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블록은 왜 뒤뚱거리는가/심상숙
신혜순 추천
아현역에서 추계예대까지 보도블록을 걷는다
삼십 리 흙길 어디 가고 팔백 미터 길 뒤뚱거린다
가령, 내 살아남을 그만큼 거리라면
발 아래 보도블록 몇 장이 남은 며칠 같고,
또 견뎌야 할 여러 날이다
갈아엎지 못해 세워둔 겨울배추 두둑처럼
누렇게 얼어붙은 숨 줄기도
하릴없이 얼음 반짝일 때가 있다
쇠심줄보다도 뚝심지고 쓸데없이 질긴 것,
도마 위로 칼을 휘둘러 내리쳐본 이는 안다
간혹
연탄구멍 속에서 소리 없이 흔들리는 제비꽃
어두운 잎새 뒤
지하도 화장실 쪽잠으로 언 겨울을 건너는
울음소리를 내지 않는 사람들,
보잘것없는 인생, 꿈틀거리는 내 발가락이
잠시 따스했을 그 꿈결을 밟는다
낮은 바람에 흔들리는 제비꽃 몇 송이를 건너 뛴다
빗방울 질 저 구름덩이도
멀리 낮아 보이는 산봉우리도
열아홉 그대의 맑은 창호 밖에서
따스한 귀를 걸고
기다리고 있다
시집『흰 이마가 단단하구나』, 중 24페이지
[작가소개]
심상숙시인은 추계예대 문예창작과 졸업(2018) .목포문학 신인상,
김장생문학상 본상, 여성조선 문학상,
2014《시와소금》 신인상 수상. 2018 《광남일보》 신춘문예,
시니어문학상, 예성천 문예대전 입선,《문예바다》공모시선,
시집 『흰 이마가 단단하구나』, 『겨울밤 미스터리』.
목포문학상, 김장생문학상, 여성조선문학상, 김포문학상 수상
'시쓰는 사람들' 동인 ,시포넷동인,
[시향]
이 시는 흔들리는 보도블록을 삶의 불안정한 기반에 대한 은유로 삼아 생존의 시간을 깊이 있게 형상화했습니다. "발 아래 보도블록 몇 장이 남은 며칠 같고"라는 구절은 길을 남은 생의 시간으로 치환하며 존재의 유한성을 환기합니다. 겨울배추, 쇠심줄, 연탄구멍 속 제비꽃은 혹독한 현실에서도 꺾이지 않는 생명력과 인내를 상징하며, 지하도 화장실에서 겨울을 견디는 사람들의 모습은 사회의 가장 낮은 곳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드러냄니다. 마지막의 '열아홉 그대'는 절망을 견디게 하는 기억이자 희망의 상징으로 읽히며, 차가운 도시 풍경에 온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 같습니다. 일상적 사물을 통해 사회적 현실과 인간 존재를 성찰하게 하는 힘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글: 신혜순(시인)
http://www.gimpo.com/news/articleView.html?idxno=1389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