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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고자비(登高自卑)
높은 곳에 올라가려면 낮은 곳에서부터 오른다는 뜻으로, 일을 하는데는 반드시 차례를 밟아야 한다는 말이다.
登 : 오를 등(癶/7)
高 : 높을 고(高/0)
自 : 스스로 자(自/0)
卑 : 낮을 비(十/6)
모든 일에 기초가 튼튼해야 함은 말할 필요가 없다. 아무리 높은 고대광실(高臺廣室)이라도 구조물의 무게를 받치기 위한 밑받침이 허술하면 사상누각(砂上樓閣)이다.
기초를 다지려면 차근차근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것은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라는 속담이 잘 나타냈다. 무슨 일이나 시작이 중요하다는 말로 단번에 만족할 수 없다는 '첫술에 배부르랴'란 깨우침도 있다.
높은 곳에 오르려면(登高) 낮은 곳부터 시작해야 한다(自卑)는 이 성어도 똑 같은 뜻을 가졌다. 일을 순서대로 해야 한다는 의미도 있고 높은 지위에 올랐을 때는 겸손해야 함을 이르기도 한다. 여기서 스스로 自(자)는 '~로부터'란 뜻이다.
출처는 공자(孔子)의 손자 자사(子思)의 저작이라는 중용(中庸)이다. 동양 철학의 중요한 개념을 담은 사서(四書)의 하나다. 15장에 실린 내용을 옮겨보면 이렇다.
君子之道(군자지도),
辟如行遠必自邇(비여행원필자이),
辟如登高必自卑(비여등고필자비).
군자의 도란 말하자면 먼 곳을 갈 때 반드시 가까운 곳부터 시작하는 것과 같고, 높은 곳에 오르려면 반드시 낮은 곳부터 시작하는 것과 같다.
함께 나온 행원자이(行遠自邇)도 시작이 중요하다는 같은 뜻의 성어로 사용된다.
비슷한 의미의 가르침은 맹자(孟子)에도 나온다. 유학의 도에 대한 추구는 아래서부터 단계적이고 쉼 없는 노력을 통해 점진적인 성취를 이뤄야 한다고 가르친다. 진심(盡心) 상편에 보인다.
觀水有術 必觀其瀾.
관수유술 필관기란.
물을 관찰할 때는 반드시 물결을 보아야 한다.
流水之爲物也 不盈科不行.
유수지위물야 불영과불행.
흐르는 물은 빈 웅덩이를 채우지 않고는 나아가지 않는다.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에는 더 알아듣기 쉽게 말한다. 64장에 실려 있다.
合抱之木 生於毫末(합포지목 생어호말)
아름드리 나무도 붓털 같은 새싹에서 자라고,
九層之臺 起於累土(구층지대 기어누토)
구층 높은 집도 삼태기 흙부터 쌓고,
千里之行 始於足下(천리지행 시어족하)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한다.
차근차근 기초 대비를 하지 않아 일어나는 대형 사고는 말할 것도 없이 인재라고 욕을 먹는다.
거기에 더해 벼락출세를 한 위인이나 급작스럽게 부를 거머쥐게 된 일부 졸부와 재벌 2세 등이 저지르는 갑질 행태는 밑바닥 고생을 해서 이룬 것이 아니기에 안하무인(眼下無人)이다.
어디서나 기본을 충실히 하면 높이 돼도 무너지지 않고 자만하지도 않는다.
등고자비(登高自卑)
높은 곳에 오르려면 낮은 곳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뜻으로,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는 말이다.
등고(登高)는 높은 곳에 오름의 뜻이고, 자비(自卑)는 낮은 곳에서 시작함, 스스로를 낮춤의 뜻이다. 그러므로 높은 곳에 오르려면 낮은 곳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곧 모든 일은 순서를 밟아야 함을 뜻하거나 지위가 높아질수록 자신을 낮춤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스스로를 낮추는 자가 결국 높은 경지에 오른다.'라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먼저 낮아지면 스스로 높임을 받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중용(中庸) 제15장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君子之道(군자지도)
譬如行遠必自邇(비여행원필자이)
譬如登高必自卑(비여등고필자비)
군자의 도(道)는 비유컨대 먼 곳을 감에는 반드시 가까운 곳에서 출발함과 같고, 높은 곳에 오름에는 반드시 낮은 곳에서 출발함과 같다.
