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하는 소녀 외 1편
김은정
밝고 환한 창가에 새가 울고 명랑한 빛이 쏟아진다 노란 리본을 맨 소녀가
창가에서 책을 펼치고
숨결이 낮게 낮게 흐르고
까치가 안산안산안산 울고
친구야,
내가 살고 있는 안산과 네가 생각하는 안산은 다르다
오늘도 안산은 천국
독서하는 소녀의 얼굴이 빛나고
푸른 마디마다 장미꽃 피어나고
은행나무는 안산안산안산 리듬 타고
창가에 드리우는 악기가 있기에
우리의 발걸음이 빛나고
소녀는 그렇게 조용하고 평화를 계속 읽고
안산안산안산
어디에, 구름에 성실하게 책 읽는 소녀의 얼굴이
빛나고
자애의 눈빛이 안산을 덮고
창가에서 책 읽는 소녀를
안다, 안산
소녀가 있기에 우리가 있는
안산, 안다
낮은 노적봉폭포에 머무는 물소리도
안산안산안산
물안개 차오르는 기쁨
안산안산안산
대부도에서의 하루
김은정
나는 물닭이에요
감성은 예민하고 돈은 없지만
바다는 내 안에 신전이 있다고 해요
신전이란,
희망의 끝을 본 자들이
제 안에 세우는 빛기둥 같은 것 아닐까요?
세상에서 버려졌을 때
있는 힘을 다해 날아간 갯벌에서
머리를 박고 눈물로 들린 새벽을 바라보았던 열두 살의 그해 바다처럼
안산에서 차를 타고 사십여 분을 달려오니
갯지렁이 꿈틀거리는 바다가 펼쳐집니다
나는 염소를 데리고 미친 듯이 턱 수염이 난 당신에게
소용돌이치려합니다 겁에 질려 움츠려드는 당신은 내 허벅지를
움켜쥐고 나의 분노를 피하려 두려움을 떨고 있습니다
바다에서 강물의 경계를 응시하는 일
강의 순례를 파도에 기록하는 일
몇 천 년을 이어온 우리의 기교를 예수 같은 당신이라면
너른 갯벌에 모두 들여놓고 새 신부처럼 껴안아 달빛을
하나 둘 끼워 넣어줄 거예요
대부도에 달뜨면 나뭇가지는 새신랑의 슬픔까지 투명하게
읽었다는 뜻이 아닐까요? 빛과 어둠을 오가는 자의 남루함으로
뒤꼍에 도살된 염소의 피 냄새까지 차마 아직도 눈물겹다는
당신의 조그만 미소를 내가 대신 지을까요?
바람 속에 뼈를 말려도 좋을 거야,
그러나 영영 바람이 되지는 말아,
그런 속삭임에 밀려가는 배가 되어도 좋을 듯해요
밤새 물닭의 눈으로
밤새 물닭의 부리로
그리운 강을 뒤적거리며
우리는 어린 시절에 맛본 악기를 꺼내놓는 거예요
그리하여 가난과
그 가난을 별로 가져가는 파도처럼
비로소 깨닫는 사랑을 다각도로 입술에 새기는 밤입니다
낡은 집 같은 데서 자고 일어나면
아직도 타오르는 목숨이 아침빛처럼
떨며 괴로워하는 서로를 다시 껴안는 거예요
----박용숙 외, 애지사화집, {멸치, 고래를 꿈꾸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