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김천 청암사 회보에 연재된 글인데 어제 남원에서 오신분들이 출가에 대해 묻길래 긴 글이지만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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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를 제대하고 출가하기 3달동안 매일같이 악몽에 시달리면서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그 힘든 해인사행자실 첫날부터 악몽이 선몽으로 바뀌어 3년동안 불보살님의 수많은 나툼으로 수행의 방법과 전생의 모습, 앞으로의 수행길의 다양한 모습들이 등장했고 어느새 절집에서 만41년이다.
돌아보면 한편의 영화같은 이 길
”뭐 하러 왔나?“
그 말씀 끝에 아무런 망설임 없이 이런 말이 튀어 나왔다.
”스님을 은사스님으로 모시고 수계를 받고 싶습니다.”
아마 스님과 나의 전생사부터 인연이었을 것이다.
나를 한참동안 바라보시고 신변에 대해 이것저것 물으시더니
“왜 출가하려고 하는가?“
나는 망설임없이
”군대에 다녀와 복학하고 나서 인생을 한번 돌아봤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잡고, 결혼하고, 가정이 꾸러지고, 그러다보면 나이 사오십, 육십이 되고 죽음에 이르는 삶이 참으로 부질없이 느껴졌습니다.“
스님께서는 행자가 당차다고 생각하셨는지 그 자리에서 화두를 주시면서 수행의 방법과 승려의 길에 대한 것도 소상하게 말씀하신다.
85년 해인사큰절에서 행자생활을 하던 초파일 저녁 7시쯤 무심히 발길이 원당암으로 향했고 불밝힌 방문을 열고 처음 본 분이 은사이신 혜암스님이셨다.
그당시 은사스님의 법납과 세납이 지금 나의 법납과 세납보다 적었으니 무상한 시간은 많이도 흘렀다.
해인사에서 치문을 수료하고 곧 선방포단에 앉아 나름 치열한 시간을 보내면서 육신의 부조화로 죽음 직전까지도 가고 사십전에는 죽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말도 들으면서 숙세의 선근으로 오늘까지 왔다.
산의 정상에서 보면
산을 올라오는 길은
사방에서 다양한 길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네 삶의 모습도
다양한 형태로 혼재하여
함께 세상을 아우러고 있는 것이다.
나와 맞지 않고 나와 같지 않다고
잘못 되었다고 생각하는
일방통행을 놓아버려야
내가 편하고 행복한 것이다.
나와 다르고 다를 수 있다고 봐야지
나와 같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산은 다양한 나무와 꽃, 바위,
계곡, 물 ...
등등이 조화를 이루기에
아름다운 것이다.
나의 관점이 아닌 상대방의 관점에서 봐야
세상사 모든 문제는 쉽게 풀린다는 것.
가시밭길 같았던 수행길을 걸어오면서 고정관념이 얼마나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승려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받은 질문이다.
”어떤 경전을 봐야 불교를 제대로 알 수 있습니까?”
“부처님의 일대기를 보십시오.“
사실 불교는 어떤 경전(금강경,원각경, 화엄경...등등) 한권본다고 불교의 대의를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어떤 지침서가 있을까?
한사람의 일생을 담은 일대기는 승속을 떠나서 우리에게 삶의 지혜와 갈길을 제시하는 생생한 체험이 살아있는 스승이다.
치열한 화두정진과 염불, 절수행, 호흡과 극단적인 음식조절까지 경험했던 나로서는 어느날 마음을 비우고 다시 읽은 부처님일대기에서 비로소 마음이 편하게 되었다.
세번째 인도성지순례길 전정각산동굴에서 느낀 스승과의 역지사지의 감회가 아직도 가슴뭉클한 감동으로 남아있고 그분의 걸어오신 길을 답습하는 자체가 최고의 수행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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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각산에서의 회상이다.
* 싯달타의 출가와 고행
결혼까지 하여 모든 욕망의 충족이 있었지만 마음은 항상 명상을 통한 수행에 있었다.
어느날 아들 라훌라의 출생에 더 이상 수행의 길을 미루면 기회는 영영 오지 않을 것이다는 마음으로 카필라국의 운명과 가족들의 안위조차 초연히 놓아 버리고 결연히 왕궁을 떠나 그 당시 걸식하면서 수행하는 사문의 길로 출가를 단행 하신다.
