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에 한번 정도 믿음을 가진 고교동창들이 우리 집 안방에서 모인 적이 있었다. 힘든 입장에 처한 친구를 위해 전부 기도해주기도 했다. 또 깊은 체험을 한 선후배들을 초청해 그 간증을 듣는 소규모 모임이었다.
하루는 한쪽다리를 쓰지 못하는 장애가 있는 후배가 나왔다. 유난히 눈이 반짝이는 바짝 마르고 백지같이 하얀 얼굴이었다. 그는 천재성을 가질 정도로 우수했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 그는 이미 사르트르를 연구하고 철학책만 보았다. 그의 꿈은 세계적인 철학자가 되어 책 한권 쓰고 생떽쥐베리처럼 서른 다섯살에 죽겠다는 것이었다. 동시에 그는 철저한 무신론자였다. 인간은 죽는 동시에 원소로 분해되고 끝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종교는 인간이 만든 정신적 산물이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췄다. 단 한번뿐인 인생의 기회를 농락당하지 않으려면 즐기고 또 즐기는 것 뿐이었다. 연애소설도 쓰고 작곡도 했다. 자기 세계를 철저히 구축하고 그 안에서 활활 타오르다 없어지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집 옆에 있던 교회가 시끄럽다고 해서 가서 시비를 걸어 뜯은 돈으로 술과 음식을 사먹기도 했다. 그는 하나님같이 이기주의적인 게 어디 있느냐고 저주했다. 인간을 창조해 놓고 그 모든 것들이 자기영광을 위해 찬양하라는 게 말이 되느냐는 것이었다.
그는 독하기도 했다. 졸립다고 면도칼로 팔뚝을 그으면서 책을 본 인물이었다. 건달을 만나면 그 허약한 몸에 어디서 힘이 나는지 도끼를 들고 휘둘러 끝을 봤다. 자기의 예정대로 자살도 시도했었다. 그러나 시계추 같이 인간은 한쪽 끝으로 가면 이번에는 반대쪽으로 끝까지 가는 모양이다. 그에게 골육종이란 병이 찾아왔다. 허벅다리뼈를 끊어 없애야 한다는 의학적 결론이 났다. 멀쩡했던 다리를 절단해야 하는 상황이 닥쳐온 것이다.
갑자기 그는 다급해졌다. 누군가에게 항암치료 정도만 받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러나 평소 그의 주장과 같이 그는 믿고 매달릴 존재가 없었다. 한쪽 다리가 잘려져 나가고 그는 장애인이 됐다. 다리가 없는데서 오는 불편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모든 즐거움이 없어졌다. 교사를 하던 그는 장애가 생긴 이후는 담임을 맡을 수도 없었다.
어느새 나이도 오십 줄에 들면서 몸은 메마른 고목같이 시들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그의 삶이 백팔십도로 달라졌다. ‘하나님은 없다’라고 확신 했는데 이제는‘확실히 있다’는 걸 깨달았다는 것이다. 이제 그는 예수에 미쳐 있었다. 생활의 전부를 하나님 말씀만 생각하고 그걸 전하는데 쓰고 있었다.
공원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노방전도를 하는 게 그의 일과였다. 어떤 모임에서라도 그를 부르면 찾아가서 자기의 과거의 행동을 고백하고 예수를 받아들인 체험을 전하고 있었다. 그가 우리모임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말이죠 이 세상에서부터 천국을 느끼면서 살고 싶어요. 눈물이 자주 나서 챙피했었는데 이제는 당당하게 울어요. 하나님 영광을 위해 일하다가 감격해서 눈물이 나오는데 주위 눈치를 볼 게 뭐 있어요? 난 이제 세상이 아니라 저 위를 보고 살아요.”
한쪽다리를 잃은 대신 드높은 영혼의 눈을 얻은 것 같았다. 이 세상은 각자의 눈으로 보는 스크린 위의 영상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새로운 영혼으로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된 그는 부활한 게 틀림없었다. 그가 계속했다.
“난 진짜예요. 지금 죽는다고 해도 감사해요. 천국으로 갈 희망을 가지니까요.”
자기의 체험을 전하고 다니는 그의 얼굴에서는 환하게 빛이 나는 것 같다. 마른가지 같은 그의 몸 어디에서 그런 활동적인 에너지가 나오는지 놀랄 정도다.
그의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세상행복도 생각했다. 그건 나중에 어떤 좋은 조건이 갖추어져야 비로소 찾아지는 것이 아닌 것 같았다. 행복은 마음의 상태였다. 그리고 바로 지금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마음속에 있는 쓸데없는 욕심과 허상들을 버리고 그 자리에 예수를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예수는 진리고 길이고 생명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