詩經 曰(시경 왈)
妻子好合 如鼓瑟琴(처자호합 여고슬금)
兄弟旣翕 和樂且眈(형제기흡 화락차탐)
宣爾室家 樂爾妻子(선이실가 락이처자)
시경(詩經)에 '처자의 어울림이 거문고를 타듯하고, 형제는 뜻이 맞아 화합하며 즐거웁고나. 너의 집안 화목케 하며, 너의 처자 즐거우리라.'는 글이 있다.
子曰 父母其順矣乎
공자는 이 시를 읽고서 '부모는 참 안락하시겠다.'고 하였다.
공자가 그 집 부모는 참 안락하시겠다고 한 것은 가족간의 화목이 이루어져 집안의 근본이 되었기 때문이니, 바로 등고자비(登高自卑)나 행원자이(行遠自邇)의 뜻에 맞는다는 말이다.
등고자비(登高自卑)란 이와 같이 모든 일은 순서에 맞게 기본이 되는 것부터 이루어 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우리 속담과 뜻이 통한다고 하겠다.
맹자(孟子) 진심편(盡心篇)에서도 군자는 아래서부터 수양을 쌓아야 한다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바닷물을 관찰하는 데는 방법이 있다. 반드시 그 움직이는 물결을 보아야 한다. 마치 해와 달을 관찰할 때 그 밝은 빛을 보아야 하는 것과 같다. 해와 달은 그 밝은 빛을 받아들일 수 있는 조그만 틈만 있어도 반드시 비추어 준다.
流水之爲物也 不盈科不行.
유수지위물야 불영과불행.
흐르는 물은 그 성질이 낮은 웅덩이를 먼저 채워 놓지 않고서는 앞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君子志於道也 不成章不達.
군자지어도야 불성장불달.
군자도 이와 같이 도(道)에 뜻을 둘 때 아래서부터 수양을 쌓지 않고서는 높은 성인의 경지에 도달할 수 없다.
흐르는 물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법이다. 물이 흐르다 구덩이를 만나면 그 구덩이를 다 채운 다음에 앞으로 나아가는 법이다.
건너뛰는 법이 없다. 건너 뛸 수도 없는 것이다. 첩경(捷徑)에 연연하지 말고 우직하게 정도(正道)를 고집하라는 뜻이다.
무슨 문제가 발생하고 나면 그제야 기본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원칙에 충실하라고 주문하기도 한다. 그동안 건너뛰었다는 뜻이다.
군자는 도(道)에 뜻을 둔 이상 경지에 이르지 않는 한 벼슬에 나아가지 않는 법이다.
또 불경(佛經)에 보면, 어떤 사람이 남의 삼층(三層) 정자(亭子)를 보고 샘이 나서 목수를 불러 정자를 짓게 하는데, 일층과 이층은 짓지 말고 아름다운 삼층만 지으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좋은 업(業)은 쌓으려 하지 않고 허황된 결과만 바란다는 이야기다. 학문이나 진리의 높은 경지를 아무리 이해한다 한들 자기가 아래서부터 시작하지 않고서는 그 경지의 참맛을 알 수 없는 것이다.
천리지행시어족하(千里之行始於足下)라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라는 속담으로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에 나오는 경구(警句)이다.
도덕경(道德經) 제63장 중에서
天下難事必作於易(천하난사 필작어이)
아무리 복잡한 일이라도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고,
天下大事必作於細(천하대사 필작어세)
그지없이 큰 일도 지극히 작은 일 때문에 일어난다.
도덕경(道德經) 64장 중에서
合抱之木 生於毫末(합포지목 생어호말)
아름드리 큰 나무도 미세한 씨앗에서 싹이 트고,
九層之臺 起於累土(구층지대 기어누토)
아홉 층 높은 집도 낮은 바탕이 있은 다음에 세워지니,
千里之行 始於足下(천리지행 시어족하)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
작은 싹이 큰 나무로 자라듯이 모든 일은 그 시작이 있으며, 작은 것에서부터 점차 크게 이루어지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므로, 이를 거스르고 억지로 이루려 하거나 집착하면 실패하게 된다는 뜻이다.
