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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말씀: 이사야 5:1–17】
1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내가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2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3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 사람들아 구하노니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서 사리를 판단하라
4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음은 어찌 됨인고
5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지를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하게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6 내가 그것을 황폐하게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찔레와 가시가 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에게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리라 하셨으니
7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8 가옥에 가옥을 이으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 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에서 홀로 거주하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9 만군의 여호와께서 내 귀에 말씀하시되 정녕히 허다한 가옥이 황폐하리니 크고 아름다울지라도 거주할 자가 없을 것이며
10 열흘 갈이 포도원에 겨우 포도주 한 바트가 나겠고 한 호멜의 종자를 뿌려도 간신히 한 에바가 나리라 하시도다
11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독주를 마시며 밤이 깊도록 포도주에 취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12 그들이 연회에는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피리와 포도주를 갖추었어도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아니하며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보지 아니하는도다
13 그러므로 내 백성이 무지함으로 말미암아 사로잡힐 것이요 그들의 귀한 자는 굶주릴 것이요 무리는 목마를 것이라
14 그러므로 스올이 욕심을 크게 내어 한량 없이 그 입을 벌린즉 그들의 호화로움과 그들의 많은 무리와 그들의 떠드는 것과 그 중에서 즐거워하는 자가 거기에 빠질 것이라
15 여느 사람은 구푸리고 존귀한 자는 낮아지고 오만한 자의 눈도 낮아질 것이로되
16 오직 만군의 여호와는 정의로우시므로 높임을 받으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므로 거룩하다 일컬음을 받으시리니
17 그 때에는 어린 양들이 자기 초장에 있는 것 같이 풀을 먹을 것이요 유리하는 자들이 부자의 버려진 밭에서 먹으리라
【말씀 나눔】
삼십 년, 사십 년을 매일 걸어 다니던 길이 있습니다. 내 집 앞에서 큰길로 나가는 그 좁은 길, 당연히 내 땅인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도 그 길로 다니셨고, 나도 그 길로 다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재개발 이야기가 나오고 지적도를 떼어봅니다. 그 길, 내 땅이 아닙니다. 남의 땅이거나, 아니면 나라 땅입니다. 법에서는 이런 길을 "현황도로"라고 부릅니다. 지적도에는 없지만, 실제로는 사람들이 오래 다녀서 길이 되어버린 곳. 요즘 이런 일이 흔합니다. 평생 내 것인 줄 알고 쓰던 것이, 서류를 열어보니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던 겁니다.
오늘 본문이 딱 이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이 평생 자기 땅인 줄 알고 살아온 그 자리, 오늘 하나님이 지적도를 꺼내 보여주십니다.
이사야가 노래를 부릅니다. 1절,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내가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이사야 선지자의 노래를 듣는 청중은 아마 편하게 앉았을 겁니다.
사랑 노래구나, 오늘은 무거운 얘기 안 하는구나.
노래는 정성을 들인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2a절,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다섯 가지 일입니다. 하나하나 손이 많이 가는 일입니다.
돌 골라내는 일 해보신 분들은 압니다. 하루이틀에 끝나는 일이 아닙니다.
이 사랑하는 자는 오랜 세월 이 포도원 하나에 정성을 쏟았습니다.
이사야는 무려 다섯 줄을 할애해서 그 수고를 하나하나 기록합니다.
그런데 그 모든 수고를 뒤집는 데는 단 한 줄이면 충분했습니다.
2b절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다섯 줄의 정성 다음에, 단 한 줄의 배신입니다.
3-4절에서 분위기가 바뀝니다.
3절.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 사람들아 구하노니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서 사리를 판단하라 청중이 재판관 자리에 앉혀집니다. 남의 잘못을 판단할 때는 이상하리만큼 판단이 빨라집니다.
"저 포도원 참 배은망덕하네." 아마 청중은 고개를 끄덕였을 겁니다.
5-6절, 판결이 내려집니다.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하게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내가 그것을 황폐하게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찔레와 가시가 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에게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리라’ 울타리를 걷고, 담을 헐고, 다시는 가지도 안 치고, 비도 안 내리게 하시겠다는 겁니다. 보호를 거두시겠다는 겁니다.
그리고 7a절,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방금까지 판사석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이 한 줄에서 갑자기 피고석에 앉게 됩니다. 노래 속의 그 배은망덕한 포도원, 그게 자기들이었습니다.
7b절,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본문은 아주 섬뜩한 언어유희를 사용합니다.
하나님은 ‘정의’를 기다리셨는데 들려온 것은 ‘포학’이었고, ‘공의’를 기다리셨는데 들려온 것은 억울한 사람들의 ‘부르짖음’이었습니다.
원어로는 발음이 비슷해 보여도 하나님이 들으신 소리는 전혀 달랐습니다.
