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포브스에 아시아 최고의 기부왕으로
선정된 분이 있습니다.
"평생 거지 같이 벌어서
천사처럼 쓰겠다."고
악착같이 10개의 계열사를 만들어서
평생 모은돈 1조7,000억원을
기부하신 분입니다
1958년부터 프라스틱을 주워서
양동이를 만들기 시작하신 분
2002년에는
관정 장학 재단을 만들어서
매년 2,000명이상에게
장학금을 지급하신 분 .
그 선생이 관정 이종환 회장님입니다.
평생 모은 재산 1조7000억원을
장학 재단에 기부한 관정(冠廷)
이종환 삼영화학그룹 명예회장이
13일 오전 1시 48분, 100세의 나이로
서울대병원에서 별세했습니다.
그는 일찍이 장학재단을 만들어 매년
국내외 명문대 재학생 1,000명
안팎으로 150억원 정도를 지급했습니다.
이렇게 지급한 장학생이
23년간 1만2000여 명,
금액으로 2700억원입니다.
박사학위를 받은 장학생만
750여 명입니다.
2012년엔 600억원을 기부해
서울대 전자도서관을 지어줬습니다.
서울대 사상 최다액 기부자이기도 합니다.
말년에 ‘한국의 노벨상’을 만들고 싶어했고,
생전에 한국인 노벨상 수상자를
보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관정 이종환 회장님 아니 선생님!
그의 교육재단은 13일 아침
이종환 명예회장이 노환으로
별세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불과 3주 전까지도
김해·밀양·구미에 있는 공장을 다니던
현역 CEO였습니다.
재단 측은 이 명예회장을
‘세계 최고령 100세 CEO’로
등재하기 위해 기네스북 본사와
협의하던 중이었습니다.
1923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난 그는
마산고를 졸업한 뒤,
1944년 일본 메이지대 경상학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1945년 일본 측
학도병으로 끌려가 소련·만주 국경과
오키나와를 오가며 사선을
넘나 들기도 했습니다.
이 회장은 해방 후 “두 번째 인생을 산다”며
부국강병에 기여하는 기업을 만들겠다고 나섰습니다.
1958년 플라스틱이 신문물로 인기를 끌던 당시, 플라스틱 사출기로 컵·바가지 등을 만들어 팔면서 큰돈을 벌었습니다.
이후 포장용 필름과 콘덴서용 필름을
국내에서 처음 개발해 수출에 기여했습니다.
1970년대 국내 유일 애자
(전봇대 등에 설치하던 절연용 지지물)
생산업체인 고려애자공업을 키웠습니다.
이후 삼영중공업 등 16 개의 회사를 거느리는 삼영그룹까지 만들었습니다.
그는 2000년 설립한
관정 이종환 교육재단에 자신의
재산 대부분을 쏟아 부었습니다.
목적은 ‘일류 인재 육성’이었습니다.
1980년대 미국 유학을 보냈던
둘째 아들이 난치병으로 꿈을 피우지 못하자,
‘일류 인재 육성’을 평생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는 “우리가 가진 건 사람밖에 없습니다.
사람을 키워야 합니다.
노벨상 수상자를 키워내자”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2015년엔 국내 최초 ‘1조원 장학재단’이 됐습니다.
이 명예회장은 최근까지도 남아 있던
자투리 재산인 부동산·현금 등
300억여원을 정리해 재단에 넣었다고 합니다.
그가 기부한 금액은 그사이
부동산 가치 등이 오르면서
총 1조7000억원이 됐습니다.
개인이 설립한 재단으로는 아시아 최대 규모입니다.
그는 평소 “돈을 벌 때는 천사처럼 벌 순 없지만, 쓸 때는 천사처럼 쓰련다”는 말을 했습니다.
‘공수래(空手來), 만수유(滿手有),
공수거(空手去)’라는 말도 스스로 만들었습니다.
“인생은 빈손으로 와서
그냥 빈손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손에 가득 채운 뒤에 그것을 사회에 돌려주고 빈손으로 가는 것”이란 의미입니다.
