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홍/
영어로 옮길 수 없는 우리말 중에
술 마신 뒷날 뜨거운 해장국에 속 풀면서
시원하다 시원하다
김이 풀풀 나는 목욕탕에 들앉아서도
시원하다 시원하다
거년에 마이애미에서 팔자 없이 두 해를 사신 울 어무이
쉬쉬하며 얻어온 야구방망이만한 소뼈를
냄새도 없이 신기하게 종일 고아
등줄기에 쭉쭉 땀 흘려가며 후룩후룩 들이켜니
눈물나게 시원하다 고향 생각 한 그릇
-시집 ‘가시로 만든 혀’(리토피아)
술마시는 사람들은 안다. ‘술 마신 뒷날 뜨거운 해장국’이 얼마나 시원한지. 신기한 것은 햄버거와 피자에 맛을 들인 초등학생 조차도 뜨거운 국물을 마시면서 “시원하다”고 얘기한다. 그 아이들도 가갸거겨를 배울때 차고 상쾌한 느낌을 시원하다고 배웠을 터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뜨거운 해장에 속 풀’거나, ‘김이 풀풀 나는 목욕탕에 들앉아서’ 시원하다고 얘기하는 세계 유일(?)의 민족이다.
‘세계 속의 한국인’들은 극성스러울 정도로 우리 음식에 집착한다. 미국땅에서 한때 버려졌던 소뼈는 이제 버젓이 수퍼마켓에 진열돼 있다. 짧은 출장길에도 고추장과 햇반, 컵라면을 싸 들고 가는 사람들. 호텔방에서 된장찌개를 끓이다가 쫓겨났다는 얘기까지.
하루 한 끼씩 붉은 고추장 팍 풀어낸 국물을 ‘등줄기에 쭉쭉 땀 흘려가며 후룩후룩 들이켜야’ 비로소 얼굴 표정이 밝아지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로스엔젤레스에서 마이애미까지, 알래스카에서 케이프 타운까지…. 저 많은 대한민국 사람들 다 모아 시원하게 곰탕 한 그릇 끓여낼 때다. 눈물나게 시원한 신화를 다시 써야 할때다.
경향신문〈오광수기자>
첫댓글 문형동선생의 '국물이야기'와 비슷한것 같다. 어른과 어린이 사이의 시원하다의 뜻이 엇갈리는데 이는 시대의 차이인 것 같다. 요즘 곰탕 문화와 인정이라는 것이 사라져가닌 안타까운 것 같다.
역시 한글은 전세계어느나라의 말보다 뛰어난것 같다. 이글을 읽으니까 곰탕이 먹고 싶어진다..
어쩌면 곰탕이 점점 사랴져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