죄라는 게 원래 그렇습니다. 전혀 다른 얼굴로 오지 않습니다. 선과 거의 똑같은 소리를 내면서 옵니다.
포도원의 주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이셨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땅을 맡은 겁니다.
그런데 8절부터 나오는 얘기를 보면, 이스라엘은 맡은 자리를 소유한 자리로 착각했습니다.
현황 도로처럼 오래 쓰다 보니 내 것인 줄 착각한 겁니다.
7절에서 폭로된 그 착각이, 8절부터는 구체적인 얼굴을 갖습니다.
첫 번째 얼굴은 탐욕입니다. 8절,
가옥에 가옥을 이으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 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에서 홀로 거주하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당시 유다의 부유층은 작은 땅을 가진 사람들의 땅을 하나둘 사들여서, 결국 자기 혼자 넓은 땅에 살게 된 겁니다. 법으로는 문제가 없었을지 몰라도, 원래 하나님의 율법은 다릅니다. 땅은 여호와의 것입니다. 각 가정이 그 땅을 나눠 받아 지켜야 했습니다. 이들은 그 원리를 무너뜨렸습니다.
그들의 탐욕에 대한 하나님의 판결은 무엇입니까?
9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내 귀에 말씀하시되 정녕히 허다한 가옥이 황폐하리니 크고 아름다울지라도 거주할 자가 없을 것이며
남의 집을 빼앗은 자, 결국 자기 집도 빈 집이 됩니다.
인간에게 의식주는 기본적인 욕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평생 내 집 마련이라는 과제를 지고 살아갑니다.
처음 신혼 때는 열여덟 평에서 시작합니다. 아이들이 크면서 화장실이 두 개 있는 서른두 평으로, 그리고 각자의 방을 원하는 아이들을 위해 방 네 개 있는 마흔 평대로 집을 늘려갑니다. 그렇게 평생을 집을 넓히는 일에 힘을 씁니다. 그런데 자녀들이 다 독립하고 부부만 남아 있어도, 그 큰 집을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지고 살아갑니다.
그 넓은 집을 관리하고 유지하느라, 정작 하나님과 마주 앉는 시간은 줄어듭니다. 집을 넓힌 것이 죄가 아닙니다. 그 넓힌 집이, 우리의 시간과 마음을 소유하기 시작한 것이 문제입니다.
두 번째 얼굴은 향락입니다.
11절,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독주를 마시며 밤이 깊도록 포도주에 취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 종일 술과 음악과 잔치가 이어집니다.
그런데 본문이 지적하는 문제는 단순히 잔치를 열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12절이 이유를 밝힙니다.
그들이 연회에는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피리와 포도주를 갖추었어도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아니하며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보지 아니하는도다
여기서 탐욕과 향락의 두 얼굴이 하나로 만납니다.
땅을 움켜쥐는 것과 잔치에 취하는 것, 겉으로는 다른 죄 같지만 뿌리가 똑같습니다. 그들의 삶이 아침부터 밤까지 자기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는 동안, 하나님의 일하심에는 완전히 눈이 멀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새벽, 이 자리에 나온 우리도 예외가 아닙니다. 몸은 여기 앉아 있어도, 마음은 어제 걱정하던 문제에, 처리해야 할 일에, 마음 쓰이는 자리에 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금 이 새벽에 무슨 일을 하고 계신지, 정작 보지 못한 채 자리만 지키고 있을 수 있습니다.
새벽예배 자리를 지킨다고 해서 저절로 하나님의 손길이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몸은 여기 있는데 마음은 온통 내 일에 붙들려 있다면, 우리도 12절의 사람들과 다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됩니까? 13~14절,
13 그러므로 내 백성이 무지함으로 말미암아 사로잡힐 것이요 그들의 귀한 자는 굶주릴 것이요 무리는 목마를 것이라
14 그러므로 스올이 욕심을 크게 내어 한량 없이 그 입을 벌린즉 그들의 호화로움과 그들의 많은 무리와 그들의 떠드는 것과 그 중에서 즐거워하는 자가 거기에 빠질 것이라
탐욕스럽게 다 삼키려 했던 사람들이, 결국 자신들을 삼키는 더 큰 입 앞에 서게 됩니다
15절에서는 또 한 번 분위기가 전환됩니다.
여느 사람은 구푸리고 존귀한 자는 낮아지고 오만한 자의 눈도 낮아질 것이로되.
평범한 사람도, 존귀한 사람도, 오만한 사람도, 다 낮아집니다. 이 심판 앞에는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그런데 16절. 오직 만군의 여호와는 정의로우시므로 높임을 받으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므로 거룩하다 일컬음을 받으시리니
여러분 7절에서 이스라엘에게 기대되었지만, 나오지 않았던 바로 그 두 단어, 정의와 공의가 여기 다시 등장합니다. 이번엔 이스라엘의 몫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성품으로 드러납니다. 우리가 세우지 못한 그 정의와 공의를, 하나님이 홀로 이루십니다.