여기서 유래하여 천리지행시어족하(千里之行始於足下)는 모든 일에는 시작이 중요하며, 작은 일이 쌓여서 큰 성과를 이루게 됨을 비유하는 고사성어 등고자비(登高自卑)로 사용된다. 우리나라의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라는 속담도 여기서 비롯되었다.
끝으로 성경(聖經) 마태복음 18장 4절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 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는 말씀이 있다.
어린아이 같아야 천국에 들어간다. 어린아이의 의미는 바로 자신을 낮추는 사람 즉, 겸손한 사람을 상징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옛 말에도 스스로를 낮추는 사람만이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다고 했듯이 등고자비(登高自卑)한 사람만이 천국에 들어 갈 수 있다는 의미이다.
또 마태복음 23장 12절에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는 말씀이 있다.
등고자비(登高自卑)라는 의미와 통하는 말씀이라 하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 높임받기를 원하지만 먼저 낮아지려고는 하지 않는다. 낮아지는 것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영어에 '이해하다'라는 단어는 understand로 '아래에 선다'는 의미이다.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하면 상대방의 아래에 서야 된다.
그런데 이해를 넘어 자기가 높임 받기 위해서는 더욱 낮추어야 한다. 자기를 낮출 때 상대방도 이해할 수 있을뿐만 아니라 자기 인격의 폭도 넓어질 수 있을 것이다.
자기를 낮춘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먼저 하고 또한 다른 사람이 버린 것을 줍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한다. 알면서도 잘 실천되지 않았던 부분인데 다시 한번 작은 것부터 시작해 보아야겠다.
그러나 오늘의 우리들은 등고자비, 행원자이의 마음을 잃어버리고 헛된 허세의 욕심에 형제, 친족에 대한 공경과 우애의 마음, 조상과 부모에 대한 공경과 이타적인 정신보다는 처족의 관심과 이해에 쏠려 이기적인 에고이즘(egoism) 정신으로 형식적인 의례로 전락한 무관심과 무시의 대접이 안타깝기만 하다.
등고자비(登高自卑)
새 학기가 시작되면 졸업생이 떠나 허전하던 교정이 신입생의 풋풋한 생기로 가득하다. 호기심과 기대에 찬 눈빛들이 초롱초롱하다.
작은 꿈을 키워 큰 소망을 일구려면 차근차근 한 발 한 발 내딛는 꾸준한 노력과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는 용기가 필요하다.
해방감에 들떠 우왕좌왕 하다가는 자칫 다산(茶山) 선생이 자소(自笑)에서 노래한 것처럼 '답답하고 고달프게 스무 해를 지내다가(圄圄纍纍二十秋), 꿈속에서 조금 얻고 깨고 보니 간 데 없네(夢中微獲覺來收)'의 형국이 되기 쉽다. 공부는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겨우 시작인 것이다.
주자가 말했다. '사람들은 흔히 높은 곳에 이르려 한다(人多要至高處). 하지만 낮은 데로부터 시작할 줄은 모른다(不知自底處).'
누구나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는 싶어 하면서, 막상 가장 낮은 데서부터 차근차근 밟아서 올라갈 생각은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중용에서는 '먼 길을 가는 것은 가까운 데로부터 비롯되고(行遠自邇), 높은 곳에 오르는 것은 낮은 데로부터 출발한다(登高自卑).'고 했다.
박영(朴英)은 대학(大學)의 뜻을 풀이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얕은 데로 말미암아 깊은 데에 이르고(由淺而至深), 성근데서 출발해 촘촘하게 된다(由疏而至密). 작은 것부터 시작해 큰 것에 도달하고(由小而至大), 거친 데서 나아가 정밀함에 다다른다(由粗而至精).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 등급 더 올라간다(進一步則升一級).'
작은 성취에 만족해 몸을 함부로 굴리면 뜻만 거칠어져 거둘 보람이 없다.
다산의 시 한 수를 더 보자. 제목은 우래(憂來)다.
