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국민학교(나는 늘 초등학교보다 국민학교가 더 친숙하다. 옛날에 어른들이 ‘소학교’ 운운했듯이) 친구 넷과 술자리를 했다. 2차까지 마치고 큰 길로 나왔는데 편의점이 있길래 누군가 파라솔 테이블에서 음료수든 맥주든 간단히 목을 축이고 가자고 했다. 나와 한 친구가 편의점에 들어가서 마실 것과 가벼운 안주를 고르던 중 무척이나 반갑게도 진열대에 이런 것이 눈에 띄었다.
안주거리는 아니지만 회자거리는 될 것 같아 재미로 샀다. 800원. 예상대로 모두 한 마디씩 했다.
“옛날에는 집에서도 다 이거 썼어.”
“옥수수 삶을 때 이거 조금 넣으면 맛있다.”
“강냉이나 튀밥에 어디 설탕 썼냐. 이거지.”
“그럼. 설탕 암만 넣어봐야 그 맛이 안 나지.”
“당원이라고 알약처럼 생긴 것도 있었는데 생각나냐?”
집에 가지고 가서 마눌에게 보여주니 깍두기 담글 때 조금 넣으면 감칠 맛이 난다나.
몇 달 전 한겨레신문 음식관련 칼럼에 실렸던 이야기. 대충 기억을 되살린 것이라 디테일은 좀 다를 수 있다.
줄 서서 기다렸다 먹는 된장찌개를 파는, 한 할머니가 운영하는 소문난 식당이 있어 칼럼을 쓴 여기자가 찾아가서 찌개를 맛있게 먹었다. 집에서도 먹어볼 요량으로 그 식당의 된장을 얻었든지 샀든지 하여튼 좀 구해다가 같은 재료를 준비하여 몇 차례 끓였는데 식당에서 먹던 맛이 나오지 않았다. 도리 없이 ‘할머니 손맛’이란 게 정말로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식당에 다시 가서, 집에서 만들어 봤는데 도저히 이 맛이 나오지 않는다고 하니 할머니 왈, “보글보글 끓을 때 미원을 넉넉히 넣고 한번 더 끓여야지” 하더란다. 기자는 할 말을 잊었다. 속으로 그랬겠지. 결국 그게 비결이란 말에요?
오래 전 직장동료들과 동원예비군훈련을 받을 때였다.
누군들 그 지겹던 대한민국 육군의 ‘짬밥’ 맛을 고스란히 다시 겪고 싶으랴. 식사시간에 제각기 가져온 밑반찬들을 꺼내놓는데 한 동료가 미원 봉지를 내놓았다. 좀 웃긴다 싶었지만 나도 약간 얻어서 국에 뿌렸더니 맛이 확연히 달라졌다. 군대음식이 사제(私製)음식에 한결 가까워진 것.
아주 어릴 적 어머니가 음식 만들 때 화학조미료를 쓰는 것을 보고 왜 그걸 넣느냐고 물었더니 그래야 맛있다는 당연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어머니가 조미료를 넣기 전의 국 맛과 넣은 후의 국 맛을 보여주었다. 맛이 달라지는 것이 신기하여 조미료를 손에 조금 뿌려 혀를 대보았고, 느끼한 이걸 조금 넣는데 전체 국 맛이 이렇게 달라질까,라는, 化學을 모르는 어린애다운 의문이 들었었다.
내가 시골에서 산 적이 없고 집은 비록 넓지 않았지만 내 어머니도 여느 어머니들처럼 손수 된장, 간장, 고추장을 담갔다. 된장이 맛있어서 친척들에게 퍼주기도 했고, 특히 빨갛게 담근 무말랭이는 정말 맛이 좋았다. 무를 썰어 하나하나 실에 꿰서 주렁주렁 처마 밑에 말린다든가, 보리를 사서 엿기름을 고아 만든 조청을 사용하는 등 당신 손으로 모든 과정을 준비하고 거쳤다. 사촌들이나 친구들은 ‘나중에 장가가서 색시 데리고 올 테니 무말랭이 만드는 걸 꼭 가르쳐 주시라’고 했다.
정성을 들여 만든 된장으로 끓인 찌개는 사먹는 것과 맛이 확실히 다르다. 잘 만든 조선간장이 들어간 국의 깊은 맛은 식품회사의 간장이나 맛소금으로 간을 낸 국의 맛과 천양지차다. 밖에서 사먹는 경우라 하더라도 가끔 허름한 식당이나 시장 좌판에서, 텁텁하고 때깔이 거친 고추장을 넣고 비빈 보리밥이나 값싸고 투박한 손칼국수를 먹으면서 향수를 느끼는 것은 常情일 것이다.
하지만, 처음 예를 들었던 할머니식당의 된장찌개 기사를 마눌에게 보여주니 읽고 나서, “사실 우리 엄마들 미원 많이 썼지, 뭐. 김장할 때도 미원 다 넣었어.”라고 하는데 나 역시 절대로 부인할 수 없다. 그러니 간혹 우리가, 옛날 어머니나 할머니가 해주던 맛이 안 난다고 할 때, 조금 더 배우고 여건이 좋아진 요즘의 아내들이 미원이나 뉴슈가를 안 쓰고 다시다나 설탕을 가능한 적게 넣고 만든 음식을 먹으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아닌지. 그러다가 화학조미료를 듬뿍 넣어 맛을 낸 음식, 사카린으로 자극을 준 음식을 사먹으며 이거 옛날에 먹던 맛이라고 호들갑에 가까운 감탄을 하고 거기에 맞장구를 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아니, 분명히 그럴 수 있다. 탓할 수도 없다.
첫댓글 맞는말씀이여.근데 글 참 맛깔나게 잘 쓴다...정말이여...꼭따리보다 더 더
가끔 이 친구 글을 읽으면 절로 늙는 기분이야. 안 좋다는 거지.ㅋ
어떤 내용에 글이든지 티물이 글 은 가슴이 따듯해지거든~~정말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