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부모님 슬하에서 태어나 장구한 인생을 시작한다.
생명과 탄생은 그 자체로 이미 엄청난 축복이다.
현명하신 선조들은 사람의 일생에 대해 각 단계별로 별칭을 붙이셨다.
아장아장 어린 아이가 자라 15세가 되면 志學이라 했다.
본격적으로 세상을 배우며, 학문에 뜻을 두고 공부에 정진하는 시기로 여겼다.
이런식으로 20세가 되면 若冠, 30세가 되면 立志, 40세에 不惑, 50세는 知天命, 60세 耳順, 70세면 古稀, 80세는 傘壽,
90세 卒壽, 100세는 上壽, 120세면 인간수명의 극상인 天壽라 칭했다.
참 독특한 이칭(異稱)인 동시에 각 단계별 인생의 성숙함과 특징을 짧은 단어로 지혜롭게 표현하셨다.
길고 긴 인생길에서 가장 중요한 분수령이자 변곡점은 누가 뭐래도 역시 30세다.
바로 입지다.
약관은 신체적으로나 법률적으로 성인의 시기이긴 하나 한창 배움의 과정이고,
부모로부터 완전 독립하여 홀로 서기를 하기엔 아직도 동이 트기 한참 전이다.
여전히 어두운 새벽이다.
그러나 삼십은 다르다.
배움을 끝내고 세상에 출사하여 자신만의 길을 가기 시작하는 때다.
확고한 비전과 열정으로 당당하게 달려나가며, 자신의 인생에 대한 분명한 뜻과 방향에 따라 일로매진하는 때다.
그래서 말 그대로 立志라 표현했다.
스스로 선택한 배우자와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각자의 삶에 무한 책임을 진다.
30은 또한 앞선 세대와 다음 세대를 구분짓는 명확한 바로미터다.
그리고 결혼한지 대개 30년쯤 되면 자식들의 혼사와 분가를 경험하는 때이기도 하다.
그래서 결혼 30주년을 '진주혼식'이라하여 많은 축하를 보내며 축복한다.
이때 어느 부부들은 리마인딩 웨딩 세리모니를 하거나 리마인딩 허니문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학교마다 약간씩 다를수도 있겠지만,
고교를 졸업한지 30년이 되는 해(知天命)에 홈커밍대회라하여 모교를 방문하고 스승님께 보은하며,
벗들과의 오래된 우정과 건강한 삶에 서로 격려를 보내는 큰 축제를 갖기도 한다.
이처럼 인생을 살면서 30주년이 주는 의미는, 다양한 영역에서 매우 각별하고 의미가 심장한 법이다.
내 생각도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몇해 전부터 나는, 예닐곱 번 정도의 각기 다른 30주년 기념행사를 나름대로 기획했고, 준비했다.
한해 재수를 하고 대학에 들어갔다.
법대 행정학과였다.
인원은 단출했다.
50명 중 제주도 출신 홍일점을 빼고는 모두 경향각지에서 모여든 약관의 청년들이었다.
알콩달콩한 우정을 맺어온지 어느새 30년.
세월은 유수처럼 흘렀다.
30년의 우정을 기념하고 싶었고, 그래서 제안했다.
"캠퍼스 라이프 30주년 기념, 제주도에서 멋진 새봄을"
연초에 학과 친구들 밴드에 올렸더니 삽시간에 25명이 참가의사를 밝혔다.
며칠새 경비도 거의 1,000여만원이나 내 통장에 입금되었다.
3개월 전부터 추진했던 터라 여유도 있었고, 짜임새있고 품격있는 행사를 개최할 수 있었다.
2014년 4월 첫째주.
날씨는 맑고 쾌청했다.
감사했다.
주말 이른 아침 비행기로 제주도에 갔고, 일요일 늦은 밤 비행기로 귀경했다.
양일간 제주에서 온전하게 귀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미국에서 날아온 친구, 지방 공항에서 시간에 맞게 넘어온 친구, 어떤 친구는 업무 때문에 주말 밤에 달려왔다.
행사를 주관하는 사람으로서 그런 벗들에게 고맙기 그지 없었다.
제주에서 큰 농장을 경영하는 친구는 전 가족들을 데리고 와서 주말밤 우리들의 가든파티를 적극 도와주었다.
가슴이 뭉클했다.
골프도 하고, 한라산 산행도 했다.
성산 일출봉에도 갔으며 쇠소깍 주변 올레길 트레킹도 빼먹을 수 없었다.
제주대에서 교수로 재직중인 친구 덕분에 학교 캠퍼스로 몰려가 족구시합도 벌였다.