당시 유명한 두명의 뛰어난 스승밑에서 짧은 시간에 스승의 경지를 증득하였지만 참다운 마음의 평안은 없었던 것이다.
스승들에게 터득한 수행의 깊이를 철저히 점검한 태자는 더 이상 자기를 지도해 줄 스승이 없음을 알고는 옛 도시인 가야근처의 전정각산 동굴에 자리를 잡아 철저한 고행과 인욕을 통해 깨달음에 마음을 천착하게 된다.
아마 이 당시에 싯달타 태자의 명성은 마가다국과 주변의 여러나라로 퍼져 나갔을 것이다.
태자의 출가로 번민하던 카필라 국왕인 숫도다나왕은 차례로 5명의 대신들을 보내어 태자를 설득하여 환속을 종용 할려고 했지만 태자의 결연한 고행과 인욕을 목격한 대신들은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태자의 돈독한 시자와 수행도반으로 거듭나게 된다.
아마 태자는 동굴을 떠나지 않고 5명의 제자들이 가까운 마을에서 탁발을 하여 시봉을 했으리라.
6년에 걸친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극단적인 고행과 인욕에도 마음이 편치 않자 그동안의 고행과정을 철저히 돌아보니 이런 고행으로는 결코 수행의 진척이 없음을 절감하게 된다.
어느날 동굴에서 내려와 나란자라강에서 목욕을 하고 마을에서 수자타 처녀가 보시한 부드러운 우유죽을 마시고는 몸과 마음의 기력을 회복하시게 된다.
이때 5명의 제자들도 함께 내려와서 태자의 극적인 반전을 지켜보게 되고 수행자로서 타락하고 파계한 태자에게 온갖 모욕과 손가락질을 했으리라.
이에 5명의 제자들은 예로부터 수많은 철학자와 수행자들이 모여 토론과 논쟁으로 수행의 기운이 넘치는 바라나시에 있는 사슴동산으로 수행처를 옮겨 버린다.
이 장면에서 태자는 여러번의 결단을 행동으로 옮기게 된다.
첫번째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욕락을 버리시고 철저한 사문의 길로 가신 것이요.
둘째는 뛰어난 2명의 스숭 밑에서 그 경지를 쉽게 증득하여 스승과 제자들 그리고 신도들의 존경을 받았지만 결연히 동굴수행으로 전환한 것이고
세째는 동굴에서의 철저한 고행과 인욕으로 원근각지에서 수많은 존경과 경외감의 대상이었지만 이런 명예도 싯달타의 수행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고 오히려 비난과 멸시를 받으면서 새로운 결단으로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시게 된 것이다.
끊임없는 수행과 철저한 관조를 통한 파격적인 변화.....!!!
과연 세상의 어떤 수행자가 싯달타와 같은 수행의지를 가졌겠는가.
참다운 스숭의 진면목이 드러남을 알아 차리는가~!!!
석가모니 이전이나 이후이나 관계없이 참된 진리의 그 자리는 항상 변함없이 존재하지만
불성의 근원을 완벽하게 깨달으신 부처님의 탄생으로 모든 생명체가 부처의 근본성품을 가지고 있음을 설파함으로서 어리석은 중생의 속성을 내려 놓게 되는 것이다.
석가모니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실천하면 나도 스스로 대장부인지라
석가모니불과 같이 대자유의
眞人이 되는 것이다.
나무아미타불
한소리에 한생각이 쉬고
나무아미타불
한소리에 또 한생각이 쉬고
나무아미타불
한소리에 다시 한생각이 쉬니
念佛의 大海
이 자리가 행복이요
淨土가 아닌가.
한번의 염불이 모여서
번뇌가 보이고
한번의 염불이 또 모여서
번뇌가 사라지고
한번의 염불이 다시 모여서
밝은 광명을 체득하니
이 길을
아니 갈 수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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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첫댓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아제아제바라아제바라승아제모지사바하 _()_()_()_
스님
혹시
스승으로 부터 어떤 화두를 점지 받으셨는지 정중히 질문()`드립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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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