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별장으로 사용하던 건물이 전소된 신도님을 위로하기 위해 김해에 다녀왔습니다.
하루전 삼정사의 급한 일을 마무리하고 나니 문득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울산으로 향해 십리대밭길을 천천히 걸으며 국화꽃과 갈대를 바라보았습니다. 가을꽃의 은은한 아름다움과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사이를 걷다 보니 복잡했던 마음도 조금씩 정리되는 듯했습니다.
찾아간 화재 현장은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참혹했을지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소중하게 간직했던 물건들은 흔적 없이 타버렸고, 추억이 깃든 공간도 한순간에 잿더미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나마 얼마나 다행인지요.
두 분이 머물고 계시다가 타는 냄새를 맡고 화재를 발견하여 곧바로 대피하셨다고 합니다.
특히 잠들기 직전에 발견했기에 망정이지, 조금만 늦었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물건은 다시 마련할 수 있고 건물도 다시 지을 수 있지만, 사람의 생명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비록 많은 것을 잃으셨지만 두 분이 무사하셨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큰 다행인지 모릅니다.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해 드리고 싶어 오백나한도 족자와 삼정사 주목단주 두 벌을 전해 드리며 따뜻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점심 공양을 함께하고 차 한 잔을 나누는 동안
상처 입은 마음에 작은 위안이라도 전해졌기를 바랄 뿐입니다.
살다 보면 아무리 조심하고 준비해도 뜻하지 않은 일이 찾아옵니다. 소중하게 여겼던 것들이 한순간에 사라지기도 하고, 예상하지 못한 시련 앞에서 망연자실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잃은 듯한 순간에도 끝내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는 분명해집니다.
바로 살아 있다는 것, 그리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입니다.
삼정사로 돌아오는 길에도 마음은 편치 않았습니다.
지하수 공사 문제로 신경을 쓰고 있는 터에
밤이 되어 물이 나오지 않아 확인해 보니 30톤짜리 물탱크의 물이 모두 빠져 있었습니다.
급한 마음에 한밤중에 계곡물을 다시 끌어다 채웠지만, 아무래도 땅속에 묻힌 배관 어딘가에서 누수가 생긴 듯합니다.
오늘은 전문가가 와서 점검한 뒤 배관을 다시 매설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일이 생각보다 커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지요.
누군가의 아픔을 위로하고 돌아온 날에도 내 앞에는 또 다른 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인가 봅니다.
모든 일이 뜻대로 풀려야만 평온한 것이 아니라, 뜻대로 되지 않는 일 속에서도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 참된 공부가 아닐까요.
화재로 삶의 한 부분을 잃으신 신도님께는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가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인생은 때로 불길에 모든 것을 내어주기도 하고, 땅속의 물길 하나 때문에 밤잠을 설치게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의 어려움이 내일의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가을바람에 흔들리던 갈대도 다시 몸을 일으키고, 잿더미가 된 자리에도 언젠가는 새로운 싹이 돋아나듯이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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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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