어떤 이는 과거의 예리함과 민첩함이 여전했으나 어떤 친구는 불어난 몸매에 헛발질이 일쑤였다.
그래도 좋았다.
누군가가 연속 알을 까도 그것이 하등 문제될리 없었다.
30년의 우정과 미소는 그렇게 싱싱했고 제주의 하늘처럼 높고 푸르렀다.
현지에 있는 친구들 덕분에, 매 식사 때마다 도처에 박혀있는 알토란같은 맛집을 순례하는 것도 여행의 묘미였다.
번잡하고 정신없는 서울에서 겨우내 잠들어있던 나의 둔감해진 미각이 화들짝 놀라 단박에 깨어나는 듯했다.
과연 제주의 해물은 담백하고 정갈했다.
거대한 통유리 너머로 광대한 수평선이 내려다 보이는 해수탕에서 여독을 풀었다.
마냥 편안하고 행복했다.
따끈한 해수탕 속에 온 몸을 담갔다.
저 멀리 시선이 멈추는 끄트머리께 바다와 하늘이 맞닿아 있었다.
그 경계선 위와 아래로 동시에 푸른 쪽빛이 하염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반가운 벗들과 고마운 우정에 대해 생각했다.
그랬다.
행복은 돈이나 권력에 있지 않았다.
행복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소소한 일상에서 싱그럽게 피어나는 한송이 수선화라고 생각했다.
온갖 금은보화를 갖고 있다고 해서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갑자기 커지는 건 절대 아니다.
사람들의 행복은 그 사람이 처한 환경뿐만 아니라 이성과 감성의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이다.
갑자기 모파상의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생각났다.
옆집에서 목걸이를 빌린 마틸드.
파티에 다녀오는 길에 그걸 잃어버렸다.
모든 재산을 처분해 목걸이를 사서 돌려주고 대출금을 갚기 위해 10년간 죽을 힘을 다해 일했던 그녀.
어느 날 우연히 옆집 여자로부터 그 목걸이가 500프랑짜리 가짜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혼을 철저하게 헤집어버리는, 죽음같은 사실 한 토막.
세상이 노래졌고 억장이 무너졌다.
그간의 마틸드의 고생과 근심은 필설로 형언키 어려운 것이었다.
그녀의 영혼과 삶은 그 순간 그대로 무너져내렸다.
잔잔한 수평선은 내게 일렀다.
겉치레에 신경쓰느라 아까운 세월을 허비하지 말라고.
허영과 교만을 멀리한 채, 매일 매일 감사가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인생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바로 알고 직시하며 살라고.
모파상의 메시지는 시공을 초월해 현재와 미래에도 인간의 삶에 그대로 적용될, 참다운 명제였다.
그 순간 나는 내 가슴판에,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중의 하나인 '사랑과 우정', '감사와 배려'를 다시 한번
깊이있게 아로새기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청정 바닷가 해수탕에서 친구들의 건강한 웃음소리와 미소들이 더욱 끈끈하게, 내게 와락하고 밀려들었다.
풋풋한 30년의 우정과 사랑.
진심으로 고마웠다.
귀가를 앞두고 공항 부근 격조있는 식당에서 마지막 만찬을 들었다.
식사 후, 전용 룸 안에서 한 사람 한 사람 돌아가면서 3분 스피치 시간을 가졌다.
각자 자신의 과거 30년과 현재의 삶에 대해 진솔하게 구술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계획과 잔잔한 소망도 함께 나눴다.
다른 친구들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내겐, 일박이일 중 단연 가장 가치있는 시간이었다.
서로를 부대끼며 근황을 알아가고, 각각의 다양한 사정과 형편들에 대해 깊이 공감하는 것.
이것이 바로 사랑의 시작이리라.
공항에서 참가했던 모든 친구들에게 탱글탱글하고 맛깔스런 한라봉 한 박스씩을 분배했다.
비행기는 어두운 밤바다 상공을 날아 뭍으로 향했다.
많은 추억과 즐거움 그리고 행복을 가득 안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
역시 소중한 친구들과의 속깊은 우정이 가슴 뻐근하리만치 고맙게 느껴졌다.
또한 그 우정의 정수와 본질은 '격려'와 '동행'임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
그러나 그런 축복과 은총이 어찌 그냥 얻어질 수 있겠는가?
세상을 떠나는 그날까지 한결같이 더 노력하며 살고 싶다.
나부터 한번 더 배려하고, 한번 더 환한 미소를 전달하면서 말이다.
적극적으로 협력해 주고 흔쾌하게 동참해준,
멋지고 건강한 중년의 친구들에게 심심한 감사를 전한다.
함께 한 30년, 함께 할 30년을 위하여.
브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