太陽疾飛靃(태양질비확)
銃丸不能追(총환불능추)
無緣得攀駐(무연득반주)
念此腸內悲(염차장내비)
태양 빠르기 새가 나는 듯,
탄환도 따라갈 수가 없다네.
붙들어 멈추게 할 방법이 없어,
생각하자니 내 속만 구슬프구나.
시간은 쏜살같이 흐른다. 보석 같은 시간은 손에 쥔 모래처럼 스르르 빠져나간다. 도취의 꿈에서 깨어 정상을 향해 가는 신발 끈을 고쳐 매야 할 때다. 부족함의 자각에서 공부가 시작된다.
높이 오르려면 낮은 곳에서 출발해야 한다
중학교 1학년 때 국어를 담당하던 여선생님이 작문 숙제를 내줬다. 자유 주제였다. 자기가 쓰고 싶은 글을 형식에 상관없이 써오라고 했다. 잘 쓰고 싶었다. 몇 날을 끙끙댔다. 숙제를 내야 하는 전 날밤엔 늦게까지 책상에 앉아있었다. 평상시와 다른 행동을 눈치챈 아버지가 사정을 듣자 대뜸 "잘 쓰려고 그러는구나" 라고 했다. 이어 "자유 주제가 어렵다. 그래서 엄두가 안 나는 거다"고 했다. '엄두'란 말을 그날 처음 배웠다.
엄두는 한자어 '염두(念頭)'에서 온 말이다. 염두에서 엄두로 변하는 현상을 변음이라고 한다. 한 몸에서 나온 엄두와 염두는 부정적인 의미와 긍정적인 의미로 각기 변했다. 염두는 마음의 속이나 '생각의 맨 처음'이라는 말이다. 우리말처럼 된 엄두는 흔히 부정적인 말과 어울려 쓴다. '감히 무슨 일을 하려는 마음'이라는 뜻이다. '엄두가 안 난다'라는 말은 어떤 일을 시도하기가 두렵거나 어려운 경우에 쓴다. '엄두 나기'는 조선 시대에 쓰던 말로, '엄두'와 '나다'라는 두 단어가 합쳐진 말이다.
아버지는 글 쓰는 엄두가 나지 않는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했다. "첫 번째는 두려움 때문이다. 실패하거나, 실망하거나, 상처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두 번째는 부족함이다. 네가 능력이 부족하다고 느끼면 도전하기 어렵다. 성공할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네가 글을 써본 일이 없을 테고 쓴 글이 없으니 실패한 적이 없어 글쓰기가 두려운 것은 아니라고 아버지는 지적했다. "네가 잘 쓰려는 마음이 엄두가 나지 않게 하는 원인이다"고 진단했다.
엄두가 나지 않는 이유를 이해하면, 극복하기 쉽다고 전제한 아버지는 "두려움은 정면으로 맞서 극복해야 한다. 네가 앓고 있는 부족함은 능력을 개발하고, 자신감을 키워가는 노력으로만 극복할 수 있다"고 방안을 제시했지만, 그때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날 아버지는 "아마추어 사진사는 내가 찍을 저 피사체가 걸작이 될까 망설이다 기회를 놓치고 만다. 프로는 찍어야 할 상황이면 셔터를 먼저 눌러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는다. 사진을 펼쳐놓고 나중에 걸작을 고른다"며 생각을 멈추고 먼저 시작하기를 권했다.
아버지는 "뭘 쓸지 목표를 정해라. 큰 목표는 두려움을 더 크게 느끼게 만들 수 있다. 작은 목표부터 시작해 점차 목표를 키워가는 게 좋다. 목표가 정해졌으면 '나는···'으로 시작해라" 라고 구체적으로 일러주며 "엄두가 나지 않으면 작은 일을 염두에 둬라"고 했다.
