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소년범을 혐오합니다.
코로나19 확진, 사흘째 자가 격리 중이다. 덕분에 선거 뒤로 미뤄두었던 드라마 <소년심판>을 차분하게 정주행하였다. 역시 소문대로 잘 만든 좋은 드라마다.
한국 영화, 드라마의 장점은 시대를 담고 있다는 거다. 제목이 <소년심판>이고, 소재가 소년범죄일 뿐, <소년심판>은 소년이 아닌 세상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있다. 한류 드라마가 전 세계에서 박수를 받는 건 그런 보편성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기자들은 영화, 드라마를 만드는 작가, 감독, 기획자들에게 미안해야 한다. 그들 앞에서 부끄러워해야 한다. 기자들이 해야 할 얘기를 그들이 대신하고 있으니까. 기자들이 못하는 얘기를 그들은 하고 있으니까.
드라마 <소년심판>은 이런 얘기다. 만14세 미만의 형사미성년자는 범죄를 저질러도 책임을 물을 수 없어 형법상 범죄가 성립되지 않고 처벌도 받지 않는다. 만10세에서 14세 미만의 소년은 촉법소년으로 분류되어 형사처벌을 받지 않으나 보호처분을 내릴 수 있다.
<소년심판>은 소년범죄를 소재로 다루고 있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촉법소년’들은 범죄를 저질러도 법으로 처벌받지 않는다는 걸 알고 범죄를 저지른다. 마치 법 위의 존재라도 되는 듯이, 치외법권의 특권이라도 있는 듯이.
아, 법도 별거 아니네.
원래 법이 그래, 알잖아.
5년 전보다 애들은 더 악랄해졌어. 그래서 쟤들이 그렇게 된 거야. 우리 같은 판사들 때문에.
소년사건이 속도전이라구요? 그래서 얘들이 저 모양입니다.
왜 부장님은 사명감이 없으십니까?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거꾸로 온 마을이 무심하면 한 아이를 망칠 수 있다.
<소년심판>에 나오는 대사들이다. 그 대사에 소년 대신 특권층을 대입해도 말은 통한다. 판사 대신에 기자를 대입해도 말은 통한다. 제목은 <소년심판>이지만, 드라마는 특권계급의 불법, 편법, 탈법의 부도덕과 몰양심과 이기심을 고발하고 있다.
<소년심판>에는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시험지 유출 사건’도 소대로 등장한다. 시험지 유출이라는 불법행위의 수혜자들은 자신의 부와 지위를 자식들에게 세습하고자 하는 현직 국회의원, 장관, 대학병원 교수, 연예인, 법조인들이다.
<소년심판>에 등장하는, 죄를 저질러도 처벌을 받지 않는 촉법소년들은 바로 그런 특권층이다. 그들은 법을 무시하고 비웃고 조롱하며, 돈과 빽과 지위를 이용하여 법망을 요리조리 빠져다닌다. 그들은 법 위에 군림하며 법을 지배하고 농락한다.
시험지 유출 사건을 파고드는 주인공 판사(김혜수)에겐 압력과 회유와 공작이 따른다. 내가 그 판사라도 타협하거나 굴복했을 것 같은데, 그래도 시험지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해야 한다는 게 상식을 지키기 위해 우리의 주인공은 타협도 굴복도 하지 않는다. 브라보!
<소년심판>은 그런 드라마다. 우리 사회의 진짜 촉법소년들은 룸살롱 접대를 받고도 처벌받지 않는 검사들이다. 대장동 돈잔치에 등장하는 ‘50억 클럽’ 멤버들이다. 사법농단을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는 판사, 정치공작을 하고 선거 개입을 해도 처벌받지 않는 검사, 기자들이다. 특혜를 누리면서 사명감은 없는 엘리트집단이다.
드라마에선 ‘저는 소년범을 혐오합니다’라는 대사가 두 번인가 나온다. 드라마 초반부에 나오는 첫 번째 대사는 차가운 기계음처럼 들려 섬뜩했는데, 드라마 끝 무렵에 나오는 같은 대사는 ‘저는 특권층 범죄를 혐오합니다’로 바뀌어 들렸다.
기자들에게 <소년심판>을 권한다. 우리 기자들을 대신하여 세상의 불의와 부조리를 고발하는 작가, 감독, 기획자들에게 미안하다고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게다가 한류라는 거대한 산업으로 나라 경제의 버팀목이 되어주고 Korea의 국격도 높여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세상은 진화하고 있다는 믿음에 확신을 준 드라마 <소년심판>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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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소년심판 진즉에 보면서... 그래... 참 잘 만들었다... 저런 판사쯤 있어야지...아이들의 나쁜 짓에 법은 어떻게 작용하는지...이젠 제대로
점검할 때... 그럼에도 아이들편에서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믿음 하나 쯤...가지고 있는 판사.. 진짜 있을까?... 선거 전에 봤기에
앞으로 대한민국의 사법정의를 고민하며 나아질꺼란 희망?으로 생각하며 봤었습니다... 참 오늘 날씨 만큼 흐린 마음 언제나 맑아질까 봄이 오는것이 이렇게 망설여 질 줄 몰랐습니다...오징어게임이나 지우학 보다 괜찮은 작품 같아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