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개인이 사회로부터 비난 또는 질책을 받고 소외되는 것은 그가 사회의 관습과 법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이유들은 자기 중심적 사고와 순간적 이익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한편 집단적으로 어떤 단체나 조직이 사회로부터 비난과 조소를 받는 것은 그 집단이 범죄를 일으키지 않더라도 그 조직의 문화가 기존 사회와의 문화와 충돌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문화 충돌'이라는 사회 용어로 표현한다. 예를 들면, 이민자와 기존 주민 간의 갈등이 언어, 종교, 생활방식의 차이로 발생할 수 있다. 또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가 가족관, 직업관, 결혼관 등에서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다. 그렇다면 1세기 그리스도인들이 로마 사회로부터 비난받고 갈등을 일으키며 모진 박해를 당한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종교적 차이로 인한 문화 갈등이 아니다. 로마 사회는 종교에 대해서 비교적 관대한 태도를 취했다. 어떤 종교를 믿더라도 로마의 법을 따르는 한, 관대하게 대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받는 이유는 현대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날 수 있는 문제인데 그것은 바로 정치 권력을 인정하지 않고 심지어는 그 권력을 전복하려는 시도가 있을 때, 이것은 전혀 넘어갈 수 있는 이유가 되지 않는다. 가령, 북한의 사회주의를 찬양하고 김일성 체제를 옹호한다 하더라도 현 권력체제인 김정일 정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이는 제거 대상 0순위인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의 핵심 사상은 로마가 지상의 권력이 아니라, 그리스도라는 다른 인물에 의해서만 이 땅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정치가 이루어진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크리스챤의 핵심 내용이다. 자기 권력을 인정하지 않고 다른 권력을 들먹이는 자들 만큼 제거 대상이 되어야 할 집단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크리스챤은 한편으로 매우 온건하며 사랑의 공동체였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더욱 눈의 가시가 되었을 것이다. 쉽게 말하면 "너네들이 잘난 척하며 뭔가 이룰 듯이 행동하는 데 과연 너희들의 뜻대로 되는지 두고 보자"는 식이 된 것이다. 그래서 박해가 극에 치달아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이 받는 사자와의 격투장에 구경거리가 된 것이다. 이러한 박해를 견디게 한 힘은 그들이 그들의 희망인 그리스도의 왕국이 곧 세워질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믿음은 불학실한 추측이 가미되어 있기는 하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을 때는 도박보다 훨씬 큰 희망을 일으키고 도파민을 생성하게 만든다. 세월이 흐르자 박해도 희망도 모두 약화되었다. 박해는 박해대로 그것이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며, 크리스챤의 희망은 불확실한 추측에 의존한 만큼 그것이 문자 그대로 실현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서로 적이었던 그들은 마침내 화합을 이루게 된 것이다. 크리스챤은 원래의 희망을 수정하여 로마를 그들의 왕국으로 인정하게 되었고, 로마는 기독교를 국교화 시킨 것이다. 이것이 세계가 진행되는 변증법적 방식이라 볼 수 있다. 상호 간에 오류와 모순을 찾아내어 그것들을 보완해가는 방식으로 세계는 진행하는 것이다. 문자 그대로 하늘 어딘가에 예수가 실제로 살아 있는 것도 아니므로, 예수가 이땅에 다시 와서 왕국을 세우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의미가 있다. 그 의미를 가능한 한 폭넓게 잡을 때, 진실에 가까워진다. 그 진실은 세계가 정의와 공의가 충만하며, 평화와 사랑이 가득한 사회로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1세기 크리스챤이 가졌던 상징과 은유적 희망을 또 다른 은유와 상징으로 바꿀 필요는 없다. 그것의 의미를 실현시키고자 한다면, 은유와 상징의 의미를 발견하여 그것을 현실로 환원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지 동화적 이야기를 또 다른 만화의 세계로 변형시킨다고 해서 이루어질리는 만무하다. 1914년에 하늘 왕국이 설립되고 예수가 그 왕국의 왕으로 임명되었다는 이야기는, 동화가 만화로 바뀐데 불과한 것이지 동화 속에 담긴 의미를 실천하려는 노력은 아닌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