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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미륵산 시산제
최 순 태
요즈음 동장군(冬將軍)의 위세가 대단하다. 우리나라의 겨울철 기온은 전형적인 삼한사온(三寒四溫)의 기후이지만 올해에 들어서면서 추운 날씨가 계속된다. 등산을 좋아하는 나도 추위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동절기에 거행된 동문 산악회에 자주 가지 못했다.
송설산악회에서는 매년 2월이면 한 해 동안 산행을 할 때 아무 탈 없이 안전한 산행을 기원하는 시산제(始山祭)가 열린다. 나는 시산제에 반드시 참가하고 싶었다. 이러한 나의 소망에 대답이라도 하는 듯 이제까지 추웠던 날씨가 2월 산행일인 10일에는 오랜만에 날씨가 화창하여 영상의 기온을 회복하였다.
우리 산악회는 복이 많다. 시산제가 거행되고 난 다음날인 일요일에는 전국적인 한파가 몰아쳤다. 해마다 거행되는 산악회 등반 중 비가 많이 오는 여름에도 우리가 가는 날에는 날씨가 쾌청하였다.
해마다 시산제가 열리는 계절에는 많은 동문들이 참여를 한다. 하지만 올해는 유달리 참여자가 많아 평소 하나만 운행하던 전세버스를 배로 증가시켰다. 75명을 태운 버스는 대구에서 새벽 6시경 경남 통영 미륵산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산악회가 결성 된지 10년이 넘은 대구송설산악회는 타지의 동문 산악회보다 활성화 되어 매월 산행 때마다 40여명의 동문들이 많이 참가하며, 동문 상호간 정을 나누는 모범적인 산악회이다. 이번 산행에 함께 하기로 약속한 동문 중 몇 명은 피치 못할 사정으로 참가하지 못하였다.
그들은 같이 하지 못한 아쉬움에 버스 출발지로 와서 인사를 하고 찬조를 하는 선배와 산악회 총무를 통하여 시산제에 참가하지 못한 서운함을 표시하고 일정액을 기부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동문은 기념 수건을 기증하고, 자기가 운영하는 빵집에서 만든 빵을 회원들에게 제공하는 등 아름다운 마음씨가 가득하였다.
고속도로에 진입한 우리들의 버스는 성산휴게소에 도착하였다. 거기서 아침 식사를 하고 최종 목적지를 향하여 우리들은 부지런히 달려가 마침내 통영 용화사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미륵산을 조금만 올라가면 시산제를 지낼 마땅한 장소가 자리 잡고 있으나, 정성껏 준비한 제물 등을 일일이 배낭에 지고 올라가기 힘들어 주차장 인근 오래된 미류나무 근처 평평한 곳에서 제를 올리기로 하였다.
예년의 시산제에는 제복을 입은 제관이 회장님을 비롯한 2명이었으나 전직 회장을 하신 선배가 제복을 준비하여 초헌, 아헌, 종헌을 하는 등 격식을 갖추었다. 전체 산악회원들은 경건한 마음으로 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산신께 고하는 제문 낭독하는 것을 시작으로 한 해 동안 무사한 산행을 기원하는 삼배를 올렸다.
시산제 마지막에 우리들은 “삼한대처 김천고을 황악산 밑에 우뚝 솟아 크나큰 집 우리의 모교”로 시작되는 교가를 부르면서 식은 끝났다. 이 때 내가 여러 사람들 앞에서 영광스럽게도 지휘를 하였다. 지휘 공부를 한 적은 없었으나 음악시간에 배운 대로 하였다.
공식적인 식이 끝나고 간단한 음복과 준비해온 음식물로 배를 채우고 미륵산 정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동문 산악회는 다양한 연령대의 선후배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산행대장은 다양한 등산로를 정했다.
즉, 정상까지 정복하고 다른 길로 하산하는 길과 정상 정복 후 원점 회귀하는 코스와 통영의 바다를 보며 감상하는 케이블카를 타는 3개 코스를 정하여 각자 편리한 대로 산에 오르게 하였다.
11시부터 산행이 시작되어 그 산의 최고봉을 정복하고 “한국의 나폴리”라고 불리는 아름다운 통영 앞바다를 산에서 감상하였다. 내륙인 대구에서 이곳 통영에 온 만큼 바닷가의 정취를 느끼며 풍성하고 싱싱한 해산물로 점심 식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모든 회원들은 등산 후 15:30분까지 지정된 식당으로 모이기로 약속이 되 있었다.
미륵산 정상에서 바라본 통영 앞바다와 한려수도는 한 폭의 동양화였다.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를 할 때 이곳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우리 국토를 침입한 왜병들을 무찌를 묘책을 짜느라 고심했을 당시를 생각나게 하였다.
