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흐름을 좌우한 해류의 존재감
항해 중 해류 지도를 찬찬히 읽어 본다. 범선이 항해할 때 대만을 지나면 구로시오 해류를 타고 동으로 향함을 알게 된다. 일본 규슈로 자연스레 항로가 만들어진다. 유럽 사람들은 15세기부터 바다를 통해 인도로 가는 길을 찾아 나섰다. 1490년대 바스코 다가마 등이 인도를 발견했다. 이들은 더 동쪽으로 항해를 해 나갔고 중국과 일본에 도달했다. 일본은 이 구로시오 덕분에 네덜란드의 문물을 받아들였고 1592년 임진왜란 당시엔 조총을 사용할 정도가 되었다. 그 후에도 일본은 상선을 통해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 규슈 지방을 중심으로 메이지유신이 일어났다. 반면 구로시오 때문에 그 흐름의 북쪽에 있던 한반도는 유럽의 상선들이 발견하기가 어려웠고, 난파를 당한 경우에만 방문이 가능했다. ‘하멜 표류기’의 하멜이 대표적이다.
해류로 인해 서양 배들이 쉽게 닿을 수 있었던 지역은 유럽 문명을 일찍 받아들였다. 이렇듯 해류는 세계사에서도 중요한 기능을 했다. 이제 문명의 전달은 선박보다는 항공기와 인터넷이 오히려 대세이다. 더 이상 해류가 문명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고 그 존재감이 급격히 떨어졌다.
그렇지만 여전히 해류는 선박의 항해에 유용하게 사용된다. 선박은 통상 12노트, 하루에 약 280마일(약 450km)을 가게 된다. 미국 서부까지의 거리를 약 5600마일로 치면 20일간 항해를 해야 한다. 하루에 기름 40t을 사용한다 치고 1t의 가격을 300달러(약 38만 원)라고 보자. 그러면 하루 기름값이 1만2000달러(약 1520만 원)가 든다. 만약 속도를 높여 14.4노트로 항해한다면 항해 시간이 20% 줄어든다. 하루에 200만 원 이상이 절약된다. 12노트가 아닌 14.4노트로 항해할 수 있다면 우수한 선장임에 틀림없다. 어떤 방법이 있을까? 해류를 이용하는 것이다. 미국으로 향하는 태평양 바다에는 뒤에서 밀어주는 해류가 있다. 이 해류를 타면 2.4노트가 더 난다. 2등 항해사인 나는 “14.4노트가 납니다”라고 선장에게 보고를 한다. 이 항해 보고를 회사에 전달하는 선장도, 나도 ‘싱글벙글’이다.
또 다른 방법이 있다. 파도와 마주치는 선박의 앞부분을 전구와 같이 둥글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선박이 파도와 만나는 저항이 줄어들어 속도를 더 낼 수 있다. 실제로 엔진으로 항해하지만 돛을 일부 달아 순풍이 불면 바람의 힘을 더 받아서 항해할 수 있는 선박이 만들어졌다.
적도 지방에 범선이 도달하면 바람이 없으니까 선박은 제자리에 서 있었다. 한시라도 빨리 적도 지역을 피하기 위해 돼지를 바다에 바치는 제사를 선원들이 지냈고, 이것이 ‘적도제(赤道祭)’의 유래가 되었다. 오늘날에도 선박은 적도를 지날 때 적도제를 지낸다. 그런데, 범선은 어떻게 적도 지역을 빠져나왔을까? 바람은 없지만, 해류의 흐름이 있었기 때문에 해류를 타고 조금씩 선박은 이동했을 것이다.
아무리 엔진이 발달되어 인위적인 힘으로 선박을 움직인다지만, 여전히 해류는 바다에서 중요한 기능을 한다. 새것도 좋지만 옛것을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 그것이 자연일 때에는 더욱 그러하다는 교훈을 ‘해류’를 통해서 얻게 된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