내 삶으로 끌어와 지금의 나를 더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부처님께서 보여주신 세계를 향해 나아가겠다는 것입니다.
큰스님께서는 발원을 아주 간명하게 설명하셨습니다.
“우리 자체가 그쪽으로 가겠다는 겁니다.”
이 말씀에는 신앙의 방향을 바꾸는 중요한 뜻이 담겨 있습니다.
기도가 지금의 나를 중심에 놓고 외부의 도움을 구하는 것이라면, 발원은 지금의 나를 넘어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가겠다는 결심입니다.
부처님께 무엇을 얻을 것인가보다, 부처님께서 보여주신 길을 어떻게 따라갈 것인가가 중요해지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똑같이 부처님께 예배하고 염불하더라도 그 마음이 향하는 곳은 다를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은 지금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부처님의 힘을 구합니다.
다른 사람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자신도 부처가 되겠다는 마음을 세웁니다.
큰스님께서는 불교 신앙이 첫 번째 방향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기도한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절에 다닐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신앙의 목적이 현세의 소원 성취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부처님의 힘을 내게 가져오려는 것이라면, 발원은 내가 부처님의 세계를 향해 나아가겠다는 것입니다.
이 차이를 이해하면 신앙생활에서 무엇을 얻었는가보다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가 중요해집니다.
3. 부처님께서는 왜 이 세상에 오셨는가?
큰스님께서는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의미를 거듭 강조하셨습니다.
우리는 태어나서 자라고, 배우고, 일하고, 가정을 이루며 살아갑니다.
그 과정에서 더 많은 재산을 모으고, 더 높은 지위에 오르고, 더 편안한 생활을 누리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것을 이루어도 결국 늙고 병들고 죽는 인간의 한계에서 벗어나지는 못합니다.
큰스님께서는 이런 삶을 두고 물으셨습니다.
“이거 말고 더 없어?”
먹고살기 위해 애쓰고, 사람들과 부딪히며 기뻐하고 괴로워하다가, 마침내 모든 것을 놓고 떠나는 삶.
그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전부일까요?
큰스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물음을 품은 사람에게 불교의 가르침이 주어졌다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인간의 삶을 조금 더 편안하게 만드는 방법만 가르쳐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 삶을 넘어서는 길이 있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인간은 아직 완성된 존재가 아니며, 부처라는 완성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경전은 어른에게 새로운 성장의 길을 보여줍니다
큰스님께서는 어린 시절 위인전이 했던 역할을 어른에게는 부처님의 경전이 한다고 설명하셨습니다.
“어릴 때는 위인전을 보고, 어른은 부처님의 경전을 봐가지고 한 단계를 성숙해야 되는데 우리 여기서 다 그쳐버려요.”
위인전이 아이에게 훌륭한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경전은 인간에게 부처의 경지를 보여줍니다.
우리가 지금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 앞으로 어디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경전을 공부한다는 것은 단순히 불교에 관한 지식을 쌓는 일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보여주신 길을 이해하고, 그 길을 자신의 삶에서 실천하기 위한 것입니다.
큰스님께서 스님들이 경전을 통해 신도들에게 올바른 방향을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하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신앙을 현세의 소원 성취에만 머물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을 향한 존경과 감사는 어디에서 오는가?
큰스님께서는 부처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자신의 삶이 어떠했을지를 생각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지 못했다면, 세상의 재물과 힘을 붙잡고 살아가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그보다 더 높은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세계로 나아가는 길까지 열어주셨습니다.
큰스님께서는 그 사실을 생각하면 부처님께 존경과 감사와 공경의 마음이 일어나지 않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우리는 부처님께 무엇을 얻었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삶의 방향을 보여주셨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 감사는 자연스럽게 존경과 공경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존경과 공경은 다시 발원의 마음으로 이어집니다.
부처님께서 보여주신 세계가 참으로 훌륭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이제 나도 그 길을 향해 나아가겠다는 것입니다.
발원은 단순히 어떤 소원을 비는 행위가 아닙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그 가르침에 감사하며, 자신도 그 길을 따라가겠다고 마음을 세우는 일입니다.
4. 극락왕생을 발원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인간의 삶을 넘어서는 길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길을 실제로 갈 수 있을까요?
큰스님께서는 이 질문에 대해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부처는 우리 같은 중생의 근기를 너무나 잘 알고 설하셨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전제에서 시작해요.”
부처님께서는 중생이 얼마나 나약하고, 의심이 많고, 눈앞의 즐거움에 쉽게 마음을 빼앗기는 존재인지 이미 알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이 옳은지 알아도 그대로 실천하기 어렵습니다.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놀고 싶고,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장의 편안함을 찾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이러한 모습을 공부하기 싫어하고 놀기 좋아하는 학생에 비유하셨습니다.
같은 학교에 다니더라도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며 공부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눈앞의 즐거움에만 빠져 지내는 학생도 있습니다.
어른이 된 뒤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는 지금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누군가는 그보다 더 높은 삶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자신을 성장시키려 합니다.