이튿날 숙제를 검사하던 선생님이 '잘 썼다'고 칭찬하며 내 작품을 낭독하라고 했다. 아버지가 가르쳐준 대로 '내가'로 시작한 작문은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서로 다른 점을 느낀 대로 쓴 글이었다. 처음 입은 교복이며, 한자로 된 명찰, 훨씬 큰 학교, 과목마다 다른 선생님이 가르치는 일 등을 겪은 대로 썼다. 익숙해지지 않아 많이 힘들었지만, 초등학교 때 익숙했던 교정에서 밟던 눈, 느티나무 등이 거기에도 똑같이 있어 친구가 돼줘 낯설지 않았다는 글이었다.
집에 돌아와 선생님이 훌륭한 글이라는 칭찬을 했다는 얘기를 궁금해하는 아버지에게 바로 자랑했다. 그때 아버지가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며 가르쳐준 고사성어가 '등고자비(登高自卑)'다. 중학교 들어가 처음 배운 고사성어다. 높은 곳에 오르려면 낮은 곳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뜻이다.
다시 검색해보니 중용(中庸) 제15장에 나온다. "군자의 도(道)는 비유하자면, 먼 곳을 감에는 반드시 가까운 곳에서 출발함과 같고, 높은 곳에 오름에는 반드시 낮은 곳에서 출발함과 같다"는 말이다. 모든 일은 순서에 맞게 기본부터 이루어 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그날 아버지는 "남의 삼 층 정자를 보고 샘이 난 사람이 목수를 불러 일 층과 이 층은 짓지 말고 아름다운 삼 층만 지으라고 했다는 일화가 불경에 나온다"며 "공부는 물론 모든 일이 다 마찬가지다. 허황한 결과만을 공상하면 그 어느 것도 이룰 수 없다. 모름지기 낮은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무슨 일을 하기 위해 엄두를 내려면 자신이 가진 능력을 믿는 게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얼마일지도 모르는 자신의 능력을 믿으면, 두려움을 극복하고 시도해볼 힘을 얻을 수 있다. 꾸준하게 애써 나를 믿는 자신감은 온전하게 자신이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인성이다. 손주들에게도 반드시 물려줘야 할 성품이다.
▶️ 登(오를 등)은 ❶회의문자로 발을 들어 올리고(필발머리; 癶; 걷다, 가다) 제사에 쓸 그릇(豆)을 높은 곳에 올려 놓는다는 뜻이 합(合)하여 오르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登자는 ‘오르다’나 ‘나가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登자는 癶(등질 발)자와 豆(콩 두)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豆자는 제기 그릇을 그린 것이다. 그런데 登자의 갑골문을 보면 제기 그릇 위로는 癶자가, 아래로는 그릇을 받들고 있는 양손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신에게 바칠 음식을 들고 제단 위로 올라가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소전에서는 제기 그릇을 들었던 양손이 생략되면서 지금의 登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登(등)은 (1)오랜 옛날에 쓰던 그릇의 한 가지. 질로 만들며 굽이 높고 모양이 두(豆)와 같음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오르다 ②나가다 ③기재하다 ④익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도울 우(右), 오를 승(陞), 오를 척(陟), 오를 양(敭), 오를 승(昇), 오를 등(騰),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덜 손(損), 덜 감(減), 내릴 강(降), 떨어질 락/낙(落)이다. 용례로는 소설이나 영화 또는 무대 등에서 나옴을 등장(登場), 문서에 올림을 등록(登錄), 학교에 출석함을 등교(登校), 서적 또는 잡지 등에 올려 적음을 등재(登載), 산에 오름을 등산(登山), 인재를 골라 뽑아 씀을 등용(登用), 원의 이름이 붙는 곳에 출석하거나 출두함을 등원(登院), 임금의 지위에 오름을 등극(登極), 매우 높거나 험한 산 따위를 오름을 등반(登攀), 곡식이 잘 여묾 또는 그런 해를 등세(登歲), 과거에 급제함을 등과(登科), 산 따위의 정상에 오름을 등정(登頂), 배에서 육지에 오름을 등륙(登陸), 배에 오름을 등선(登船), 즉시나 죄를 범한 그때 그 자리를 등시(登時), 높은 곳에 오름을 등고(登高), 용문에 오른다는 뜻으로 뜻을 펴서 크게 영달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등용문(登龍門), 높은 곳에 올라가려면 낮은 곳에서부터 오른다는 말로 일을 하는데는 반드시 차례를 밟아야 한다는 말을 등고자비(登高自卑), 군자는 높은 산에 오르면 반드시 시를 지어 회포를 푼다는 등고능부(登高能賦), 누상에 오르게 하여 놓고 오른 뒤 사다리를 치워 버린다는 뜻으로 처음에는 이롭게 하는 체하다가 뒤에 어려운 처지에 빠지게 함을 등루거제(登樓去梯), 태산에 오르면 천하가 작게 보인다는 말로 큰 도리를 익힌 사람은 사물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등태소천(登泰小天), 죄를 저지른 그때 그 자리에서 곧 잡음을 등시포착(登時捕捉) 등에 쓰인다.
