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양파 외 1편
김혁분
양파를 벗기고 있어요
돌아갈 날을 준비한다는 구두의 침묵 앞에서
벗길수록 눈물을 퍼내는 양파는 누구의 날개음일까요
날개 다친 새처럼 어둠을 겹쳐 입은 양말을 벗겨요 양말을 벗기면 양말 속에 양파, 발보다 먼저 눈물이 달려 나오고 껍질을 벗기면 걷기를 멈춘 하얀 발의 양파가 당신을 달고 나와요
한 움큼의 껍질로 말라버린 당신
제발,
두 눈 글썽이게 하는 양파 속에는 숨지 마세요
날마다 굴러떨어지는 심장을 가진 나도 벗겨낼 것 많은
둥글고 커다란 껍질의 겹겹
날개 펴는 당신을 잡으려 늦게 깨는 악몽이 나를 뒤쫓을 때마다 눈물의 스위치를 켜고
한 짝의 구두로 멈춰 골똘해진 짝짝이 날개를 빗겨 내려요
양말 속에 한 겹 날개 위에 한 음,
어디가 아픈 소절인 줄도 모르고 반복해서 당신을 겹쳐 입은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양말 속의 날개
겹겹의 껍질를 벗겨요
껍질 속에 껍질 내 안의 울음을
봉숭아꽃 빛깔의 보름
김혁분
손톱을 깎았다
아버지 기일 날 묻어뒀던 꽃술을 꺼냈다
손가락에 동여매 주던 봉숭아꽃 같은 빛깔의
보름,
그때, 손가락마다 보름달이 뜰 거라고, 달이 뜨면 희소식이 올거라고
아버지 술 냄새가 여름밤의 은하수처럼 엄마의 빈 자리마다 꽉 차 있었다
골목에 아이들이 흩어지고 내가 가리키던 북극성은 손끝에서 지고
손톱 속 보름달이 뜨기도 전에 보름
보름은 가고
화단에 봉숭아꽃이 돌아와 피었다
빈집 가득, 저녁노을이 꽃술 냄새처럼 내려 앉았다
바람 멈춘 여름밤이면 뒤척임이 길어
봉숭아꽃물 손끝에 물들 때까지,
삼베 이불 한 귀퉁이에 봉숭아 꽃물이 들었다
엄마 없이 찾아온 첫 달거리처럼
---박용숙 외, 애지사화집 {멸치, 고래를 꿈꾸다}에서
김혁분 : 충남 보령 출생 2007년『애지』등단 시집『목욕탕에는 국어사전이 없다』『 식물성의 수다』이메일 kimhb121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