큰스님께서는 불교의 가르침이 바로 그보다 더 높은 삶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주어졌다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열어주신 길을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
큰스님께서는 장사하는 사람을 예로 드셨습니다.
장사를 시작하면서 이익을 내겠다는 마음조차 굳게 세우지 못한다면 제대로 장사를 하기 어렵습니다.
수행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처님께서 길을 열어주셨는데도 자신의 근기가 부족하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다면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습니다.
중생의 근기가 약하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바로 그러한 중생의 근기를 아시고 가르침을 설하셨습니다.
중생의 근기를 아시고 길을 열어주신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그 길을 향해 마음을 굳게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극락왕생은 지금보다 더 잘살기 위한 소원이 아닙니다
큰스님께서는 우리가 극락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마음은 세속적인 소원을 비는 마음과 다릅니다.
지금보다 더 좋은 집에 살고, 더 많은 재산을 얻고, 더 편안하게 지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한계에 머무르지 않고, 부처를 향해 수행하는 세계로 나아가겠다는 것입니다.
큰스님께서는 이 길을 향해 처음 세운 마음을 끝까지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눈앞의 어려움 때문에 물러서거나, 당장의 즐거움 때문에 방향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몸으로는 번뇌와 집착이 많고 수행을 지속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처님께서 열어주신 극락왕생의 길을 믿고 발원합니다.
자신의 근기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기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더욱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발원은 막연히 좋은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아닙니다.
자신이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지 알고, 그 방향으로 나아가겠다고 결심하는 것입니다.
5. 발원하는 수행은 헛되지 않습니다
극락왕생을 발원하고 열심히 염불하지만, 누구나 자신의 근기에 대한 걱정을 품을 수 있습니다.
‘내가 과연 극락세계에 갈 수 있을까?’
‘이렇게 의심이 많고 수행도 부족한데, 지금까지의 염불이 헛된 일이 되는 것은 아닐까?’
큰스님께서는 이러한 의문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극락왕생을 발원하며 염불했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그동안 쌓은 수행의 공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염불은 자신의 마음에 복덕을 쌓는 수행이기 때문입니다.
극락왕생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공덕은 남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염불 수행의 공덕이 다음 생의 좋은 인연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하셨습니다.
이 대목에서 말씀하신 것이 문생호귀원(聞生豪貴願)입니다.
큰스님께서는 금생에 극락왕생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염불의 공덕으로 다음 생에 좋은 환경과 인연을 만나 수행을 이어갈 수 있다고 설명하셨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부유한 집안에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환경과 인연을 얻어 다시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나고, 수행을 이어갈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에 따라 삶의 조건이 얼마나 달라지는지도 여러 사례를 들어 설명하셨습니다.
같은 인간으로 태어나더라도 어떤 사람은 먹고사는 일에 평생을 매달려야 하고, 어떤 사람은 경제적인 여유 속에서 공부하고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수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생계를 유지하는 데 모든 힘을 쏟아야 하는 사람과, 생활의 어려움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사람은 수행에 전념할 수 있는 조건이 다릅니다.
그러나 좋은 조건을 얻는 것 자체가 최종 목표는 아닙니다.
그 조건을 바탕으로 다시 한 단계 더 성장해야 합니다.
부유하게 태어나더라도 거기서 멈추면 안 됩니다
큰스님께서는 좋은 집안에 태어나 부유하게 살더라도 그다음에 두 가지 길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는 주어진 부귀를 누리며 세속적인 즐거움에 머무르는 길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 부귀와 여유를 바탕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수행하며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좋은 환경에 태어났다고 해서 저절로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환경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부귀가 목적이 아니라, 부귀를 바탕으로 수행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사흘 동안 마음을 닦은 공덕은 천 년의 보배가 됩니다
큰스님께서는 수행의 공덕을 설명하시면서 《초발심자경문》에 수록된 야운 비구의 《자경문(自警文)》 구절을 들려주셨습니다.
三日修心千載寶
삼일수심천재보
사흘 동안 마음을 닦은 공덕은 천 년의 보배가 되고,
百年貪物一朝塵
백년탐물일조진
백 년 동안 탐하여 모은 재물은 하루아침의 티끌이 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것을 모읍니다.
재산을 모으고, 집을 마련하고, 생활을 더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평생 모은 재물도 죽음 앞에서는 모두 놓고 가야 합니다.
반면 마음을 닦고 수행한 공덕은 한순간의 세속적인 성취와는 다릅니다.
큰스님께서는 사흘 동안 자신을 닦은 공덕이 천 년의 보배가 된다는 말씀을 통해, 수행의 가치가 얼마나 큰지를 강조하셨습니다.
이 구절은 무엇을 더 많이 소유했느냐보다, 자신의 마음을 얼마나 닦았느냐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어른은 내생까지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큰스님께서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미래를 바라보며 살라고 가르치던 이야기를 다시 꺼내셨습니다.
어린아이는 오늘 하루 재미있게 노는 것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아이에게 공부하고 자신을 성장시키라고 가르칩니다.
지금의 즐거움보다 앞으로 살아갈 긴 세월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른이 된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야 할까요?