▶️ 高(높을 고)는 ❶상형문자로 髙(고)의 본자(本字)이다. 성의 망루의 모양으로 높은 건물의 뜻이다. 후에 단순히 높음의 뜻이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高자는 ‘높다’나 ‘크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高자는 높게 지어진 누각을 그린 것이다. 갑골문에 나온 高자를 보면 위로는 지붕과 전망대가 그려져 있고 아래로는 출입구가 口(입 구)자로 표현되어있다. 이것은 성의 망루나 종을 쳐서 시간을 알리던 종각(鐘閣)을 그린 것이다. 高자는 이렇게 높은 건물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높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지만 높은 것에 비유해 ‘뛰어나다’나 ‘고상하다’, ‘크다’와 같은 뜻도 파생되어 있다. 高자는 부수로 지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상용한자에서는 관련된 글자가 없다. 그래서 高(고)는 (1)높은을 뜻함 (2)높이 또는 어떤 일을 한 결과 얻어진 양을 뜻함 (3)높이 (4)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높다 ②뛰어나다 ③크다, ④고상하다 ⑤존경하다 ⑥멀다 ⑦깊다 ⑧비싸다 ⑨뽐내다 ⑩높이, 고도(高度) ⑪위, 윗 ⑫높은 곳 ⑬높은 자리 ⑭위엄(威嚴)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윗 상(上), 높을 항(亢), 높을 탁(卓), 높을 교(喬), 높을 준(埈), 높을 존(尊), 높을 아(峨), 높을 준(峻), 높을 숭(崇), 높을 외(嵬), 높을 요(嶢), 높을 륭/융(隆), 밝을 앙(昻), 귀할 귀(貴),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아래 하(下), 낮을 저(低), 낮을 비(卑)이다. 용례로는 높은 지위를 고위(高位), 비싼 값을 고가(高價), 나이가 많음을 고령(高齡), 아주 빠른 속도를 고속(高速), 등급이 높음을 고급(高級), 뜻이 높고 아담함을 고아(高雅), 높고 낮음을 고저(高低), 몸가짐과 품은 뜻이 깨끗하고 높아 세속된 비천한 것에 굽히지 아니함을 고상(高尙), 상당히 높은 높이를 가지면서 비교적 연속된 넓은 벌판을 가진 지역을 고원(高原), 인품이나 지위가 높고 귀함을 고귀(高貴), 여러 층으로 높이 겹쳐 있는 것 또는 상공의 높은 곳을 고층(高層), 등급이 높음이나 정도가 높음을 고등(高等), 술을 좋아하여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고양주도(高陽酒徒), 지위가 높은 큰 벼슬자리를 고관대작(高官大爵), 높은 산과 흐르는 물을 고산유수(高山流水), 베개를 높이 하고 누웠다는 고침이와(高枕而臥), 베개를 높이 하여 편안히 잔다는 고침안면(高枕安眠), 높은 언덕이 골짜기가 된다는 고안심곡(高岸深谷), 높은 누대와 넓은 집이라는 고대광실(高臺廣室) 등에 쓰인다.