평소 자장면이나 된장찌개를 주로 먹으면서
근검절약을 몸소 실천, ‘자장면 할아버지’로도 불렸습니다.
그의 건강 비결은 절주와 규칙적인 생활입니다.
60~70대부터는 모든 식사에
드레싱이 없는 야채를 먼저 먹었고,
술은 하루에 와인 한 잔을 넘기지 않았습니다.
90대 중반까지 골프를 즐겼던
‘에이지슈터’(age shooter·한 라운드를
자신의 나이 이하 타수로 마치는 사람)였습니다.
그는 눈을 감기 전 가족과 지인들에게
“정도(正道)를 지켜라.
결국 정도가 이긴다.
재단을 영속되게 잘 운영해달라”는
유훈을 남겼다고 합니다.
또 그는 “용서할 줄 아는 삶을 살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장남 이석준 삼영화학 회장은
“아버지 뜻을 잘 받들겠다”고 말했다고
재단 관계자는 전했습니다.
내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무엇을 웅켜쥐려 하는가.
모두를 남겨두고 가야 하는데.
우리는 모든것이 내것인냥 착각하며 삽니다.
바보같이!
" 환절기 체온 유지에 신경 쓰십시요. "
삶과 죽음의 체온 차이를 알아보았더니, 체온으로 따져 본 삶과 죽음의 거리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1년 365일에 점(.) 하나 찍어 36.5도가 정상체온이고, 1.5도 더 떨어진 35도가 암세포가 가장 왕성하게 증식하는 온도라 합니다.''
저는 이 사실을 여태 눈여겨 살피고 살아오지 못했습니다.
정상체온 36.5도를 기준으로 체온이 내려갈 때마다 어떤 일이 생길까요?
0.5도가 내려가 36도가 되면 몸이 떨리는 증세가 나타납니다.
체온을 회복하기 위해 뇌가 근육에 수축 명령을 내리기 때문이랍니다.
이 온도만 되어도 의학적으로는 ''저체온증''이라고 부르는데, 현대인 대부분이 이 상태에 있답니다.
그런데도 늘 추위를 느끼거나 몸이 떨리지 않는 것은 그 상태가 만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은 없을지라도 몸이 최대치의 활력을 내지 못하는 상태라 합니다.
1도가 떨어져 35.5도가 되면 소변량이 줄어들고 만성 변비가 됩니다.
또한 심혈관, 호흡기계, 소화기계, 비뇨기 및 생식기관에 이상이 발생 한다고 합니다.
1.5도가 떨어진 35도는 암세포가 가장 왕성하게 증식하는 온도랍니다.
면역계가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게 되어 자가치료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암세포가 활개를 치게 된답니다.
실제 암환자들 중에는 체온이 35도 수준인 사람이 무척 많답니다.
2.5도가 더 떨어진 34도는 한계 체온이라고 부릅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게 되는 온도로, 예컨데 물에 빠진 사람이 구조됐을 때 이 온도를 보인다면 살아나거나 사망할 확률이 반반이랍니다.
3.5도가 떨어진 33도는 동사하기 직전, 환각 상태에 이르렀을 때의 체온이랍니다.
헛것을 보게되고 발음을 제대로 하지 못하며 몸의 균형을 잃게 된답니다.
6도가 떨어지면 의식을 잃게되고, 7도가 떨어지면 동공이 확대되며, 9도가 떨어지면 숨이 멈추게 됩니다.
이처럼 삶과 죽음은 체온으로 볼 때 그 거리는 ''10도''도 되지 않습니다.
체온이 조금 낮아진다고 해서 금방 생명이 위태로워 지는 것은 아니지만, 지속적인 저체온 상태에 있으면 몸의 각 부위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해 큰 병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랍니다.
그래서 귄해드립니다.
매일 常溫의 물 2리터 이상을 마시고 체온을 1도 올려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삶에서 제일 소중한게 ''건강''이라 합니다.
차가운 물보다는 따뜻한 물이 건강에 좋다 하고 정상체온 유지를 위해 보온에 신경 쓰셔야 할 것으로 믿습니다.
몸을 따뜻하게 유지하시고 맑고 밝은 생활을 영위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