정상을 정복한 후 하산할 때 출발지에서 미리 산행대장이 나누어 준 지도를 보며 내려왔으나, 나를 비롯한 몇 명의 회원이 잘못하여 엉뚱한 방향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현지에 사는 주민께 물어보니 전혀 다른 곳에 우리들이 와 있었고, 점심식사를 할 식당까지의 거리는 적어도 6km나 된다고 한다.
걸어가면 적어도 2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다. 참으로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즉시 우리가 타고 온 전세버스의 기사님께 전화를 하여 식당으로 우리들을 데려다 주변 안 되겠냐고 부탁하니 차를 몰고 오셨다.
우여곡절 끝에 식당에 가니 벌써 선후배 몇 명이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늦은 점심이어서 모두들 즐겁게 얘기하며 식사를 하였다. 이번 행사를 준비한 임원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서 자연스럽게 동문들이 어울렸다.
이전에는 나의 송설 동기들이 거의 참가하지 않았으나 오늘은 5명이나 참가하여 부회장인 나의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었다. 같은 테이블에서 동기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며 우정을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다.
점심식사 후 통영 수산시장으로 이동하여 일부는 쇼핑을 하고 나머지는 시장 인근에 조성된 동피랑 벽화마을을 구경하러 갔다. 동피랑은 “동쪽벼랑”이라는 뜻이며 이곳은 초대 삼도수군통제사인 이순신장군께서 설치한 통제영의 동포루(東砲樓)가 있던 자리이다.
당초에는 통영시에서 낡은 마을을 철거하고 동포루를 복원하고 공원으로 조성할 계획이었으나, 통영시의 시민단체가 “동피랑 색칠하기-전국벽화 공모전”을 열어 낡은 담벼락에 그린 벽화로 인하여 이 마을에 대한 입소문이 나면서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관광명소로 변모하였다.
요사이 전국 곳곳에 저마다의 사연이 깃든 벽화마을을 조성하는 일이 유행이다. 가까이는 대구 달성의 마비정과 서울 북촌, 부산, 영덕 등에 스토리텔링을 가미한 마을이 조성되어 있다.
마을 곳곳을 구경하던 중 오늘 같이 등반한 선후배와 어울려 마을 식당에서 간단하게 반주를 들이키며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기리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고, 통영에서의 여러 일정을 끝내고 대구로 향하였다.
대구에 도착하니 저녁 시간이 되어 대구시에서 일하는 후배와 함께 반월당의 어느 돼지국밥 식당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집에 도착하니 저녁 8시가 넘었다. 새벽 일찍 집을 나서 멀리 통영에서 등산을 하고 한려수도의 아름다운 풍광을 만끽하고 시원한 바다를 바라보며 마음을 치유한 뜻깊은 하루였다.
등산을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등산은 가장 간단한 장비와 저렴한 비용으로 자기의 몸을 단련시키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좋은 운동이라는 것이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격한 운동은 몸에 무리가 오므로 간단한 걷기, 등산 등 유산소 운동이 필요하다.
나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등산을 지속적으로 할 예정이다. 내 몸이 건강해야 가족도 편안하고 가정에 평화가 올 것 아닌가? 이제 입춘도 지나 따뜻한 봄도 멀지 않았으므로 봄에는 많은 산에 가서 등산을 즐기고 싶다.
첫댓글 대구송설산악회회원님의 통영 미륵산 시산제를 위한 산행기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새해 시산제 겸 송설동문들과 좋은 산행을 하셨습니다. 통영 미륵산의 전경과 동문들의 단합된 모습이 자랑스럽습니다.
올 한해도 건강하시고 좋은 산행을 함께할 기회가 오길 기대해 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미륵산에서 바라보는 통영 앞바다의 아름다운 풍경이 생각납니다.
좋은 곳에서 뜻있는 산행을 하셨네요. 잘 읽었습니다.
세월이가니까 건강을 절감합니다. 올 겨울은 감기로 한달 쯤 앓고나니 한 철이 다 간듯합니다. 건강이 최고이지요 체력을 단련하여 건강을 지키는게 자기를 지키는 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절경을 두루다니시면서 눈도 호강하고 친구분들과 돈독한 정분도 나누고 건강도 지키시고 최고의 심신단련을 하십니다. 곧 만날날을 기다립니다.
건우산악회도 이번달 시산제를 지냅니다. 미륵산 시산제를 참고하여 시행할가 합니다 송설산악회 운영이 모범적인것 같습니다. 산행에 적극 참여하여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잘 읽었습니다.
시산제(始山祭)는 큰 의미를 담고 있군요.. 송설산악회의 더 큰 발전을 기원합니다. 통영 미륵산과 동피랑 마을은 저도 가 본적이 있습니다. 미륵산에서 바라 본 다도해의 아름다운 풍광이 떠오릅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