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9일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에제 47,1-28-9,12) (요한 2,13-22 ) 제1독서 <성전 오른쪽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보았네. 그 물이 닿는 곳마다 모두 구원을 받았네(따름 노래 “성전 오른쪽에서”).>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47,1-2.8-9.12<또는 1코린 3,9ㄷ-11.16-17> 그 무렵 천사가 1 나를 데리고 주님의 집 어귀로 돌아갔다. 이 주님의 집 정면은 동쪽으로 나 있었는데, 주님의 집 문지방 밑에서 물이 솟아 동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 물은 주님의 집 오른쪽 밑에서, 제단 남쪽으로 흘러내려 갔다. 2 그는 또 나를 데리고 북쪽 대문으로 나가서, 밖을 돌아 동쪽 대문 밖으로 데려갔다. 거기에서 보니 물이 오른쪽에서 나오고 있었다. 8 그가 나에게 말하였다. “이 물은 동쪽 지역으로 나가,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로 들어간다. 이 물이 바다로 흘러들어 가면, 그 바닷물이 되살아난다. 9 그래서 이 강이 흘러가는 곳마다 온갖 생물이 우글거리며 살아난다. 이 물이 닿는 곳마다 바닷물이 되살아나기 때문에, 고기도 아주 많이 생겨난다. 이렇게 이 강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 12 이 강가 이쪽저쪽에는 온갖 과일나무가 자라는데, 잎도 시들지 않으며 과일도 끊이지 않고 다달이 새 과일을 내놓는다. 이 물이 성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 과일은 양식이 되고 잎은 약이 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예수님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3-22 13 유다인들의 파스카 축제가 가까워지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14 그리고 성전에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과 환전꾼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 끈으로 채찍을 만드시어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쫓아내셨다. 또 환전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시고 탁자들을 엎어 버리셨다. 16 비둘기를 파는 자들에게는, “이것들을 여기에서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하고 이르셨다. 17 그러자 제자들은 “당신 집에 대한 열정이 저를 집어삼킬 것입니다.”라고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생각났다. 18 그때에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당신이 이런 일을 해도 된다는 무슨 표징을 보여 줄 수 있소?” 하고 말하였다. 19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20 유다인들이 말하였다. “이 성전을 마흔여섯 해나 걸려 지었는데, 당신이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는 말이오?” 21 그러나 그분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22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그분께서 이르신 말씀을 믿게 되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살아있는 성전이 되는 삶 >
오늘의 축일은 324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라테라노 대성전을 봉헌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 성전은 로마의 주교좌 성당으로 “모든 성당의 어머니요 머리”로 불리운다. 본래 ‘구세주의 대성전’으로 불리다가, 뒤에 세례자 요한에게 봉헌되어 현재 ‘세례자 요한 성당’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이 대성전은 성 베드로 대성당이 세워지기 전까지 천여 년 동안 교황청 역할을 하였으며, 여기서 다섯 차례의 세계 공의회가 개최되기도 하였다. 전승에 따르면 12세기부터 교회는 오늘을 축일로 지내왔다.
우리는 이 축일을 의미 있게 지내기 위해 사도 베드로로부터 이어지는 모든 교회가 성령 안에서 일치되어 있음을 깨닫고, 각자의 성화 소명에 충실하여야 함을 상기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각자는 ‘하느님의 성전’인 형제자매들을 거룩하게 대해야 함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집이요, 기도하는 집’인 성전에서의 태도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성당의 깨끗한 보존, 기도 분위기 조성을 위하여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지고 있는지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 교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성전의 속화’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이는 교회, 본당, 건물, 나 그리고 하느님 백성들의 삶이 하느님을 중심에 두지 않는 면이 적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다. 교회가 하느님을 드러내고 증거하는 표지가 되기보다는 세속 가치를 좇아가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구체적인 인간의 삶과 인간의 문제를 배제시키거나 무관심한 채 하느님을 말하고 고상한 영성을 말하는 곳은 싸늘한 공동묘지일뿐 성전도 교회도 결코 아니다! 성전은 에제키엘 예언자의 말씀대로, 축복과 생명을 가져오는 물이 흐르는 곳이요, 하느님이 현존하시는 곳이다. 성전은 거룩한 곳이며, 하늘나라가 실현되는 곳이다. 성전은 사랑의 벽돌로 세워져야지 ‘영혼 없는 몇 푼의 재화’로 이루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리라!
하느님께서 몸소 축성하시어 당신의 거처로 삼으신 살아있는 성전은, 그리스도 자신과 그리스도의 삶을 회상하고 보존하며 살아내는 곳이다. 교회는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묶인 이들에게 해방을, 억눌린 이들에게 자유를 주는 친교와 사랑과 평화와 기쁨의 공동체이다. 성전은 물리적 공간에 매이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역동성이 드러나야 하는 실재이다. 차별 없이 누구든 존중받고 사랑하며, 저 낮은 곳으로 내려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먼저 사랑으로 선택하여 함께 하며, 슬퍼하는 이들과 함께 울어주고, 기뻐하는 이들과 함께 웃어주는 ‘공감과 연민’이 현저히 드러나는 곳에 참 교회가 있는 것이다.
참된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다. 성전은 인간을 재생시키는 생명의 물이 나오는 곳이며, 이 물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오는 피이며, 모든 사람은 새롭게 변화시키는 영원한 생명이다. 따라서 성전은 깨끗하고 거룩하게 보존해야 한다. 그런데 오늘의 교회는 어떤가? 겉치장에 급급하지는 않는가? 교회는 대형화되어 가고 경제적인 어려움은 계속되어도 교회는 부유한 이들과 힘있는 이들 중심으로 흘러간다. 이는 성전을 속화시키며 장사하는 곳으로 취급하는 처사인 것이다.
우리 각자는 하느님의 성전이다. 사도 바오로는 말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기초 위에 세워진 성전이다.” 따라서 우리 인격을 거래 대상으로 삼거나 속화시킬 수 없으며, ‘하느님의 성전’인 형제 자매들을 소중하게 대해야 한다. 서로를 사랑으로 존중하며 소중히 대하는 마음과 삶의 태도야말로 성전을 참 성전이게 하는 알맹이이다. 이렇게 실제로 사는 형제자매들이 성전에 함께 모일 때, 바로 그 자리는 공간이나 건물 때문이 아니라 거룩한 그 사람들 때문에 모든 이의 기도와 구원의 자리가 되는 것이다. 세계의 모든 성당이 하나로 일치되고, 지역교회와 보편교회가 일치를 이루는 길은 각자가 애덕 실천을 통하여 살아있는 성전이 될 때 가능한 일임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