큰스님께서는 내생까지 바라보며 살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지금의 삶이 끝나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한다면, 눈앞의 이익과 즐거움이 삶의 중심이 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내생까지 바라보는 사람은 지금의 삶을 다르게 사용합니다.
오늘의 염불과 수행이 앞으로의 삶에 어떤 인연으로 이어질 것인지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큰스님께서는 세속적인 일은 실패하면 그동안 쌓아온 것을 모두 잃을 수도 있지만, 부처님을 향해 나아가는 수행은 그렇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극락왕생을 발원하며 쌓은 공덕은 헛되지 않고, 다음 생의 수행을 위한 바탕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수행하는 사람은 당장의 결과만을 보고 마음을 흔들어서는 안 됩니다.
발원하는 사람은 지금 무엇을 얻었는가보다, 자신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를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6. 나는 무엇을 위해 부처님께 예배하는가?
큰스님께서는 법문을 마무리하시면서 부처님께 대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다시 일깨워 주셨습니다.
우리는 부처님 앞에 엎드려 예배하고,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며 염불합니다.
그런데 그때 우리의 마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요?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을 해결해 달라는 마음일까요?
아니면 부처님께서 보여주신 길을 믿고, 나도 그 길을 따라가겠다는 마음일까요?
큰스님께서는 부처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자신이 어떻게 인간의 삶을 넘어서는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지 못했다면 세상의 재물과 힘을 붙잡고 살아가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우리에게 전혀 다른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인간은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된 존재가 아니며, 부처라는 더 높은 경지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처님께 무엇을 얻었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께서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길을 보여주셨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 길을 알게 되었으니 이제는 나도 그곳을 향해 나아가겠다고 마음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것이 발원입니다.
신앙의 성숙은 바라는 것이 달라지는 데 있습니다
어린아이는 자라면서 바라는 것이 달라집니다.
처음에는 눈앞의 즐거움을 원하지만, 성장하면서 더 먼 미래를 생각하고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사람이 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삶이 힘들어 부처님을 찾을 수 있습니다.
건강을 회복하고 싶고, 가족이 평안하기를 바라며, 어려운 일이 잘 풀리기를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큰스님의 가르침입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배우면서 신앙의 목적도 성장해야 합니다.
무엇을 더 얻을 것인가에서,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로.
지금의 삶을 어떻게 더 편안하게 만들 것인가에서, 인간의 한계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로.
부처님의 힘을 내 쪽으로 끌어오려는 마음에서, 내가 부처님의 세계를 향해 나아가겠다는 마음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이것이 기도를 넘어 발원으로 나아가는 신앙의 성숙입니다.
발원은 지금의 삶을 살아가는 방향까지 바꿉니다
발원한다고 해서 당장 우리의 생활이 달라지는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여전히 먹고살아야 하고, 가족을 돌보아야 하며,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러나 그 삶을 살아가는 목적은 달라집니다.
이전에는 지금의 삶을 유지하고 더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이제는 이 삶을 부처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재물이 생기더라도 그것을 삶의 최종 목표로 삼지 않습니다.
좋은 환경과 인연을 만나더라도 그 안에 안주하지 않습니다.
그 모든 조건을 수행의 바탕으로 삼아 한 단계 더 성장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금생의 안락함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극락왕생을 발원하고 부처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 길을 향해 오늘도 염불하고, 경전을 배우고, 부처님께 예배하는 것입니다.
어른이 된 우리는 무엇을 꿈꾸어야 할까요?
이번 법문의 처음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어릴 때 우리는 위인전을 읽으며 훌륭한 어른이 되기를 꿈꾸었습니다.
그런데 어른이 된 뒤에는 무엇을 꿈꾸어야 할까요?
큰스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어릴 때 커서 어른이 되듯이, 어른이 커서 부처가 되는 거야.”
이 한마디에 이번 법문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어른이 되었다고 성장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인간으로 태어났다고 인간의 삶이 최종 목적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가 지금의 한계에 머무르지 않고 더 높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 길을 알게 된 사람은 더 이상 지금의 삶을 조금 더 편안하게 만드는 데만 머물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보여주신 세계를 향해 마음을 세우고, 그 길을 따라 나아가야 합니다.
기도가 지금의 나를 위해 부처님의 힘을 구하는 것이라면, 발원은 지금의 나를 넘어 부처를 향해 나아가겠다는 결심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얻기 위해 부처님께 예배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부처님께서 보여주신 길을 따라가기 위해 예배하고 있습니까?
이번 법문을 통해 우리 각자가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부처님께서 열어주신 길을 알게 된 것에 감사하고, 그 가르침을 믿고 공경하며, 극락왕생을 향한 발원의 마음을 더욱 굳게 세우는 것입니다.
성숙한 신앙은 기도에 머무르지 않고 발원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지금의 삶을 더 좋게 해달라는 바람을 넘어, 나 자신이 부처를 향해 성장하겠다는 결심.
그것이 이번 법문에서 큰스님께서 우리에게 일깨워주신 가장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첫댓글 좋은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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