이게 이 본문의 핵심입니다. 우리의 실패가 하나님의 실패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무너진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홀로 서 계십니다.
그리고 17절. 그 때에는 어린 양들이 자기 초장에 있는 것 같이 풀을 먹을 것이요 유리하는 자들이 부자의 버려진 밭에서 먹으리라
8절에서 가옥에 가옥을 이어가며 혼자 차지하려던 그 땅, 그 밭이 지금 여기 다시 등장합니다. 그렇게 가옥에 가옥을 잇고, 밭에 밭을 더하며 다른 사람들을 밀어내고 혼자 차지하려 했던 그 땅이 결국 폐허가 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 버려진 땅에서 양들이 풀을 뜯고, 한때 땅 밖으로 밀려나 떠돌아야 했던 이들이 먹게 됩니다. 독점하려고 사람을 밀어냈던 땅이, 이제는 밀려난 이들에게 열리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17절이 먼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16절이 먼저입니다.
"결국 착한 사람이 이긴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홀로 의로우시기 때문에, 그 의로우심의 결과로 초장이 조용히 열리는 겁니다.
소유하려 발버둥 친 자는 잃었고, 소유하려 하지 않았던 자에게 그 자리가 주어졌습니다.
우리가 처음 언급했던 현황도로가 삼십 년, 사십 년 내 것인 줄 알고 다니던 그 길이 지적도를 열어보니 내 땅이 아니었던 것처럼, 이스라엘도 자기 땅인 줄, 자기가 이룬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오늘 지적도를 꺼내십니다. 이 포도원, 애초에 네 것이 아니었다. 내가 사랑해서 심고 가꾼 내 것이었다.
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내가 지금 붙들고 있는 것, 이 가정, 이 재물, 이 세월, 이 사역. 이것들이 정말 내가 소유한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맡기셨는데, 오래 들고 있다 보니 내 것처럼 여기고 있는 것입니까?
이 가정, 이 재물, 이 세월 그리고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이 목장, 이 섬김의 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오래 맡아왔기 때문에 우리 것이 된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맡기셨기 때문에 지금 우리 손에 있는 겁니다. 내가 이 자리를 오래 지켰다고 해서, 이게 내 지적도 안에 들어온 건 아닙니다.
여러분, 이것이 우리에게 은혜인 이유가 있습니다.
모든 것이 내 것이었다면 내가 끝까지 지켜내야 합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하나님의 것이기에, 우리의 실패가 마지막 말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움켜쥐어 망가뜨린 자리에서도 하나님은 자신의 정의와 공의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세우지 못한 그 정의와 공의를, 하나님은 자신의 의로우심으로 드러내십니다. 인간의 탐욕은 결국 폐허를 만들지만, 그 폐허마저도 마지막 주인이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증언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이 소유하는 힘이 아니라, 맡겨진 것을 내 것처럼 만들지 않는 믿음입니다. 내 손에 오래 있었다는 이유로 내 것이 되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자리라면, 붙드는 것보다 바르게 사용하는 것이 맡은 자의 마땅한 자리입니다.
오늘도 움켜쥐는 사람이 아니라 맡은 사람으로, 차지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흘려보내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묵상 - 하시깨묵】
① 어제 하루, 내가 붙들고 있던 것 중에 사실은 하나님이 맡기신 것을 내 것으로 착각한 순간은 없었습니까? 오늘은 그것을 어떻게 다르게 붙들겠습니까?
② 어제 내가 정의를 세운다고 믿었던 말이나 행동이, 실은 누군가에게 포학이나 부르짖음이 되지는 않았습니까?
③ 어제 나는 무엇에 정신이 팔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지 못했습니까? 오늘은 어디서 그 일하심을 보겠습니까?
④ 어제 내가 '넓히는 데' 힘쓴 것은 무엇이며, 그로 인해 무엇이 줄어들었습니까?
⑤ 어제 내가 움켜쥐지 못해 잃은 것 같았던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여전히 일하고 계심을 발견했습니까?
⑥ 어제 우리 목장 안에서, 맡은 것을 소유물처럼 여겼던 부분은 없었습니까?
⑦ 오늘, 하나님께 "이것은 제 것이 아니라 주님이 맡기신 것입니다"라고 고백하고 싶은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추천 찬송가】 새찬송가 276장 아버지여 이 죄인을
【은혜의 찬양】
주 선한 능력으로: https://youtu.be/MXa1zFFFrB8?si=0cu_v7vCdlJLzxhy
【새벽예배영상】
https://youtube.com/live/m9Rno5ckA-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