▶️ 自(스스로 자)는 ❶상형문자로 사람의 코의 모양을 본뜬 글자로, 사람은 코를 가리켜 자기를 나타내므로 스스로란 뜻으로 삼고 또 혼자서 ~로 부터 따위의 뜻으로도 쓰인다. 나중에 코의 뜻에는 鼻(비)란 글자가 생겼다. ❷상형문자로 自자는 ‘스스로’나 ‘몸소’, ‘자기’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自자는 사람의 코를 정면에서 그린 것으로 갑골문에서는 코와 콧구멍이 그대로 묘사되어 있었다. 그래서 自자의 본래 의미는 ‘코’였다. 코는 사람 얼굴의 중심이자 자신을 가리키는 위치이기도 하다. 우리는 보통 나 자신을 가리킬 때는 손가락이 얼굴을 향하게끔 한다. 이러한 의미가 확대되면서 自자는 점차 ‘자기’나 ‘스스로’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自자가 이렇게 자신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면서 지금은 여기에 畀(줄 비)자를 더한 鼻(코 비)자가 ‘코’라는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自(자)는 어떤 명사(名詞) 앞에 쓰이어 ~부터, ~에서(~서)와 같은 뜻을 나타내는 한자어. 시간이나 공간에 관한 낱말 앞에 쓰임의 뜻으로 ①스스로, 몸소, 자기(自己) ②저절로, 자연히 ③~서 부터 ④써 ⑤진실로 ⑥본연(本然) ⑦처음, 시초(始初) ⑧출처(出處) ⑨코(비鼻의 고자古字) ⑩말미암다, ~부터 하다 ⑪좇다, 따르다 ⑫인하다(어떤 사실로 말미암다) ⑬사용하다, 쓰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몸 기(己), 몸 신(身),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다를 타(他)이다. 용례로는 제 몸을 자신(自身), 남의 구속을 받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함을 자유(自由), 제 몸 또는 그 자신을 자체(自體), 저절로 그렇게 되는 모양을 자연(自然), 제 몸이나 제 자신을 자기(自己), 자기 목숨을 스스로 끊어서 죽음을 자살(自殺), 스스로 자기의 감정과 욕심을 억누름을 자제(自制), 스스로 그러한 결과가 오게 함을 자초(自招), 스스로 움직임을 자동(自動), 제 스스로 배워서 익힘을 자습(自習), 자기 일을 자기 스스로 다스림을 자치(自治), 스스로의 힘으로 생계를 유지함을 자립(自立), 자기의 능력이나 가치를 확신함을 자신(自信), 남에게 굽히지 않고 자기 몸이나 마음을 스스로 높이는 마음을 자존심(自尊心), 어떤 일에 대하여 뜻한 대로 이루어 낼 수 있다고 스스로의 능력을 믿는 굳센 마음을 일컫는 말을 자신감(自信感), 스스로 나서서 하는 모양을 일컫는 말을 자발적(自發的), 자기의 언행이 전후 모순되어 일치하지 않는다는 말을 자가당착(自家撞着), 자신을 스스로 해치고 버린다는 뜻으로 몸가짐이나 행동을 되는 대로 취한다는 말을 자포자기(自暴自棄), 스스로 힘을 쓰고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 쉬지 아니한다는 말을 자강불식(自强不息), 자기가 그린 그림을 스스로 칭찬한다는 뜻으로 자기가 한 일을 자기 스스로 자랑함을 이르는 말을 자화자찬(自畫自讚), 자기가 일을 해놓고 그 일에 대하여 스스로 미흡하게 여기는 마음을 일컫는 말을 자격지심(自激之心), 물려받은 재산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일가를 이룸 곧 스스로의 힘으로 사업을 이룩하거나 큰 일을 이룸을 일컫는 말을 자수성가(自手成家), 자기의 줄로 자기를 묶다는 뜻으로 자기가 자기를 망치게 한다는 말이다. 즉 자기의 언행으로 인하여 자신이 꼼짝 못하게 되는 일을 일컫는 말을 자승자박(自繩自縛), 잘못을 뉘우쳐 다시는 그런 잘못이 없도록 함을 이르는 말을 자원자애(自怨自艾), 처음부터 끝까지 이르는 동안 또는 그 사실을 일컫는 말을 자초지종(自初至終), 스스로 묻고 스스로 대답한다는 뜻으로 마음속으로 대화함을 이르는 말을 자문자답(自問自答), 제 뜻이 항상 옳은 줄로만 믿는 버릇이라는 뜻으로 편벽된 소견을 고집하는 버릇을 이르는 말을 자시지벽(自是之癖) 등에 쓰인다.
▶️ 卑(낮을 비)는 ❶회의문자로 痺(비)와 통자(通字)이다. 왼 손(十, 십)에 어떤 물건을 들고 있는 모양으로, 중국에선 왼손을 천하게 여겨, 그것은 신분이 천한 사람이 하는 일이므로 전(轉)하여 천하다의 뜻이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卑자는 '낮다'나 '천하다', '비루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卑자는 이외에도 다양한 뜻이 있는데, 대부분이 신분이 낮다는 것을 뜻한다. 卑자의 갑골문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갑골문에 나온 卑자를 보면 又(또 우)자와 田(밭 전)자가 결합해 있었다. 이것은 큰 부채를 들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이렇게 큰 부채는 시종이 주인을 모실 때 사용하던 것이다. 그래서 卑자는 부채를 들고 있는 시종의 신분이 낮다하여 '낮다'나 '천하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卑(비)는 ①낮다 ②왜소하다 ③낮추다 ④겸손하게 대하다 ⑤천하다 ⑥천하게 여기다 ⑦비루하다(鄙陋; 행동이나 성질이 너절하고 더럽다) ⑧저속하다(低俗; 품위가 낮고 속되다) ⑨쇠하다 ⑩가깝다 ⑪~으로 하여금 ~하게 하다 ⑫낮은 곳, 낮은 데 ⑬신분, 지위 등이 낮은 사람 ⑭현(縣)의 이름 ⑮나라의 이름 ⑯부끄러워하는 모양 ⑰힘쓰는 모양 ⑱하여금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아래 하(下),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윗 상(上), 높을 존(尊), 높을 고(高)이다. 용례로는 비열하고 겁이 많음을 비겁(卑怯), 성품이나 하는 짓이 천하고 용렬함을 비열(卑劣), 낮고 천한 풍속을 비속(卑俗), 땅이 낮음이나 지위가 낮음 또는 스스로를 낮춤을 비하(卑下), 비겁하여 용기가 없고 품성이 천함을 비굴(卑屈), 지체가 낮고 천함을 비천(卑賤), 흔히 보고 들을 수 있을 만큼 알기 쉽고 실생활에 가까움을 비근(卑近), 보잘것없이 작음을 비소(卑小), 점잖지 못하고 천한 말을 비어(卑語), 항렬이 낮은 사람과 나이가 어린 사람을 비유(卑幼), 자기 의견의 겸칭을 비견(卑見), 비천함과 고귀함을 비고(卑高), 낮은 벼슬아치 또는 관리가 자기를 낮추어 일컫는 말을 비관(卑官), 자기 가문의 낮춤말을 비문(卑門), 비루한 행위를 비행(卑行), 지체가 낮고 천함을 비미(卑微), 격이 낮고 박함을 비박(卑薄), 땅바닥이 낮고 습기가 많음을 비습(卑濕), 낮추어 일컬음을 비칭(卑稱), 높은 곳에 올라가려면 낮은 곳에서부터 오른다는 뜻으로 일을 하는데는 반드시 차례를 밟아야 한다를 이르는 말을 등고자비(登高自卑), 남자는 높고 귀하게 여기고 여자는 낮고 천하게 여긴다는 뜻으로 사회적 지위나 권리에 있어 남자를 여자보다 존중한다를 이르는 말을 남존여비(男尊女卑), 눈은 높으나 손은 낮음이란 뜻으로 눈은 높으나 실력은 따라서 미치지 못함 또는 이상만 높고 실천이 따르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안고수비(眼高手卑), 관리는 높고 귀하며 백성은 낮고 천하다는 사고 방식을 이르는 말을 관존민비(官尊民卑), 하늘은 높아도 능히 낮은 곳의 일을 모두 알아 듣는다를 이르는 말을 천고청비(天高廳卑), 스스로 자기를 낮춤을 일컫는 말을 자가비하(自家卑下), 낮은 지위에 있으면서 윗사람의 정치를 이렇다 저렇다 비평한다를 이르는 말을 위비언고(位卑言高)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